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못하고 "우왕좌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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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베를린=유재식 특파원】독일의 통일과 함께 이름까지도 없어져 버린 구 동독 지역을 어떻게 호칭할 것인가가 통일을 이룩한 지 3주가 된 지금 독일인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통일 1개월 여 전부터 독일의 언론들은 구 동독지역을「아직도 독일연방공화국」이란 뜻으로「Noch DDR」란 표현을 써 오다 10월3일부터「구」「전」「한때」등의 형용사들과 함께 DDR등의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러나 DDR란 나라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슈타지 독재정권」등 이 쉽게 연상되는 등 어감도 좋지 않기 때문에 새롭고 참신한 호칭을 사용하자는 것이 독일국민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특히 통일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구 서독에 흡수합병 당해「국가의 몰락」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동쪽 주민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서도 이 지역에 대한 새로운 호칭이 절실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으나 백가쟁명식으로 의견만 분분할 뿐 아직 정착된 표현은 없는 상태다.
그러나 이미 일부 직종에서는 구 동독지역을 자기네 편한 대로 부르고 있다.
구 동독의 국가인민군을 흡수한 독일연방군에는「새로 편입된 지역」이라는 군대식-표현으로 동쪽지역을 부르고 있으며 연방체신부 직원들은 우편번호 앞의 철자에 각각 동·서를 의미하는「O지역」「W지역」으로 구동서독을 구분하고 있다.
이밖에 기상대에서는「동쪽절반」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수학적으로 틀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치인들 중에는 과거에 쓰던 대로「저쪽」이란 모호한 표현을 쓰는 사람도 많다.
이 지역에 대한 호칭문제는 특히 언론사마다 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뒤셀도르프의 경제지 한델스블라트지는「엘베강 저쪽지역」이 어떠냐고 제안하고 나섰다. 좌익 진보성향의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지는「새로운 5개 주」라는 뜻으로「FNL」(Funf Neue Lander)을 사용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반군단체 이름을 연상시키는 이 FNL은 구동베를린 지역을 제외하고 있는 것이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가장 많은 언론사들이 사용하고 있고 따라서 앞으로 구 동독지역에 대한 호칭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많은 표현은 가장 일반적인「동독」이다.
동독 즉「오스트 도이칠란트」라는 말에 대해 독일 최대의 백과사전인 브로크 하우스는『▲1919년까지는 엘베강 이동의 독일제국 영토, 또는 프로이센과 독일제국의 동쪽 지방을 의미했고 ▲45년 이후는 소련군 점령 지역을, 61년부터는「현재는 이상한 정권이 들어서 있는 독일의 동부지역」을 의미했으며 ▲69년 11월부터는「중부 독일」이란 말과 함께 사라지기 시작한 표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동독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북해 연안의 로스토그나 슈베린 같은 도시가 어떻게 동독이냐』는 지적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는데 구 동독의 공업전문지 메탈지는 이 호칭에 대해 현상공모까지 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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