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일록은 위작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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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조선 말의 개화파 지도자 김옥균(金玉均.1851  ̄1894)이 갑신정변에 대해 직접 기록한 일기로 여겨졌던 '갑신일록(甲申日錄)'이 일본인의 위작(僞作)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조선일보가 13일 보도했다.

한.일 근대사 연구가인 강범석(姜範錫) 일본 히로시마시립대 명예교수는 12일 "당시 관련 문서들을 비교 분석한 결과, '갑신일록'은 일본인이 갑신정변 다음해인 1885년 말 김옥균이 쓴 것처럼 조작한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강 교수의 이 연구는 이번 주 단행본 '잃어버린 혁명'(솔출판사)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강 교수는 갑신정변 직후 일본으로 망명한 김옥균.박영효(朴泳孝)의 진술을 일본인이 기록한 두 종류의 '석필(石筆)일기'가 존재했다는 점, 이를 바탕으로 '조선 갑신일기(朝鮮甲申日記)'가 씌어졌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또 '조선 갑신일기'를 참고한 문서가 일본의 계몽 지식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쓴 '메이지(明治) 17년 조선 경성변란의 시말'이며, 다시 이를 토대로 '갑신일록'이 씌어졌다고 말했다. 내용과 문체, 기술 방식에서 '조선 갑신일기', '경성변란의 시말', '갑신일록'으로의 계승관계가 명백하다는 것이다.

'갑신일록'이 조작됐다는 결정적 단서로, 강 교수는 고종이 '일사내위(日使來衛.일본공사는 와서 지켜라)'라고 한 말이 중간 단계 문서의 일역(日譯)을 거쳐 '일본공사내호짐(日本公使來護朕.일본공사는 와서 짐을 지켜라)'이라는 말로 바뀐 점을 들었다.

이 밖에도 ▲김옥균이 썼을 리가 없는 일본식 한문 표현들이 나오는 점 ▲일본 공사가 서울에 부임하기 이전의 기록이 너무나 간략하다는 점 ▲우정총국 축하연 좌석도에 있어야 할 서광범(徐光範)이 빠져 있다는 점 ▲김옥균 자신이 '갑신일록'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조작의 증거로 제시했다.

'갑신일록'을 조작한 주체에 대해 강 교수는 "언론인 이노우에 가쿠고로(井上角五郞)와 후쿠자와 유키치 등이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갑신정변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의 역할을 은폐하기 위해 '갑신일록'에선 주(駐)조선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郞)에게 모든 책임을 씌웠다는 설명이다.

국내 학계는 강 교수의 분석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원모 단국대 명예교수는 "매우 치밀한 연구로,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그동안 갑신정변의 1급 자료였던 '갑신일록'의 조작을 밝힘으로써 갑신정변 자체를 재해석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뉴스 [digit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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