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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은행, 러시아 기업에 빌려준 150조원 떼일 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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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9호 12면

러시아에 150조원에 달하는 돈을 빌려준 전 세계 은행들이 채무를 회수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국제 대형 금융사의 러시아 엑소더스(탈출)도 현실화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등 월스트리트의 대표 투자은행(IB)은 러시아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CNN은 10일(현지시각) “국제결제은행(BIS)은 전 세계 국제 은행이 러시아 기업으로부터 돌려받아야 할 채무 대부분을 회수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보도했다. 은행들이 러시아 기업에 빌려준 돈은 1210억 달러(약 149조1567억원)가 넘는다. 대출금·지급보증은 물론 기업어음(CP), 사모사채 외에 역외 외화대출, 회사채 등이다. 가장 많은 돈을 빌려준 곳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유럽 은행이다. 이들이 안고 있는 채권액은 840억 달러(약 103조5300억원)에 달한다. 미국 은행도 147억 달러(약 18조1148억원)의 채권을 갖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는 현재 러시아의 경제 상황을 ‘국가 부도 직전’으로 본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8일 러시아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황에 임박했다며 국가 신용등급을 기존의 ‘B’에서 ‘C’로 6단계 강등했다. 러시아의 등급을 기존 BBB에서 6단계 아래인 B로 낮춘 지 5일 만에 추가 강등이다. 피치의 C등급은 무디스의 ‘Ca’와 같은 등급으로, 사실상 국가부도를 의미하는 ‘D’등급 직전 단계다. 무디스는 6일 이미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Ca로 낮췄다. 피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서유럽 대형 은행의 자산 질이 떨어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국제 제재 준수로 인해 은행들의 영업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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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며 러시아의 경제 상황도 악화 일로를 걷자 미국 은행부터 ‘사업 철수’를 시작했다. 블룸버그통신은 10일 골드만삭스가 성명을 내고 러시아에서 떠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골드만삭스는 이날 성명을 통해 “우리는 규제와 인·허가 요구 사항에 따라 러시아 사업을 축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요 투자은행 중 러시아 사업 철수를 공식 선언한 곳은 골드만삭스가 처음이다. 러시아에 근무하던 골드만삭스 직원 가운데 일부는 이미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이동했다.

골드만삭스의 성명 발표 직후 미국 최대 투자은행인 JP모건도 철수 계획을 밝혔다. JP모건은 “우리는 러시아에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며 “현재 (러시아에서의) 활동은 글로벌 고객의 기존 투자 관련 리스크 관리나 종료 지원, 현지 직원의 안전 관리 등에 한해서만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JP모건 소속 러시아 근무 직원은 약 200명이다. 블룸버그는 “씨티그룹도 러시아 사업 위험도 등을 재평가하고 있다”며 “미국과 유럽 등 서방 대형 금융기관이 러시아에서 철수한다면 인구 1억4400만명,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인 러시아를 더욱 고립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러시아에 돈을 빌려준 서방의 다른 은행도 골드만삭스나 JP모건처럼 철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두 은행은 러시아 사업 비중이 크지 않아 상대적으로 철수에 따른 부담이 적지만 다른 은행의 상황은 다르다. 지난해 말 기준 골드만삭스의 러시아 시장 채무 규모는 6억5000만 달러(약 8000억원) 수준이다.  러시아는 국제 은행의 연쇄 사업 철수에 ‘국유화 선언’ 엄포로 맞서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궁 대변인은 10일 러시아의 경제 상황 관련 “제재에 대한 보복을 약속한다”며 “철수하는 은행의 자산은 크렘린에 의해 압류되거나 국유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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