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달만에 깨지는 거야의 꿈/야권통합 좌절 이후의 정국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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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갈등 통추회의 두 조각/평민 통합파 의원 태도 변수/평민 양당구조로 대선 겨냥… 민주는 「신당」 모색
평민당·민주당·통추회의 3자간에 진행됐던 통합운동은 통추회의 상임대표인 김관석 목사가 25,26일 공식회의를 잇따라 열고 양일중 통합결렬선언을 할 것이 확실해짐으로써 약 4개월 만에 좌절을 맛보게 됐다.
더구나 양당의 조정역을 자임하고 나선 교계 및 「순수재야」의 통추회의 자체가 결국 전문정치 집단인 양당의 인력으로 원심 분리,심한 내부혼란을 빚고 있어 해체될 상태에까지 몰리고 있다.
통추회의는 지난 6월28일 재야명망가·양심세력 1천7백여 명의 야권통합 서명자를 근간으로 구성된 이래 ▲친 김대중 성향 ▲세대교체론의 두 그룹이 노선갈등을 빚어왔다.
친 김 성향의 종로 5가 교계그룹인 김 목사는 평민당의 대여 등원협상으로 사실상 통합논의가 무의미해진 지난 16일 양당 총재에게 「최후의 서신」을 비공개로 보내 마지막 입장정리를 촉구했다.
8월24일 통추회의가 내놓은 통합기본 안에 ▲3인 공동대표 미합의시 경선으로 대표 선임 ▲6∼7인의 최고위원제를 추가한 이 서신은 그러나 평민당이 이를 공개수락하고 민주당은 김 목사 개인의 사신에 불과하다며 논의를 거부함에 따라 통합결렬의 책임을 놓고 평민­민주당이 서로 입씨름하는 결과만 낳았다.
이에 통추회의내 「민주연합」 그룹인 이부영·제정구·여익구 씨 등은 『이같은 서신이 통합결렬의 책임으로부터 평민당이 빠져나갈 명분을 주고 민주당에만 책임을 전가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서신을 공개한 평민측을 비난했고 통추회의 안에서도 논란이 벌어졌다.
김 목사측과 이부영 그룹은 통합노선·책임문제·향후진로 등에 대해 입장차를 보이고 있으나 평민­민주 양당의 통합이 불가능하다는 데는 이의가 없어 주말까지 통합결렬선언→조직해체를 할 예정이다.
10·13 보라매집회 당시 이기택 민주당 총재에 대한 폭력사건과 평민당의 등원협상으로 야권통합은 사실상 물건너 갔었다.
그렇지만 통추회의가 공식적으로 해체되면 야권은 서로를 느슨하게나마 묶고 있던 명분의 끈이 잘리면서 이합집산을 되풀이,구도재편이 불가피하다.
우선 평민당은 김 총재 단식→대여협상→등원→지자제선거라는 일련의 수순을 거쳐 제도정치권을 민자·평민 양당 구도로 이끌어 93년 대선을 겨냥한 준비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내 서명파 중 이해찬 의원 등 5∼6명의 통합론자들이 야권통합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평민당을 따라 등원할 것인지,다른 길을 모색할는지가 여타 야권변화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물론 김 총재가 앞으로 민자당과의 동반정치 과정에서 정치력 강화를 위해 야권통합을 부활시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김 총재는 이미 일부 구 신민당 출신이나 재야 친 김 세력을 규합하는 노력을 상당히 진척시켜 왔다. 그러나 이미 골이 팰대로 팬 민주당이나 통추회의 민주연합파와의 더 이상의 「교섭」은 불가능할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평민당과 갈라서게 되면 선택이 모호해진다. 평민당을 따라서 등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재야규합엔 아직 세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김정길 의원이 중심이 된 통합파측은 평민당 서명파 의원들과 꾸준히 은밀한 접촉을 해왔는데 서명파 중 상당수는 평민당의 등원노선에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평민당을 이탈할 가능성까지 있느냐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다만 의원직 사퇴→노 정권 퇴진운동을 주장해온 재야와 노선을 같이 하는 이들은 민주당이 등원을 거부하고 재야와 연대투쟁을 벌일 경우 새로운 야권통합의 형식으로 제휴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신당을 모색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있다.
결국 야권통합이 깨지면 평민·민주·재야는 서로 책임을 전가하면서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을 끌어들여 부분통합하는 노력을 벌이게 될 것이 확실하다.
그 가닥의 하나는 김대중 총재의 구 야권 세력과 친 김 재야세력 규합이 될 것이며 다른 하나는 민주당과 재야민주연합파,그밖의 평민당이나 다른 재야 통합파 등의 흐름이다. 이 과정에서 오는 11월 창당키로 한 민중당(가칭)은 그들 나름의 세력규합에 나설 것이어서 세 갈래의 세력재편을 예상할 수 있다.
「민주연합」측은 ▲국민운동기구로 전환하거나 ▲기존정당 체계로 편입하는 두 가지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민주연합」 그룹의 이부영·제정구·여익구·김도연·유인태·김부겸 씨 등은 재야운동권내에서의 그들의 위치와 정치성향상 민주당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관측도 있다.
결국 야권통합은 김대중 2선후퇴를 중심한 세대교체론과 3당통합으로 인한 야권의 위기상황에서 한바탕 바람만 일으키고는 기존 정치세력의 이해갈등 속에 갈래갈래 찢기고만 셈이다.
통추회의 한 관계자는 『이번 통추회의 같이 국민동원 능력에 바탕하지 않은 협상중심의 통합추진은 전문적인 정치집단에 역이용되고 분열되기 십상』이라며 자신들의 아마추어리즘에 한숨지었다.<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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