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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오롯한 대선후보의 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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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기축통화의 힘은 압도적이다. 미 달러화는 중국·러시아·북한에서도 대외 결제의 핵심 수단이 되고 있다.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로 미 달러화가 준금본위제를 토대로 기축통화의 지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12월 1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검수하고 있다. 뉴시스

기축통화의 힘은 압도적이다. 미 달러화는 중국·러시아·북한에서도 대외 결제의 핵심 수단이 되고 있다.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로 미 달러화가 준금본위제를 토대로 기축통화의 지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12월 1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검수하고 있다. 뉴시스

이번 대선처럼 네거티브가 난무했던 적이 있었나. 전례 없던 ‘배우자 리스크’까지 맞물려 막장 드라마를 능가한다. 당사자들 사이에는 ‘주술사’ ‘히틀러’ 같은 인신공격이 오갔고, 참모들도 정책 홍보 대신 비방에 열을 올린다. 그러다 보니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온 게 아닌가 싶다. 서로 상쇄할 만큼 비방을 주고받았으니 진검승부의 시간이 왔다는 얘기다.

남은 2주는 중도층 사로잡는 시간 #네거티브는 차고 넘쳐 영향력 약화 #비전과 진정성으로 자격 입증해야

후보 토론이 승부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그제 첫 법정 토론이 그 여지를 보여줬다. 여전히 네거티브가 판을 쳤지만, 정책의 차별성이 엿보이면서다. 특히 부동표 내지 중도층은 후보의 비전과 정책을 주시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크게 보면 각각 지지율 35%를 오차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가치관이 부닥치는 민주사회에선 이상할 게 없다. 결국 이번 선거의 캐스팅보트는 30% 안팎의 중도층이 쥐고 있다. 그제 토론은 이들 중도층에 의미 있는 화두를 제법 던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는 국채 발행과 기축통화국을 놓고 강하게 맞붙었다.

기본적으로 이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2019년 문 대통령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 40%의 근거가 뭐냐”고 하면서 재정 확대의 봇물이 터졌다. 기획재정부가 저항했지만 ‘제왕적 대통령’의 힘 앞에선 무력했다. 이때부터 국가 채무 비율은 30%대에서 수직 상승해 올해 50%를 돌파, 3년 후엔 60%까지 치솟는다. 그만큼 정부가 발행한 국채가 늘어나면서 시중금리가 치솟아 이자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 국가 채무의 부메랑이다.

이 후보는 그간 “우리나라도 국가 채무 비율이 100%를 넘겨도 특별히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지론을 폈다. 이 후보는 토론에서 이 논쟁에 또 불을 붙였다. 윤 후보가 “국채 발행을 얼마든지 해도 된다는 것이냐”고 묻자 이 후보는 “얼마든지 해도 되는 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국제기구는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85%까지 적절하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도 50% 정도 밖에 안 된다. 매우 낮아서 충분히 (국채를 더 발행할) 여력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곧 기축통화국으로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만큼 경제력 수준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 “우리나라를 기축통화국으로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가슴이 웅장해진다”고 비꼬았다. 이에 민주당 측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발표한 보도자료 내용을 인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채무 비율이 올해 50%를 돌파했다. 나랏빚이 많으면 대외 신인도가 하락해 외국인의 증시 이탈을 촉발할 수 있다. 25년 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10%대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을 수 있었던 든든한 배경이었다.

국가채무 비율이 올해 50%를 돌파했다. 나랏빚이 많으면 대외 신인도가 하락해 외국인의 증시 이탈을 촉발할 수 있다. 25년 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10%대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을 수 있었던 든든한 배경이었다.

비방이 판치던 흐름 속에 모처럼 정책토론이 나온 측면에선 고무적이다. 국가 채무를 어느 정도 용인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졌기 때문이다. 다만 기축통화(key currency, global currency)는 성격이 다른 문제라는 점을 짚어두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한국 내부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 패권국의 전유물이기 때문이다. 또 기축통화는 경제성장의 결과이지 우리가 희망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전경련 보고서에 나온 것은 특별인출권(SDR) 편입 가능성이다. SDR에는 미 달러를 비롯해 유로·파운드·위안·엔 등 5개 통화가 들어 있다. 이중 기축통화는 미 달러화뿐이다. 국제 결제를 위해 어디서나 통용되는 힘을 가져야 기축통화다. 미국과 대립하는 중국·러시아조차 달러가 있어야 국제무역이 가능한 이유다.

중도층은 양 진영의 도덕성은 차치하고 정책의 차별성을 더 깊이 들여다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물론 공약 비용으로 이 후보가 최소 300조원, 윤 후보가 266조원을 내걸었으니 재정을 화수분처럼 쓰겠다는 점에선 차별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주택 공급으로 이 후보는 311만 호, 윤 후보는 250만 호를 제시했다. 이 후보는 주가지수 5000 달성을 내걸었다.

기축통화국이나 주가지수나 주택 공급은 구호로 되는 게 아니다. 경제성장의 결과일 뿐이다. 이런 이치로 볼 때 기업의 투자환경부터 바꾼다고 하는 게 순리다. 중도층엔 과장과 허풍, 네거티브가 통하지 않는다. 남은 2주는 오롯이 진정성과 비전이 관건이다.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