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소탕 대상 분명히 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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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찰의 과잉 실적주의를 경계한다.
「범죄와의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21일로 「경찰의 날」 45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극도로 혼란했던 여러 차례의 격동기 혼란을 수습,사회질서 유지와 국민의 인명 및 재산보호라는 국가의 1차적 기능을 수행해온 경찰가족에 먼저 축하를 보내면서 이 기회에 바람직한 경찰상 정립을 위한 고언을 몇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말할 것도 없이 경찰의 임무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보호 및 사회공공의 질서유지다. 이는 또한 국가의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기능이기도 하다. 한 국가의 이같은 기본기능이 경찰을 통해 효율적으로 발휘되느냐의 여부가 곧 그 국가사회와 정부의 안정의 기본이 된다.
노태우 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를 우리는 이런 입장에서 원칙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1주일을 지나는 동안 몇가지 가시적 효과도 없지 않았지만 우려했던 부작용 또한 심각하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상황이란 점을 감안,시민들도 생활에 어느 정도의 제약을 감수해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쟁」에서 범죄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목적과 대상,그리고 수단의 정당성이 확보돼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이미 지적했던 내무부와 법무부의 국민기본권까지 제약하려드는 입법 추진의 부당성을 지적한 바 있다. 여기서 말하자면 「범죄와의 전쟁」 최일선에 배치되고 있는 경찰의 「전쟁」에 임하는 자세에 문제가 있음을 다시한번 지적해두고자 한다.
첫째 경찰은 이번 「전쟁」에서 「소탕」의 대상을 잘못 알고 있거나 과욕으로 지나치게 넓게 잡고 있다. 시민들이 대통령의 결의에 그나마 수긍한 것은 강도 강간이나 마약ㆍ투기 등 사회악에 공권력을 총동원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범위를 이같은 범죄에 국한시켜도 힘겨운 싸움인데 시국치안과 노사분규에까지 강경대응하겠다며 그쪽에다 더 많은 경찰력을 투입하는 것 같은 인상이다. 대학과 노동현장에 경찰력을 마구 투입하면서 오히려 조용해지던 대학가와 노동현장이 시끄러워지는 부작용을 빚고 있지 않는가.
둘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상부에서 한마디만 나오면 보고용으로 실적을 꾸미려는 폐습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이다.
피의자를 붙잡아놓고 증거물을 조작한다든지 동네 이웃끼리의 화투놀이에 수십명을 연행했다 풀어주는 일 등에서 우리는 경찰의 실적주의를 보고 있다.
심지어는 구타 등으로 사건을 조작하는 사례까지 있다고 들린다. 그것은 공권력에 의한 또다른 범죄가 아니고 무엇인가.
셋째로 기회주의적 발상의 싹을 보는 것 같은 우려다. 유흥업소나 관광지 주변을 무장한 경찰이 지키고 출입자를 체크한다든지,파출소 습격에는 「반드시 공포를 쏘라」는 식의 지시는 「전쟁」을 기화로 그동안 불편했던 심기를 일소하겠다는 뜻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몽땅 떠맡아 범죄와 힘겨운 싸움을 해온 경찰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렇지만 정작 범죄는 밑바닥에 숨겨져 있는데 모든 선량한 시민까지를 포함해서 소탕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경찰의 접근방법은 재검토돼야 한다. 시민을 「적」으로 돌리고선 「범죄와의 전쟁」에 이길 수 없음을 다시한번 지적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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