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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도 사정권" 김정은 레드라인 넘었다…괴물 ICBM 쏜듯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이 2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북한이 핵실험과 함께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ICBM 발사 모라토리엄을 뒤집은 것이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가 집권 5년간 추진했던 대북 정책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한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ICBM) 발사 유예를 스스로 파기했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이번 탄도미사일 발사는 북한이 2018년 약속한 핵실험 및 ICBM 시험 발사 중지 약속을 깬 것”이라며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한 도발”이라고 비판했다.

2017년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형 발사 모습. 조선중앙통신

2017년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형 발사 모습. 조선중앙통신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후 2시 34분쯤 평양 순안 일대에서 탄도미사일 1발을 쐈다. 이 미사일은 고도 6200㎞까지 올라간 뒤 떨어지면서 1080㎞를 비행했다.

일본 방위성은 북한의 미사일이 약 71분 정도 날아간 뒤 홋카이도(北海道) 오시마(渡島)반도 서쪽 약 150㎞ 바다에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이곳은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안쪽이다.

북한은 일본과 같은 주변국 영해에 미사일이 떨어져 외교적 문제가 일어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장거리 미사일은 직각에 가까운 고각으로 발사한다. 이 경우 고도가 높아지면서 사거리가 줄어든다. 미사일 전문가인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정상 각도로 발사한다면 워싱턴 DC·뉴욕 등 미국 본토의 동부까지 때릴 수 있는 화성-15형(최대 사거리 1300㎞)급 이상”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북한의 ICBM은 신형 화성-17형이라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군 당국은 화성-17형이 아닌 ICBM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27일과 지난 5일 인공위성 관련 시험을 한다는 구실로 화성-17형을 시험발사했다.

발사 당시 한·미는 고도·사거리 등 제원을 분석해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사거리 1000~3000㎞)급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추가 분석을 통해 한·미는 지난 11일 화성-17형으로 뒤늦게 평가를 바꿨다.

2020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때 북한이 선보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 조선중앙TV 캡처

2020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때 북한이 선보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 조선중앙TV 캡처

화성-17형은 2020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때 처음 나타난 ICBM이다. 2021년 10월 12일 무기 전람회인 ‘자위-2021’에서 북한은 ‘화성-17형’이라는 이름을 공개했다.

화성-17형은 길이가 23m 이상, 동체의 지름이 2.3m 이상이다. 세계에서 가장 길고, 두꺼운 ICBM이다. ‘괴물 ICBM’이란 별명이 붙는 이유다.

북한은 한·미가 사실상 ICBM 발사라고 밝힌 뒤인 지난 16일 다시 화성-17형을 쐈다. 그러나 당시 미사일은 상승 도중 고도 20㎞ 아래에서 폭발했다.

이후 8일 만에 다시 발사해 성공한 것이다. 이는 다음 달 15일 김일성 생일(태양절) 110주년을 맞아 북한이 계획하고 있는 장거리 로켓 발사의 사전 연습이라는 게 군 당국의 분석이다.

북한은 한·미가 경고성으로 화성-17형 발사 사실을 외부로 알렸는데도 아랑곳없이 발사를 강행했다. 모라토리엄 파기를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북한은 지난 1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정치국 회의에서 “우리가 선결적으로, 주동적으로 취하였던 신뢰 구축 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는데 당시 예고대로 이번에 행동에 옮겼다는 분석이다. 앞서 북한은 제1차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앞선 2018년 4월 핵실험장 폐기, 핵실험·ICBM 시험발사 중단이라는 모라토리엄을 발표했다.

2017년 7월 5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에 대응해 한ㆍ미가 연합 탄도미사일 타격훈련에서 현무-ⅡA(왼쪽)와 주한미군 에이태큼스(ATACMS)를 동시 발사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2017년 7월 5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에 대응해 한ㆍ미가 연합 탄도미사일 타격훈련에서 현무-ⅡA(왼쪽)와 주한미군 에이태큼스(ATACMS)를 동시 발사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회의를 주재했다.

한·미는 바로 맞대응에 들어갔다. 군은 이날 오후 4시 25분쯤 강원도에서 현무-Ⅱ와 에이태큼스(ATACMS) 등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동해상으로 발사하는 훈련을 벌였다. 훈련 장소에는 주한미군 관계자들도 있었다고 복수의 군 소식통이 전했다.

또 해성-Ⅱ 함대지미사일과 공대지 합동정밀직격탄(JDAM)으로 지상 목표물을 공격하는 훈련을 했다. 이들 훈련은 언제라도 발사 원점(지점)과 지휘·지원 시설을 정밀 타격하는 목적이라고 합참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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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는 또 다음 달 연합훈련의 규모를 키우고 전략자산을 전개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이로써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는 당분간 강 대 강 대결 구도로 치닫게 됐다. 또 종전선언을 포함한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역시 임기 말에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미 간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 현 정부도 북한이 ICBM 발사라는 레드라인을 넘어서자 인내의 임계점을 지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2017년과 같이 한반도에 북한의 핵·미사일 위기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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