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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34.3%가 부끄럽다, 범죄자 '노래방 대화' 도배된 토론 [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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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1일 MBC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선관위 주관 1차 TV토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오른쪽)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왼쪽)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두 후보는 이날도 치열한 네거티브 공방을 이어갔다. 국회사진기자단

21일 MBC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선관위 주관 1차 TV토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오른쪽)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왼쪽)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두 후보는 이날도 치열한 네거티브 공방을 이어갔다. 국회사진기자단

21일 대선후보 TV토론에 또다시 녹취록이 등장했다. 이번엔 대선 후보와 그 가족들의 목소리가 아닌 대장동 의혹으로 구속된 피의자들이 노래방에서 나눈 대화였다. 양강 대선 후보의 이름 뒤에 ‘게이트'나 '죽어’라는 섬뜩한 단어가 등장했다. 녹취록에 언급된 두 후보는 서로를 향해 “거짓말”과 “사퇴"를 언급하며 막말을 주고받았다. 서로를 경멸하는 듯한 표정과 태도는 물론이었다.

시청률 34.3%, 국민 세 명 중 한 명이 봤다는 21일 밤 대선 후보 TV토론에선 이런 장면이 이어졌다. 토론 주제는 코로나 시대의 경제정책과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이었다. 좁아진 취업문과 턱없이 높은 집값, 고갈될 위기에 처한 국민연금과 매일 10만여 명의 확진자가 나오는 코로나19에 대한 해결책이 치열하게 논의돼야할 자리였다. 그런데 그 자리 한복판을 차지한 건 맥락 없이 편집 된 범죄자들의 ‘노래방 대화’였다. 두 정당은 토론이 끝난 뒤에도 녹취록 의혹을 두고 서로에게 독설을 내뿜고 있다.

두 후보는 TV토론에서 서로에게 수차례 질문과 의혹을 제기했다. 답을 듣길 원하는 태도는 아니었다. “대답하지 마세요. 질문 안 했어요(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얘기해봐야 본인 얘기만 할게 뻔해서(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라는 식의 대화가 반복됐다. 아이와 함께 보고 있었다면 저런 대화법을 배울까 봐 채널을 돌리고 싶은 순간들이었다.

경제 정책 전반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를 관전하기는 쉽지 않았다. 국가 부채 비율을 두고도  “몇 퍼센트가 국채 비율로 적당하냐”는 단답형의 질문이 반복됐다. 그러다가 다시 대장동 의혹으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1일 MBC에서 열린 선관위 주관 첫 토론회에서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선대본부 TV토론 준비단장인 황상무 전 KBS앵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1일 MBC에서 열린 선관위 주관 첫 토론회에서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선대본부 TV토론 준비단장인 황상무 전 KBS앵커. [국회사진기자단]

질문은 질문이라기 보단 공격에 가까웠다. 내 진영의 지지자들을 향한 유세와 닮아 있었다. 질문 뒤 자기 시간을 내주며 답을 듣는 안철수·심상정 후보가 어쩐지 손해를 보는 느낌이었다. 안 후보와 심 후보의 정책 질문에 다소 쩔쩔매던 양강 후보들은 준비된 네거티브 공격을 할 때만 자신감이 넘치는 듯 했다.

한국 사회의 혐오 문제를 연구하는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는 “두 후보가 다른 대선후보를 대화와 경쟁의 파트너로 바라보기보단, 정치 혐오적 대상으로 대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평가했다.

‘막장 대선’이란 말이 더는 낯설지 않다. 역대 최대의 비호감 대선이란 말도 나온다. 하지만 2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TV토론의 시청률은 높았다. 34.3%는 TV토론이 처음 도입된 15대 대선 토론 시청률(55.7%)엔 못 미치지만, 5년 전 이른바 ‘촛불 대선’ 첫 토론회의 시청률(22.1%)을 훨씬 상회했다.

21일 오후 MBC 미디어센터 공개홀에서 열린 선관위 주관 1차 토론회에 참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왼쪽)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모습.국회사진기자단

21일 오후 MBC 미디어센터 공개홀에서 열린 선관위 주관 1차 토론회에 참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왼쪽)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모습.국회사진기자단

이런 수치는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갈증을 느끼고 있음을 방증한다. 내 미래를 맡길 후보를 녹취록과 네거티브가 아닌 두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TV토론에 나선 대선 후보들은 그 갈증을 해소해주지 못했다. 후보들의 정책보단 ‘거짓말’‘사퇴’‘죽어’‘게이트’와 같은 거친 단어들만 기억에 남았다.

15대 대선 당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TV토론 준비에 참여했던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TV토론의 수준은 오히려 떨어졌다”며 “후보들이 국민이 아닌 지지자들만 바라보고 말하고 있다”고 했다.

2주 뒤엔 다음 대통령이 결정된다. 남은 TV토론은 단 두 번뿐이다. 녹취록이나 막말, 네거티브의 자리를 각 후보의 정책과 비전이 채우길 바란다. 괴물이든, 식물이든, 차선이든 차악이든, 유권자들에겐 선택할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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