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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자금줄·핵심산업 조준…EU·英 등 고강도 추가제재 내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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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의 침공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만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의 침공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세계 각국이 고강도 추가 제재를 연달아 내놨다. 우크라이나에 직접 군대를 보내는 대신, 강력한 금융·경제 제재로 러시아를 압박하고 타격을 주겠다는 전략이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제재를 무력화할 회피 전략을 마련했을 가능성이 커 ‘솜방망이’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미국 CNN 방송,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연합(EU)·영국·호주·일본 등이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안을 내놨다고 보도했다. 전날 제재 동참을 예고했던 대만과 뉴질랜드도 ‘러시아 응징’ 대열에 참여했다.

EU, 러시아 은행·기업 70% 겨냥한 금융제재 

이날 EU는 러시아 은행과 주요 국영 기업의 70%를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금융 제재, 러시아의 핵심 산업인 에너지 분야와 항공 분야에 대한 수출 규제, 러시아 외교관·사업가에 대한 우대 폐지 등의 추가 제재안을 발표했다.

주요국 대 러시아 제재 주요 내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주요국 대 러시아 제재 주요 내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번 금융 제재로 러시아 차입 금액이 증가하고 인플레이션이 빨라져 러시아 산업 기반이 잠식될 것”이라며 “러시아 정·재계 엘리트들이 유럽 내 자금 은닉처에 더 이상 자산을 숨길 수 없도록 표적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AFP통신은 EU 소속 은행에 러시아인이 10만 유로(약 1억3500만원) 이상 예금할 수 없도록 EU가 추가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EU는 수출 규제를 통해 반도체 및 첨단 기술 분야 등 핵심 기술에 대한 러시아의 접근을 막는 게 목표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첨단 기술 부품에서 소프트웨어까지 러시아의 기술적 지위를 떨어뜨리고 경제 성장이 억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러시아에 항공기와 항공 산업 물품 수출을 금지하고, 정유 시설 개량을 어렵게 해 석유 산업에 타격을 노렸다. 항공 산업과 석유 산업은 러시아의 전략 사업이다. EU는 러시아가 2019년 석유 산업에서만 240억 유로(약 32조4000억원)를 벌어들였다고 주장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연합뉴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연합뉴스

"영국 금융시스템에서 러시아은행 완전 차단"

영국은 러시아 2대 은행인 국영 VTB의 자산을 동결하고 주요 은행들의 파운드화 시장 접근을 차단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러시아의 무역거래 절반이 달러화와 파운드화로 이뤄진다”며 “이번 조치로 영국 금융시스템에서 러시아 은행들을 완전히 차단했다”고 말했다.

런던 금융시장을 통한 러시아 정부와 기업의 자금 조달도 막았다. 러시아 국적자에게는 영국 은행 예금액을 5만 파운드(약 8000만원)로 제한하는 조치도 내놨다. 푸틴 대통령의 전 사위 등 재벌 5명에게도 자산 동결과 입국 금지 조치가 취해진다.

호주도 러시아 과두 정치인과 우크라이나 침공에 찬성표를 던진 국회의원을 겨냥해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뉴질랜드는 러시아 정부 관계자 여행 금지, 군사·비군사 물품 수출 금지, 양자 간 군사 협의 중단 등의 제재안을 발표했다. 자국 내 러시아 대사 추방도 검토 중이다.

일본도 지난 23일 러시아 정부 채권의 일본 내 발행 및 유통 금지 등의 제재를 결정한 데 이어 25일에도 추가 제재안을 발표했다. 러시아 개인·단체에 대한 자산 동결과 비자(사증) 발급 정지, 러시아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자산 동결, 러시아 군사 관련 단체에 대한 수출 및 반도체 등의 러시아 수출 금지 등이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주요 7개국(G7)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긴밀하게 협력해 제재를 강화한다”고 말했다.

대만 정부는 러시아를 어떻게 제재할지 명시하지 않았지만 제재 대열에 동참 의사를 밝혔다. CNN은 “대만은 반도체 칩 생산의 글로벌 리더”라면서 반도체 수출 금지 등을 통해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 정부는 독자 제재는 아니지만, 대러 수출 통제 등 국제 사회의 제재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연합뉴스

러의 역대 최대 외환보유고, 가상화폐 등 변수

일부 외신은 이 같은 제재로 러시아에 치명상을 주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BBC는 최근 러시아가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과의 교류를 늘리고 있고, 역대 최대 외환보유액(6350억 달러, 약 763조원)을 확보한 상태라 각국의 금융 제재가 당장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봤다. 블룸버그는 ‘가상화폐’가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거래 익명성이 특징인 가상화폐를 활용해 기존 금융 시스템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제재망을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퀀텀이코노믹스의 마티 그린스펀 최고경영자(CEO)는 “개인과 단체가 사업을 벌일 때 은행을 통해 할 수 없다면 비트코인으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돈세탁 방지 규정 전문가인 로스 델스턴은 “러시아인들이 통화로 가상화폐를 사용하기로 결정한다면 사실상 모든 제재를 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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