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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한줄명상] '천년 봉쇄수도원'에서 마음을 연다…봉암사 '간화선 대법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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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이 비치되 티끌에 물들지 않는다.”

#풍경1

경북 문경에 봉암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이 사찰은 아주 특이합니다.
글쎄, 별칭이 ‘천년 봉쇄수도원’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1000년 전 통일신라 시대에 세워진 봉암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립특별선원입니다.
다시 말해 조계종단에서 직접 관할하는
특별 선방입니다.

봉암사 결사 60주년 때 조계종 스님들이 봉암사 경내에서 법회를 열고 있다. [중앙포토]

봉암사 결사 60주년 때 조계종 스님들이 봉암사 경내에서 법회를 열고 있다. [중앙포토]

소수 정예의 스님들이 1년 내내 수행하는 곳입니다.
일반인의 출입은 엄격하게 금지돼 있습니다.
1년에 딱 하루,
부처님오신날에만 외부에 산문을 개방합니다.

이런 봉암사에서 다음 달에
‘제4차 간화선 대법회’가 열립니다.
한국 불교의 무게감 있는 선승들이 법상에 올라
일반인의 마음공부를 위한 법문을 합니다.

14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불교역사박물관 국제회의장에서
‘간화선 대법회’를 알리는 기자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봉암사 산자락에
세계명상마을을 짓고,
개원 기념으로 ‘간화선 대법회’가 열린다는 겁니다.
세계명상마을은 불교의 선(禪)수행과 마음공부를
일반인에게 전하자는 취지에서 세워지는
선(禪)센터입니다.

#풍경2

사실 오랫동안 불교의 선(禪) 수행은
출가자의 전유물이다시피 했습니다.
붓다의 정신은 출가자와 재가자의 본질적 평등을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제한이 있었습니다.

'간화선 대법회' 집행부는 코로나 때문에 거의 4년 만에 열리는 이번 행사를 봉암사 세계명상마을에서 열기로 결정했다. [중앙포토]

'간화선 대법회' 집행부는 코로나 때문에 거의 4년 만에 열리는 이번 행사를 봉암사 세계명상마을에서 열기로 결정했다. [중앙포토]

조계종에는 1만2000여 명의 스님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2000명 정도만 여름 석 달과 겨울 석 달,
하안거와 동안거에 참석하며 선방을 지킵니다.
소위 ‘이판(理判)’이라 불리는 선방 수좌들입니다.
안거 기간에는 산문 출입도 철저하게 금지됩니다.
수좌들은 절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생계를 잇고,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 재가자로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석 달씩 짬을 내기도 어렵습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현실적 제한이 무척 컸습니다.
그래서 선 수행이 출가자의 전유물처럼 된
측면도 있습니다.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세계적으로 ‘명상’ 붐이 일고 있습니다.
각박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현대인은 ‘마음의 평화’를 갈구합니다.

2000년 전, 1000년 전에는 종교에서 그걸 찾았습니다.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종교’는 일종의 껍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리의 알맹이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와 율법, 그리고 격식임을 압니다.
그걸 통해서는 마음의 본질적 평화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압니다.

틱 낫한 스님이 세운 플럼 빌리지는 종교가 머지 않은 미래에 어떤 식으로 진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결정적 단초를 보여준다. [사진 플럼 빌리지]

틱 낫한 스님이 세운 플럼 빌리지는 종교가 머지 않은 미래에 어떤 식으로 진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결정적 단초를 보여준다. [사진 플럼 빌리지]

그래서 종교의 외피에 얽매이지 않고,
제도와 율법과 격식에 휘둘리지 않고,
곧장 그 알맹이를 찾자는 수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사회에 불고 있는 ‘명상 붐’도 그런 맥락입니다.

이런 흐름에 대해 한국 불교계는 오랫동안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마치 강 건너 불 구경  하듯이
바라볼 따름이었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과연 지금과 같은
종교 시스템이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데도 말입니다.

#풍경3

문경의 봉암사 앞에 짓는 세계명상마을은
그런 물음에 대한 첫 화답인 셈입니다.

프랑스 시골 마을인 떼제에 가면
‘떼제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초교파 수도공동체입니다.
여름에 가면 방학을 맞아 찾아온
전 세계 젊은이들로 그곳은 북적거립니다.
그곳은 관광지도 아니고, 캠핑장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1주일에만 무려 수천 명의 청년이
떼제공동체를 찾아옵니다.

틱 낫한 스님은 각박한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에게 마음의 평화를 찾는 명상을 전했다. [사진 플럼 빌리지]

틱 낫한 스님은 각박한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에게 마음의 평화를 찾는 명상을 전했다. [사진 플럼 빌리지]

그곳을 찾는 젊은이들의 이유는 분명합니다.
격식에 대해 열려 있고,
본질에 대해 진심으로 다가가는
떼제의 미사, 떼제의 기도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타계한 틱 낫한 스님의 ‘플럼 빌리지’도
그런 곳입니다.
그곳에는 불교 수행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등 서로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도
마음의 평화를 찾아
기꺼이 ‘플럼 빌리지’를 순례합니다.

이런 풍경들은 앞으로 종교가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가를
큰 안목과 큰 호흡으로 보여줍니다.
둘 다 종교의 외피는 과감하게 내려놓고,
대신 종교의 핵심인 알맹이에
무게중심을 싣고 있기 때문입니다.

간화선 대법회 준비위원장인 각산 스님은 봉암사 세계명상마을의 선원장도 맡고 있다. [중앙포토]

간화선 대법회 준비위원장인 각산 스님은 봉암사 세계명상마을의 선원장도 맡고 있다. [중앙포토]

문경 봉암사의 세계명상마을은
4월 20일에 개원합니다.
개원 홍보는 따로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만, 첫 프로그램으로
‘간화선 대법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간화선 대법회 준비위원장 각산 스님은
기자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간화선(看話禪, 화두를 궁리하며 깨달음을 향하는 수행법) 수행은
   중국 불교에서 전래했다.
   그렇지만 법(法, 진리)에는 동서남북이 없다.
   오히려 한국에서 간화선은 더 잘 전승돼 왔다.
   2년마다 열리는 간화선 대법회가 코로나 사태로 인해
   3년 7개월 만에 열리게 됐다.”

#풍경4

4월에 열리는 ‘간화선 대법회’에는 7명의 선사가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합니다.
통도사 방장 성파 스님(26일),
범어사 방장 지유 스님(22일),
학림사 조실 대원 스님(20일),
축서사 조실 무여 스님(24일),
석종사 조실 혜국 스님(25일),
대흥사 선덕 정찬 스님(23일),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영진 스님(21일) 등입니다.

경북 문경의 봉암사는 일반인의 산문 출입이 금지된 일종의 봉쇄 수도원이다. [중앙포토]

경북 문경의 봉암사는 일반인의 산문 출입이 금지된 일종의 봉쇄 수도원이다. [중앙포토]

하나같이 귀한 법문 자리입니다.
그중에서도 성파 스님과 지유 스님의 대중 법문은
참 각별한 기회입니다.
성파 스님은 조계종의 정신적 최고지도자인
15대 종정(宗正)에 추대됐습니다.
취임식을 앞두고 있습니다.
성파 스님은 뚜렷한 견처에서 드러내는
막힘 없는 법문으로
대중의 마음을 깊이 적실 겁니다.

범어사 방장 지유 스님은
일반 대중을 상대로 법문을 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선방의 수좌들도 지유 스님의 등장에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사실상 첫 대중 법회입니다.
지유 스님의 안목은 절집에서도
입에서 입으로, 수좌들 사이의 소문으로만
돌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간화선 대법회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3박 4일 집중수행 프로그램도 운영합니다.
모두 80명의 참가자가 좌선과 법문 듣기,
걷기 명상과 수행에 대한 질의응답 등을 이어갑니다.
참가 신청은 벌써 거의 마감이 됐다고 합니다.

간화선 대법회 집행위원장인 금강 스님은 "불교는 2600년 동안 마음의 문제를 다루어 왔다. 이를 위한 수행과 깨달음의 전통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간화선 대법회 집행위원장인 금강 스님은 "불교는 2600년 동안 마음의 문제를 다루어 왔다. 이를 위한 수행과 깨달음의 전통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간화선 대법회 집행위원장을 맡은
금강 스님(중앙승가대 교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대인은 마음의 문제를 풀고 싶어한다.
  불교는 2600년 동안 마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 문제를 풀어내는 수행과 깨달음의 전통도 있다.
  이건 수행을 통해 직접 체험하고 얻어야 한다.
  화두는 깨달음의 언어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거기에 의문을 품는다.
  그 의문이 우리를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

#풍경5

조계종 차기 종정인 성파 스님은 20대 초반에
통도사로 출가했습니다.
당시 통도사 극락암에는 ‘당대의 선지식’으로
통하던 경봉 스님이 주석하고 있었습니다.
전국의 수좌들도 경봉 스님의 가르침을 받고자
통도사 극락암 선방으로 몰려들던 때였습니다.

조계종 15대 종정에 추대된 성파 스님은 30대 초반에 통도사 극락암에 주석하던 경봉 스님으로부터 깨달음에 대한 인가를 받았다. [중앙포토]

조계종 15대 종정에 추대된 성파 스님은 30대 초반에 통도사 극락암에 주석하던 경봉 스님으로부터 깨달음에 대한 인가를 받았다. [중앙포토]

성파 스님이 30대 초반이었을 때입니다.
극락암 호국선원에서 좌선하던 성파 스님은
문득 평생 품고 있던 물음을 풀었습니다.
‘마음이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대한
본질적인 답입니다.
그때 성파의 마음에서 깨달음의 노래인
게송이 올라왔습니다.

“아심여명경 조진불염진(我心如明鏡 照塵不染塵)”

우리말로 풀면 이렇습니다.

“내 마음은 맑은 거울과 같아서,
   티끌이 비치긴 비치되
   티끌에 물들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티끌에 휘둘립니다.
티끌이 많은 날은 우리의 삶도 흐려지고,
티끌이 짙은 날은 우리의 삶도 탁해집니다.
그렇게 맑은 날, 흐린 날, 비 오는 날을 오가며
희로애락으로 범벅이 된 인생을 꾸려갑니다.

그 속에서도 우리는 늘 꿈을 꿉니다.
티끌 없이 맑은 날, 티끌 없이 푸른 하늘,
티끌 없이 청정한 삶을 꿈꿉니다.

그러려면 ‘티끌’의 정체를 깨쳐야 합니다.
티끌의 정체, 번뇌의 정체를 궁리하는 것이
불교의 수행입니다.
티끌의 정체, 번뇌의 정체를 깨닫는 것이
불교의 깨달음입니다.

번뇌의 정체를 깨칠 때,
비로소 맑은 거울이 드러납니다.
다름 아닌 너와 나의 본래 마음입니다.

성파 스님은 통도사 서운암에서 재래식 전통 장독에 담근 된장과 고추장 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우리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예술적 창조력은 종종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중앙포토]

성파 스님은 통도사 서운암에서 재래식 전통 장독에 담근 된장과 고추장 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우리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예술적 창조력은 종종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중앙포토]

성파 스님은 아무리 티끌이 비치어도,
아무리 번뇌가 몰아쳐도,
물들지도 않고 물들 수도 없는
청정한 거울이 우리의 내면에 있다고 설파합니다.

그런 성파 스님의 사자후(獅子吼)가
대중을 찾아갑니다.

〈‘백성호의 한줄명상’은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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