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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투·개표 감시하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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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방현 기자 중앙일보 내셔널부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2020년 4·15 총선 당일 충남 부여군 개표소이던 부여유스호스텔에서 이상한 상황이 발생했다. 옥산면 사전선거 투표지 415장을 기계(투표지 분류기)로 분류한 결과 기호 1번 후보 득표함에 2번 후보 표가 섞인 게 발견됐다. 이를 목격한 기호 2번 측 참관인이 항의했다. 참관인은 “분류기 속도가 빨라 오류를 발견하기 어려웠다”고 증언했다.

선관위가 해당 투표지를 다시 집계했더니 후보 득표수가 달라졌다. 선관위는 분류할 때마다 개표상황표에 득표수를 적었다. 그런데 재분류한 뒤 선관위 관계자가 누군가에 첫 번째 결과를 기록한 개표상황표를 찢으라고 손짓했다. 선거사무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이를 찢었다. 이 장면은 CCTV 동영상과 경찰 조사 등을 통해 확인됐다.

2020년 4·15총선 당일 충남 부여군 부여유스호스텔에서 개표가 진행되고 있다. [중앙포토]

2020년 4·15총선 당일 충남 부여군 부여유스호스텔에서 개표가 진행되고 있다. [중앙포토]

이와 관련, 김소연 변호사는 선관위 관계자를 공용서류무효,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2020년 12월 고발했다. 경찰은 “개표 상황표는 단순 출력물이어서 찢었다 해도 불법으로 볼 수 없다”라고 했다. 하지만 고발인은 “개표상황표는 국가기관이 공적 업무를 수행하다 작성한 엄연한 공문서(대법원 판례)”라며 검찰에 재수사를 요구했다. 고발한 지 1년 3개월이 지나도록 검찰은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고발인은 “분류할 때마다 결과가 달라지는 분류기는 왜 쓰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4·15 총선은 투·개표 과정에서 유독 논란이 많았다. 선거(당선)무효 소송이 120여 건이나 제기됐지만, 재검표가 진행된 데는 5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결론이 난 곳은 없다. 선거 소송은 대법원이 6개월 이내에 선고해야 한다.

재검표가 진행된 곳에서도 비정상적인 장면이 속출했다. 지난해 11월 12일 고양지원에서 진행한 파주시을 지역구 재검표에서는 이른바 ‘배춧잎 투표지’에 이어 ‘화살표 투표지’까지 나왔다. 배춧잎 투표지는 지역구 투표지 하단이 연두색인 비례대표 투표지 기표란이 중첩돼 인쇄됐다. 화살표 투표지는 투표지 상단에 붉은색 화살표가 코팅된 것처럼 인쇄된 상태였다. 이런 투표지를 보고 현장에 있던 선관위 관계자가 당혹스러워하던 게 생생하다. 불법적인 요소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3·9일 대통령 선거에서도 사전선거 투표용지에 QR코드를 사용하는데, 이는 공직선거법(151조) 위반이다.

의혹이 해소되지 않자 국민이 직접 나섰다. 시민단체는 대선을 앞두고 투·개표 감시단원을 모집하고 있다. 한 시민단체 대표는 “부정선거를 막겠다”며 대통령 후보로 등록했다. 국민의힘은 투·개표 참관인에게 공직선거법과 투·개표 감시 요령 등을 교육하고 있다. 선거제도 핵심은 투명성이 완벽히 보장되는 투·개표 절차다. 그런데 이 절차가 의심받고 있다. 이번 대선은 선관위와 사법부가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