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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의 일갈 "무식한 포수가 돼라, 그래야 호랑이 잡는다" [백성호의 한줄명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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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 잡으려면 무식한 포수가 돼라.”

#풍경1

불교에는 『종경록(宗鏡錄)』이란 책이 있습니다.
북송 시대 때 영명연수(永明延壽, 904~975)라는 선사가 지은 책입니다.
선(禪)과 교(敎)가 하나로 통하고,
세상만물이 일심(一心)임을 설파하는 내용입니다.

성철 스님은 1967년 해인사에서 100일간 법문을 했다. 당시 해인사에는 법문을 들으려는 청중으로 빼곡했다. [중앙포토]

성철 스님은 1967년 해인사에서 100일간 법문을 했다. 당시 해인사에는 법문을 들으려는 청중으로 빼곡했다. [중앙포토]

성철 스님(1912~93)은 해인사에서
백일 동안 법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1967년 12월 4일부터 68년 2월 18일까지
법문은 100일가량 이어졌습니다.
당시 해인사 산중에는 청중으로 빼곡했다고 합니다.
그걸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이라고 부릅니다.

성철 스님은 백일법문을 할 때
『종경록』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종경록』은 『벽암록(碧巖錄)』 『종용록(從容錄)』『무문관(無門關)』 등과 함께
불교의 대표적인 선서(禪書)로 꼽힙니다.

백일법문을 마친 뒤 성철 스님은
다시 10년 동안 『종경록』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선(禪)에 대해 더 확실한 나침반을 만들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성철 스님은 1980년 말에 제자인 원택 스님에게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책 원고를 한 뭉치 내밀며
“법정 스님께 가서 윤문을 부탁드려라”고 했습니다.
성철 스님을 22년간 시봉한 원택 스님은
법정 스님을 찾아가 윤문을 청했고,
법정 스님은 흔쾌히 허락을 했습니다.

조계종 종정에 오른 성철 스님(왼쪽에서 두번째)이 법정 스님(왼쪽에서 세번째)을 만나고 있다. 맨 오른쪽이 성철 스님을 22년간 시봉한 원택 스님이다. [중앙포토]

조계종 종정에 오른 성철 스님(왼쪽에서 두번째)이 법정 스님(왼쪽에서 세번째)을 만나고 있다. 맨 오른쪽이 성철 스님을 22년간 시봉한 원택 스님이다. [중앙포토]

성철 스님은 1981년 1월에 조계종 최고 지도자인
종정(宗正)이 됐고, 이듬해 1월에 원고는 출간됐습니다.
그 책이 바로 성철 스님의 『선문정로(禪門正路)』입니다.
이 책의 출간은 성철 스님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었습니다.
책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부처님께 밥값 했다”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풍경2

성철 스님의 『선문정로』가 나왔지만,
절집에서는 하소연이 많았습니다.
숱한 불교 경전에서 깨달음의 요체를
뽑고 또 뽑고, 거기에 성철의 견처를 덧붙여
쓴 책이 『선문정로』입니다.
그런 만큼 내용이 무척 깊고, 또 어려웠습니다.
절집에서 교학을 가르치는
강주 스님들조차 “책이 너무 어려워서 가르치기 힘들다”고
고초를 토로할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책에는 일반인을 위한 징검다리가
별로 없었습니다.

『선문정로』가 세상에 출간된 지
무려 40년이 흘렀습니다.
최근 성철 스님의 『선문정로』와 세상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아보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정독(精讀) 선문정로』의 저자 강경구 교수(왼쪽)와 기꺼이 감수를 맡은 원택 스님. [중앙포토]

『정독(精讀) 선문정로』의 저자 강경구 교수(왼쪽)와 기꺼이 감수를 맡은 원택 스님. [중앙포토]

부산 동의대 강경구 교수(중국어과)가 10년에 걸쳐
『선문정로』를 더 친근한 우리말 현대어로 풀고,
해당 문구의 앞뒤에 대한 해설을 덧붙여
『정독(精讀) 선문정로』를 최근 출간했습니다.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조계종 총무원 청사에서
출간 기자간담회도 가졌습니다.

흔쾌히 감수를 맡은 원택 스님은
스승의 대표작이 세상과 다시 만난다는 사실에
무척 기뻐하는 얼굴이었습니다.
원택 스님은 책을 이렇게 평했습니다.

“저자가 『선문정로』의 줄기는 줄기마다,
  몸통은 몸통마다 하나도 빠트림 없이 풀이해 놓았다.”

강경구 교수의 소감은 이랬습니다.

“이런 시대에 화두 하나쯤 들고 다니면 어떨까.
   그렇게 들고 다니던 화두가 어느 순간,
   나의 숙제가 되면 좋지 않겠나.
 『선문정로』는 성철 스님의 고요한 철학서가 아니라,
   수행자인 우리를 윽박지르는 매질이라고 본다.”

#풍경3

기자 간담회에서 원택 스님이 들려준 일화입니다.

성철 스님이 하루는 시봉을 하던
제자 원택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성철 스님은 활 잘 쏘는 포수가 호랑이를 잘 잡는 것이 아니라고 말핶다. [중앙포토]

성철 스님은 활 잘 쏘는 포수가 호랑이를 잘 잡는 것이 아니라고 말핶다. [중앙포토]

“이놈아, 백두산에 호랑이가 많이 있다는 이야기 들었지?”
“네에, 스님”
“그럼 그 호랑이를 어떤 포수가 잡겠나?”
“활 잘 쏘는 사람이 잡겠지요.”
“틀렸다!”

의아해하며 쳐다보는 원택 스님에게
성철 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활 잘 쏘는 놈은 지(자기) 목숨이 제일 중하다고 생각하고,
   범이 으르렁거리면 제일 먼저 도망간다.
   그럼 누가 범을 잡겠나.
   결국 무식한 포수가 호랑이를 잡는다.”

성철 스님은 왜 이 대답을 던졌을까요.
그렇습니다.
마음공부를 하는 우리 각자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일깨우기 위함입니다.

마음의 정체를 깨닫는 일이
호랑이를 잡는 일입니다.
그러니 호랑이를 잡을 때까지
활을 손에서 놓지 말라는 조언입니다.

쉽진 않습니다.
우리가 잡으려는 호랑이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매 순간 내 안에서
으르렁거리며,
쉬지 않고 어슬렁거리는
놈이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앞에 있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 내 안에 있는,
그런 호랑이가 우리의 마음입니다.

성철 스님은 해인사 백련암에 있을 때 헝겊으로 기운 승복을 즐겨 입었다. [중앙포토]

성철 스님은 해인사 백련암에 있을 때 헝겊으로 기운 승복을 즐겨 입었다. [중앙포토]

정체를 몰랐을 때는
우리가 호랑이에게 쫓기며 살지만,
정체만 알면
우리가 호랑이를 부리게 됩니다.
그래서 성철 스님은 “무식한 포수가 돼라”고 주문합니다.
호랑이를 잡을 때까지
활과 화살을 손에서 놓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사실 나의 바깥에 있는 호랑이는
잡기가 어렵습니다.
가령 백두산에 가서 호랑이를 잡으라고 한다면,
우리가 잡을 수 있을까요.
호랑이를 찾기조차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마음이라는 호랑이는 다릅니다.
어차피 내 안에 사는 호랑이니까,
언제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활을 손에서 놓지만 않으면 만날 수 있습니다.
마음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철 스님은 그걸 강조한 겁니다.

성철 스님 말처럼
활 잘 쏘는 포수는 먼저 도망가 버립니다.
실은 호랑이가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내 안에 호랑이가 있다는 걸,
그걸 잡을 수 있다는 걸
진심으로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철 스님은 무식한 포수라야 호랑이를 잡을 수 있다며 수행자의 마음자세를 강조했다. [중앙포토]

성철 스님은 무식한 포수라야 호랑이를 잡을 수 있다며 수행자의 마음자세를 강조했다. [중앙포토]

성철 스님은 그래서
무식한 포수가 되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내 안에 호랑이가 있음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그걸 잡을 수 있음을
무식할 정도로 믿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활을 놓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활을 놓는 순간,
우리는 끝없이 호랑이에게 쫓기며
살게 될 테니까요.

#풍경4

성철 스님은 평소 ‘오매일여(寤寐一如)’를 말했습니다.
깨어 있을 때와 잠들 때가 하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 해석을 두고 갑론을박이 있긴 합니다.

간화선의 창시자인 중국의 대혜 선사(1089~1163)도
 ‘오매일여’를 누차 강조했습니다.

불교의 수행은 마음의 정체를 깨닫는 일입니다.
내 안에서 이리저리 마구 날뛰는
호랑이의 정체를 아는 일입니다.
그 정체를 모르면 우리의 삶이
호랑이를 따라서 갈팡질팡해야 하니까요.

간화선을 창시한 중국 남송 시대의 선사 대혜 종고. 그의 저작은 간화선을 중심에 둔 한국의 조계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중앙포토]

간화선을 창시한 중국 남송 시대의 선사 대혜 종고. 그의 저작은 간화선을 중심에 둔 한국의 조계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중앙포토]

대혜 선사가 말한  ‘오매일여(寤寐一如)’의
‘오(寤)’는 깨달은 눈으로 보는 겁니다.
이어서 말한 ‘매(寐)’는 잠든 눈으로 보는 겁니다.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잠든 상태를 버리고, 깨달은 상태를 취하려 합니다.
그래야 호랑이를 잡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대혜 선사는 깨어 있음과 잠듦이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게 ‘오매일여(寤寐一如)’입니다.
잠듦을 버리고 깨달음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왜 잠듦과 깨달음이 하나인가.
그걸 깨달으라고 했습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호랑이를 잡게 된다고 말합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돌덩이 하나씩 박힌 채 살아갑니다.
쉽게 빼낼 수 없는 삶의 상처나 고통입니다.
우리는 그걸 돌덩이라 생각하고,
가슴에서 빼내려고 무진장 애를 씁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가슴에 박힌 돌덩이는 쉽사리 빠지지 않습니다.
돌덩이가 너무나 깊이 박혀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매일여’가 되지 않습니다.
돌덩이를 빼내야만 '오매일여'가 될 것만 같습니다.

김호석 씨가 그린 성철 스님의 모습. 방에 누워서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호석 씨가 그린 성철 스님의 모습. 방에 누워서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대혜 선사의 말씀이 저는 이렇게 들립니다.

네 가슴에 박힌 게 돌덩이라고 생각하는 건
너의 착각이야.
그게 고통 속에서 잠들어 있는 거야.
그런데 그걸 깊이 들여다봐.
그건 돌덩이가 아니라,
돌덩이처럼 보이는 바람(無)일 뿐이야.
바람은 절대 네 안에 박힐 수가 없어,
단지 너를 뚫고 지나갈 뿐이지.
그러니 무작정 돌덩이를 빼내려고만 하지 말고,
돌덩이의 정체를 깊이 궁리해 봐.
그게 바람임을 아는 순간, 돌덩이는 사라져.

그런 식으로
돌덩이의 정체, 상처의 정체, 고통의 정체를 알게 되면
가슴에서 돌덩이를 빼내지 않고도
돌덩이를 없앨 수가 있지.
그때는 돌덩이가 있을 때와 돌덩이가 없을 때가 똑같잖아.
잠 들 때와 잠 깰 때가 똑같잖아.
둘 다 평온하고 평화롭잖아.
그게 바로 ‘오매일여’야!

그러니 내 안의 호랑이를 잡기 위해
우리도 '무식한 포수'가 한 번 돼보면 어떨까요.

〈'백성호의 한줄명상'은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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