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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전쟁에 유럽 인플레 비상…독일, 가스 배급 1단계 시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 전역에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경보가 내려졌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인 러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가스 공급 중단을 거론하며 서방을 압박해온 러시아도 치솟는 물가 상승 압력에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30일(현지시간) 독일 연방 통계청은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동기대비)을 7.3%로 발표했다. 198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 2월 5.5%에서 큰 폭으로 뛰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년 전보다 에너지 가격이 39.5% 급등한 게 (물가 상승의)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독일 정부의 경제자문위원회는 올해 독일의 인플레이션 예상치를 기존의 2.6%에서 6.1%로 높였다. 이렇게 상향 조정한 물가 전망치도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중단하지 않았을 경우를 예상한 수치다. 경제자문위원회 소속 폴커 빌란트 프랑크푸르트대 경제학 교수는 “러시아 가스 공급이 중단되면 독일의 물가 상승률은 7.5~9%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페인도 3월 물가 상승률을 9.8%로 잠정 집계했다. 1985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스페인 국립통계연구소는 “에너지 가격의 급등과 식료품 가격의 상승으로 지난달(7.6%)을 훨씬 웃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에 경기 침체를 예고하는 신호도 겹치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다. 30일(현지시간) 독일 경제자문위원회는 독일의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4.6%에서 1.8%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이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EU의 소비자와 기업은 지출을 줄이고 있고 실업률은 높아졌다”며 “유로존 경제 심리 지표는 이달 5.4포인트 하락한 -108.5로 1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30일(현지시각) 키프로스에서 열린 행사에서 “전쟁이 길어질수록 비용은 커질 것”이라며 “유럽 경제가 더 불리한 시나리오를 마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전쟁 비용은 1년에 약 1500억유로(약 202조7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스 공급 중단 위협한 러시아, 한발 물러서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가스 공급과 대금 결제를 둘러싼 러시아와 유럽의 갈등 수위도 낮아지는 분위기다. 독일 정부는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럽이 가스 대금을 유로화로 계속 결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슈테펜 헤베슈트라이트 독일 정부 대변인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푸틴 대통령이 숄츠 독일 총리와의 통화에서 ‘유럽의 4월 가스 대금 결제는 그동안 해온 대로 제재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가스프롬 은행으로 유로화를 송금하면 된다. 가스프롬 은행이 이를 루블화로 환전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경제장관은 같은 날 ZDF TV에 출연해 “러시아의 발표는 전체적으로 명확하지 않다”며 “러시아가 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지불하지 않으면 가스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위협을 철회하지 않았지만 상황 개선을 위한 첫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통신도 “이는 러시아의 긴장 완화 시도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3일 러시아의 천연가스에 대한 구매 대금을 루블화로만 받고, 외화로 결제하면 가스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선포했다. 이에 주요 7개국(G7) 장관들은 지난 28일 화상 회의를 열고 만장일치로 러시아의 요구를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주일 만에 푸틴 대통령이 입장을 바꾼 건 커지는 인플레이션 압력 때문이다. 이날 러시아 통계청은 “지난 25일 기준 연간 인플레이션율은 15.6%”라고 발표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에 대해 “일주일 전 14.5%였는데 빠른 속도로 올랐다”며 “이는 2015년 9월 이후 최고치”라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인플레이션 급등은 서방의 경제 제재로 루블화의 가치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러시아 중앙은행이 지난달 28일 기준금리를 연 9.5%에서 연 20%로 끌어올렸지만 역부족이었다. 로이터 통신은 “루블화 가치가 더 떨어질 것이란 예상에 러시아에선 이유식 같은 필수 식료품부터 자동차, 의약품 등 거의 모든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긴장 완화 시도에도 독일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비상 계획을 실행했다. AP통신은 “러시아 가스 공급 중단 가능성을 고려해 독일 정부가 가스 배급제 실시를 위한 첫 단계를 개시했다”고 보도했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는 이날 기자들에게 “독일의 가스 저장 시설에 남은 가스가 25%에 불과하다”며 “가스 공급 비상사태 3단계 중 1단계인 ‘조기 경보’를 발령했다”고 말했다. FT는 “독일 정부는 가스 소비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일부 산업에 대해 가스를 차단하고 가계에 우선 공급하는 조처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오스트리아 카를 네함메르 오스트리아 총리도 30일 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스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비상계획 3단계 중 첫 번째 단계를 실행한다”고 밝혔다. 오스트리아는 국내 가스 수요의 80%를 러시아산으로 충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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