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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88% 오를땐 외면한 이 통계, 1% 떨어지자 갖다쓴 정부 [현장에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이 청와대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2.2.14.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이 청와대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2.2.14. [연합뉴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한 언론매체와 인터뷰에서 올해 집값 전망에 대해 "지금 가격에 수요가 뒤따라가지 않으니까 거래가 위축되는 현상이라서 좀 추가적인 시장의 하향 조정은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최근 실거래가격지수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는 사실상 주택 시장이 마이너스로 전환된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다"며 "12월에도 마이너스 폭이 꽤 커졌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자신의 공식 페이스북에 이호승 실장의 인터뷰를 공유하면서 "청와대의 관점이 잘 담겨 있다"며 일독을 권했다.

이 실장의 주장대로 한국부동산원이 월 단위로 집계하는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격지수는 지난해 11월(-0.82%)과 12월(-0.95%) 연속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4월 이후 줄곧 오르더니 1년 8개월여만 상승세가 꺾였다. 대출규제 강화와 금리 인상 등에 따른 돈줄 죄기 여파와 집값 급등에 대한 피로감 등이 누적되며 거래절벽이 장기화한 탓이다.

정부는 최근 집값이 '추세적 하락'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한다. 지난해 말 이후 집값 상승 동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정부가 그동안 외면했던 '실거래가격지수'를 꺼낸 것은 입맛에 맞는 통계 선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매매가격지수 27.3%, 실거래가격지수 88.1% 상승

매매가격지수 vs 실거래가격지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매매가격지수 vs 실거래가격지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2020년 7월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회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집값 상승률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에 "서울 집값은 11%, 아파트 가격은 14% 올랐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월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이 청와대에 같은 질문을 했을 때도 17.17%라는 답을 들었다. 이는 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른 매매가격지수 상승률을 인용한 것이었다.

부동산원의 집값 통계는 크게 주간·월간 단위로 발표하는 매매가격지수와 월간 단위의 실거래가격지수로 나눌 수 있다. 부동산원의 매매가격지수는 전문조사자가 '거래 가능 가격'을 산출해 기하평균 방식(제본스지수)으로 산정한다. 이 조사는 짧은 기간(주간 단위), 많은 지역의 가격 흐름과 변동성을 반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실거래가격지수는 지수산정 기간 중 실거래 신고가 2회 이상 발생한 동일주택의 가격 변동률과 거래량으로 산출한다. 미국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케이스-실러 지수와 산출방식이 유사하다. 실거래 데이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국민이 체감하는 집값 변동성에 근접하다. 부동산원의 실거래가격지수는 2017년 5월 94.2에서 지난해 12월 177.1로, 문재인 정부 들어 88.1% 상승했다.

매매가격지수는 조사원의 평가 가격을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 시장의 가격 변동보다는 덜 민감하다. 집값 변동성이 큰 시기에는 다른 통계에 비해 변동률이 낮을 가능성이 높아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었다. 실제로 2017년 5월 이후 월간 매매가격지수는 27.3%(82.84→104.38) 오르는 데 그쳤다.

주택가격 관련 통계 비교.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주택가격 관련 통계 비교.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런데도 정부는 실거래가격지수가 거래가 많은 지역 위주로 반영해 전국 주택의 변동률을 대표하기 어렵다며 매매가격지수를 집값 동향을 판단하는 주요 지표로 활용해 왔다. 결국 집값 급등기에는 덜 오른 지수를, 하락기에는 더 떨어진 지수를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강남 4구 3억4000만원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유리한 통계로 대선용 '공포 마케팅'을 펼친다"는 비판도 나온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3일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 장관 회의에서 "2월 1∼20일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 실거래 계약을 보면 16개 단지에서 전 고가 대비 하락 사례가 포착되는 가운데 초소형(전용면적 40m² 미만)을 제외한 아파트 평균 하락 금액은 3억40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이 기간 강남 4구 거래 신고 건수는 39개 단지, 45건으로 가격이 하락한 거래는 11개 단지, 12건이다. 이마저도 하락 거래 평균 하락 폭은 1억8683만원으로 정부 발표와 차이가 난다. 또 이 가운데는 공인중개사를 끼지 않은 직거래도 다수 포함돼 있다. 가족 등 특수관계인과 증여성 거래가 의심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송파구 신천동 롯데캐슬골드 전용 166㎡는 지난 12일 22억7100만원에 팔렸는데, 지난해 10월 27억6000만원보다 4억8900만원 낮은 금액이다. 이 역시 직거래였다.

2018년 종부세율 인상 등을 담은 9·13 대책 이후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격지수는 6개월 연속 하락한 적이 있다. 그때도 양도세 중과 등으로 퇴로가 막힌 다주택자 매물이 자취를 감추면서 거래가 크게 줄고 가격이 하락했다. 하지만 2019년 5월 이후 실거래가격지수는 53.5% 상승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도 정부가 단기 지표의 변동을 근거로 집값 안정을 말했다가 집값이 다시 오른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고 지적했다. KB부동산의 최근 설문조사에서 부동산 전문가 74%가 올해 수도권 집값이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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