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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러시아 무역 최혜국 대우 박탈 ‘관세 폭탄’ 때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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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9호 12면

1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이르핀 마을 주민들이 러시아군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파괴한 다리를 건너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이르핀 마을 주민들이 러시아군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파괴한 다리를 건너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러시아를 옥죄기 위해 추가적인 경제 제재에 나섰다. 로이터통신 등은 1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에 대해 무역·통상 분야에서 ‘정상적 무역 관계(NTR)’를 철회하는 조치를 내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를 철회할 경우 러시아의 수출품에 고율의 관세가 부과된다.

NTR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의 ‘최혜국 대우’에 해당한다. 국가 간 무역에서 제3국에 부여한 조건에 비해 차별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러시아는 2012년 WTO에 가입해 국제 통상에서 최혜국 대우를 받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러시아에 대해 최혜국 대우에 맞는 관세 등을 적용 중이다.

따라서 NTR 박탈은 러시아의 최혜국 지위를 박탈하고 고관세를 부과할 근거를 마련하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러시아 수입품에 대한 관세 인상의 길이 열릴 것”이라며 “무역 특권을 폐지하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표는 주요 7개국(G7)과 유럽연합(EU) 등과 함께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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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 대한 최혜국 지위 박탈은 이전의 제재와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송기호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국제 무역·통상에서 미국이 러시아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특정 산업이나 특정인이 아닌 러시아 경제에 대한 광범위하고 전방위적인 제재”라며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위상을 고려할 때 ‘다른 나라도 따라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가 미국과 서방으로부터 최혜국 대우를 박탈 당할 경우 경제적 손실 외에도 국가 위상에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은 “러시아가 쿠바나 북한과 같은 나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전했다. 앞서 국제금융협회는 올해 러시아 경제가 제재 여파로 역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협회는 지난해 대비 올해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기존 예측치 3%에서 18%포인트 낮은 마이너스 15%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서방의 대러 압박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도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군이 그동안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여겨졌던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 공격을 감행했다고 11일(현지시간) AP통신이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북서부 루츠크시 군 비행장이 공습을 받아 우크라이나 군인 2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했다고 지역 관리가 밝혔다. 남서부 이바노-프란키우스크에서도 이날 공습경보가 울려 주민들이 대피했다. 러시아군은 지역 인근 공항을 공격했다.

동부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에 대한 공격도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주에 있는 정신병원에 포격을 가했다고 로이터통신이 하르키우 당국을 인용해 11일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올레그 시네후보프 하르키우 주지사는 “러시아군이 하르키우주 내 아이지움 마을 인근 정신병원을 포격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그는 당시 병원에 환자 등 360명이 있었지만, 이들 모두 방공호로 대피해 다행히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민간인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앞선 10일에는 우크라이나 북부 주도 체르니히우가 포위 공격을 당했고, 남부 해안 도시 마리우폴은 연일 계속된 폭격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대거 발생했다. 바딤 보이첸코 시장은 러시아 항공기가 30분마다 주거 지역을 공격해 노인·여성·어린이 등 민간인을 죽였다고 전했다. 길거리에는 시신이 흩어져 있다고 한다. 시 당국은 마리우폴에서만 최소 1300명 이상 사망한 것으로 추산했다.

수도 키이우의 교외 지역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는 가운데 러시아군의 진격이 계속되고 있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러시아군이 키이우 도심으로부터 약 14.5㎞ 떨어진 곳까지 접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확인된 민간인 사망자만 516명이 넘고 9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피해 집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실제 사망자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러시아군의 무자비한 공격에 각국 지도자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푸틴이 생명을 경시하고 있다”며 “이제 그가 민간인을 목표로 삼았다는 게 분명해졌다”고 비난했다. 또 “푸틴은 이번 전쟁에서 지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우방국들이 푸틴의 성공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트위터에 러시아군의 마리우폴 산부인과와 어린이 병원 폭격 관련 기사를 올리며 “약하고 무방비 상태인 사람들을 목표로 하는 것만큼 타락한 행동은 없다”고 규탄했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앞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처음으로 ‘전쟁’이란 표현을 썼다. 왕 부장은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과의 화상 회담에서 “우린 가능한 한 빨리 전쟁이 멈추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계 곳곳에서도 반러 분위기가 거세지고 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인을 혐오하는 ‘루소포비아(Russophobia)’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서방인들이 러시아와 관련된 것들에 대해 무차별적인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타임에 따르면 러시아인들이 길거리에서 “테러리스트”라는 비난을 듣거나 러시아 출신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에 대한 증오는 기물 파손 등 범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 워싱턴DC의 한 러시아 음식점은 협박 전화는 물론 괴한의 습격으로 문과 창문까지 파손을 당했다. 캐나다에서는 러시아 정교회 건물 일부가 붉은색 페인트로 칠해지는 테러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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