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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황진영의 미래를 묻다

우주를 방치할 건가, 광복 100돌까지 내다봐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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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우주정책 하나 없는 한국

황진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

황진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국에 우주정책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수년 전 미국 국무부를 방문했을 때 우주 관련 한국 담당 공무원이 던진 질문이다. 한국에는 국가우주연구개발 계획은 있으나, 국가우주정책은 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우주정책 업무를 해왔는데, 상대하는 한국 담당 공무원이 1~2년이 멀다고 교체되다 보니 “우주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과 계속 접촉해야 한다”는 푸념이기도 했다. 아마도 필자가 공무원이 아니었기에, 무례하고 모욕적일 수 있는 질문을 던졌겠지만, 어쨌든 당시 매우 충격적이고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오래도록 남았다.

필자는 그때 미국 조지워싱턴대 엘리엇 국제관계대학원 우주정책연구소에 방문학자 신분으로 체류 중이었다. 충격적인 질문을 받은 그 공무원과 만난 지 몇 달 뒤, 우연히 책 한 권을 접하면서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아야 했다. 미국 우주정책을 집대성한 존 록스돈 조지워싱턴대 교수의 『NASA 탄생과 우주탐사의 비밀』이었다. “아! 이것이 우주정책이구나!” 그동안 수많은 자료와 보고서를 봤지만, 책 속에 담긴 정부 공식문서를 통해 살아있는 우주정책을 보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인공위성 개발 소련에 뒤진 미국
NASA 설립해 인류 최초 달 착륙

우주개발은 국가역량 총결집체
전 세계 70개국 ‘우주청’ 만들어

한국은 과기부 1개 부서에 그쳐
우주 총괄할 전담조직 설립해야

1957년 스푸트니크 발사 충격

아랍에미리트(UAE)의 한 시민이 두바이 우주센터에 전시돼 있는 화성탐사선 사진 옆을 지나가고 있다. 탐사선은 2020년 7월 발사돼 지난해 2월 화성궤도에 안착했다. [AFP=연합뉴스]

아랍에미리트(UAE)의 한 시민이 두바이 우주센터에 전시돼 있는 화성탐사선 사진 옆을 지나가고 있다. 탐사선은 2020년 7월 발사돼 지난해 2월 화성궤도에 안착했다. [AFP=연합뉴스]

우주개발 초기, 미국은 소련과 인공위성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1957년 스푸트니크호 발사 이후 미국 사회엔 소련에 선수를 빼앗겼다는 비판과 소련이 미국 상공에서 군사 공격을 할 수도 있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반응은 신중했다. 당시 항공기가 비행하는 공역(空域)은 지상국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하나, 미지의 공간인 우주에 대해서는 정해져 있는 국제법이 없었다.

대공미사일의 위협을 받는 고고도 정찰기 U-2를 대체할 방법을 찾던 미국은 소련의 인공위성에 침묵함으로써 우주 공간을 주권이 미치지 않는 영역으로 관습법화하도록 하는 정책적 결정을 내렸다. 눈앞의 여론보다 우주에서의 장기적 활용성에 주목했다. 이후 ‘우주의 자유 항행 원칙’은 지금까지 미국의 핵심적 우주정책으로 지속하고 있다.

스푸트니크로 선수를 빼앗긴 미국은 소련을 추월하기 위해 국가 우주전략 수립에 들어간다. 1958년 국가안전보장회에서 ‘미국의 우주정책’을 발표하고 우주개발을 전담하기 위해 항공우주국(NASA)를 설립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국가항공우주위원회를 만들고 직접 위원장을 맡아 중요한 우주정책을 결정했다. NASA를 설립한 후 소련을 추월하기 위한 대안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우주정거장·달탐사선·무인달착륙 등 다양한 옵션을 두고 검토했으나, 달에 미국인을 착륙시켰다가 안전하게 귀환시키는 프로젝트가 유일하게 미국이 소련을 이길 수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1961년 전국에 텔레비전 생중계하는 가운데, 미 양원 합동회의에서 아폴로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국민과 의회의 동참을 호소하였다. 그 후 10년간 미국은 아폴로 프로그램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머큐리’ ‘재미니’ 프로그램에 이어, 마침내 아폴로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실현함으로써 소련을 추월해 세계 최강대국으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아폴로 프로그램은 단지 하나의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최종적인 하나의 목표를 위해 국가의 모든 우주 프로젝트를 체계적·순차적인 계획에 따라 진행했다.

우주군 창설 발표한 트럼프

옛 소련이 1957년 인류 최초로 쏘아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옛 소련이 1957년 인류 최초로 쏘아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에 따라 세계 각국은 자국 상공에 비행물체가 비행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심각한 군사적 위험을 느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가 유엔 산하에 유엔우주업무사무소(OOSA)를 설치하고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위원회’(COPUOS)에서 우주 활동의 원칙에 관한 우주조약을 확립하게 된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흘렀다. 2019년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주는 육상·해상·공중과 같은 전장의 공간”이라고 선언하고, 대통령 지침을 통해 우주군 설립을 발표했다. 이는 우주의 평화적 이용 원칙을 크게 벗어난 것이다. 미국의 군사적 주도권 유지의 핵심인 우주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을 저지하기 위해 우주군 창설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우주군 창설에 대한 대통령 행정명령은 미국의 중요한 우주정책의 변화였으며, 사실상 미국은 우주의 군사화를 넘어 우주의 무기화를 우주정책으로 채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1972년 아폴로 17호가 마지막으로 달을 떠난 지 40여 년 뒤,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정책지침- 4 국가우주정책(2010년)’을 통해 유인 화성탐사를 선언한다. 그 후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번째 우주정책지침에서 기존 오바마 대통령의 지침을 개정하고, 달에 먼저 인간을 보낸 뒤 화성으로 인간을 보내는 장거리 우주탐사 이정표를 발표한다. 미국의 우주개발정책에는 이렇듯 구석구석 대통령의 의지가 묻어있다.

우주는 인류 공동의 유산인가

유엔 우주조약은 제2조에 ‘달 및 기타 천체를 포함한 외기권은 국가 전유(專有)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규정과 달조약(1979) 제11조에 ‘달의 천연자원은 인류 공동의 유산이며, 국가나 개인의 재산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달조약은 지금까지 프랑스·인도·과테말라·루마니아 4개국만이 서명했을 뿐, 미국 등 대부분의 국가는 가입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우주자원 회수 및 활용을 위한 국제지원 촉진’이라는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은 우주를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미국인은 우주 공간에서의 상업적 탐사·복구·자원 사용에 관여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라고도 명시했다. 또 국제적 지원을 얻기 위해 ‘국무부 장관은 우주자원과 관련한 공동성명, 양자 및 다자간협정을 외국과 협상’하도록 명령하고 있다.

미국은 달 궤도 상에 ‘게이트웨이’라는 이름의 우주정거장을 설치하고 이를 활용하여, 달 표면에 수시 왕복 할 수 있고, 달에 유인우주기지를 건설하고, 나아가 유인화성탐사를 수행할 아르테미스 계획을 추진 중이다. 미국은 아르테미스 사업의 참여를 원하는 국가는 약정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우주자원 활용에 대한 기본 원칙을 포함하고 있다. 유엔의 우주원칙을 넘어 우주자원 탐사와 상업적 활용이라는 미국 입장을 강화하기 위한 단계적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가우주정책이라 하면 해당 국가가 우주 분야에서 나아갈 장기적 방향이나 방침을 대내외에 명확히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우주개발의 국가적 정책이 무엇인지, 그리고 미래를 위한 비전이 무엇인지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 우주정책지침, 대통령 행정명령 등을 통해 우주활동의 포괄적 지침을 담은 정부(대통령)의 우주 정책선언이 있고, 이에 후속하여 실행 계획이 뒤따르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이 있으나, 실제 구속력 있는 계획은 기본계획이라기보다는, 개별사업들뿐이다. 하나의 장기 비전을 설정하고 그 비전을 실행하기 위한 체계적인 국가 장기 로드맵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우주정책’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어떠한 정부 공식 문서도 없다. 우리가 미국과 같은 경제대국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거대 프로젝트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주개발을 통해 지향하는 철학과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인구 1000만 명에 불과하고 우리나라에서 우주기술을 배워간 아랍에미리트(UAE)에서도 2014년 우주청을 신설하고 2017년 ‘국가우주전략 2030’을 수립했다. 건국 50주년이 되던 2020년 7월에는 희망이란 뜻의 화성 탐사선 ‘아말’을 보냈다. 이 모두가 석유자원 고갈 이후를 대비하고 있다.

새 정부의 담대한 비전 필요해

우주개발은 단순히 경제적 수단만이 아니다. 국가의 기초체력인  과학기술의 발전, 미래를 향한 꿈과 희망, 국력과 국격의 과시, 국가안보를 위한 전략적 대비, 미래 신산업과 우주자원에 대한 기반 구축 등 여러 중요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이런 우주개발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해왔고, 그 결과 미국은 막대한 경제적 부와 세계 지도 국가로서의 위치를 구가하고 있다.

우주개발은 한 나라의 총체적인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학기술, 산업, 군사안보, 정치외교 등을 체계적으로 연결·조율해야 하는 분야다. 전 세계 70여 개 나라에서 우주를 전담하는 정부조직(우주청)을 설치하고 국가적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이다. 우리나라는 우주청은 고사하고 우주개발을 명시적으로 담당하는 정부 조직은 달랑 과기부의 ‘우주기술과’ 1개에 불과하다. “한국에도 우주정책이 있는가”라는 미국 국무부 공무원의 질문이 다소 엉뚱하게 보이면서도 한편 이해가 되는 이유다.

새 정부에서는 앞으로 광복 100년인 2045년을 대비하는 담대한 비전을 세워야 한다. 차기 대통령은 우주를 총괄할 전담 조직을 조속히 설립하고, 대한민국의 미래 100년을 준비해야 한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는 이제 세계 10위, 소련을 승계해 우주탐사를 이어가고 있는 러시아는 한국 다음인 세계 11위다.

황진영

한국항공대에서 항공공학 학·석사를, 영국 서섹스대에서 과학기술정책학 박사를 받았다. 공학도로 시작했지만 산업연구원·항공우주연구원을 거치며 항공우주 관련 정책학으로 돌아섰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 우주개발진흥실무위원회 위원, 항공우주시스템공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역서로 『NASA 탄생과 우주탐사의 비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