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한국기원 의정부 시대 성공 조건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스페인 빌바오는 명품 건축 덕분에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됐다. 의정부에 들어설 새 한국기원 건물이 기대되는 이유다. [중앙포토]

스페인 빌바오는 명품 건축 덕분에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됐다. 의정부에 들어설 새 한국기원 건물이 기대되는 이유다. [중앙포토]

지방자치단체와 바둑의 인연은 끈끈하다. 전라남도와 신안, 강진, 영암 3군은 매년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를 연다. 신안군은 1004섬 신안국제시니어바둑대회도 연다. 강진은 김인 9단, 영암은 조훈현 9단, 신안(비금도)은 이세돌 9단을 배출했다. 이들을 잇는 국수산맥이 대회로 탄생한 것이다. 하찬석 9단의 고향인 경상남도 합천군은 KB한국바둑리그의 ‘수려한 합천’ 팀을 갖고 있다. 영재대회인 하찬석 국수배도 연다. 조남철9단의 고향인 전라북도 부안군엔 NH여자바둑리그 부안새만금잼버리 팀이 있다. 가만 보면 과거의 이름난 국수들은 다 지방 출신이고 특히 호남지역에 많다.

NH여자바둑리그는 8개 팀 중 무려 6개 팀이 지방자치단체 팀이다. 순천만 국가정원, 서귀포칠십리, 섬섬여수, 보령머드, 삼척해상케이블카, 그리고 부안까지 줄줄이 자치단체팀이고 이름에서 벌써 어느 지역인지 드러난다. 편강배 시니어리그도 8팀 중 5개 팀이 지자체다. 부천판타지아, 스타 영천, 의정부 희망도시, 통영 디파랑, 영암월출산. 강릉시는 지난해 난설헌배여자바둑대회를 신설해 대열에 참여했다.

수많은 지자체 중에서도 근래 바둑에 부쩍 열을 올리는 곳이 있다. 바로 경기 북부의 의정부시다. 의정부는 김영삼 9단과 인연을 맺으면서 바둑과 가까워졌다. KB바둑리그의 ‘바둑메카 의정부’ 팀을 창설하더니 시니어리그에도 ‘의정부 희망도시’라는 팀을 꾸렸다. 여기에 최근 ‘의정부국제신예단체전’이란 대회를 새로 만들었고 이미 한국대표를 뽑았다.

이런 바둑 사랑 이면엔 의정부의 희망이 존재한다. 의정부를 진짜 바둑의 메카로 만드는 것이다. 바로 한국바둑의 중심인 한국기원을 통째 의정부로 옮기는 것인데 그 첫걸음은 바둑 전용 경기장 건설이다. 기무사가 떠난 부지에 올 9월 착공하는 전용 경기장은 2024년 7월 개관하게 되는데 사업비는 396억원이다. 지하1층 지상 4층, 연면적 1만㎡에 대국장, 방송시설, 전시장 등이 완공되면 한국기원은 이곳으로 옮기게 된다.

현재 한국기원은 성동구 홍익동, 즉 왕십리라 불리는 동네에 있다. 5층 건물인데 1994년 프로기사 수가 127명일 때 종로 관철동에서 이곳으로 왔는데 지금은 프로 400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 비좁을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의정부가 나섰다. 한국기원 이사회는 ‘의정부행’을 확정했고 지난해엔 이행각서를 체결했다. 열차는 벌써 떠난 것이다.

변수는 있다. 의정부는 군사도시나 부대찌개 같은 이미지를 벗고 문화와 스포츠 도시로 탈바꿈하고 싶다. 안병용 의정부시장이 바둑을 높이 평가하며 한국기원 유치에 발 벗고 나선 이유다. 하지만 그는 올해 3선이 모두 끝나 시장직을 떠난다. 그가 떠나도 이 사업은 그대로 추진될 수 있을까. 전에 화성시가 동탄 신도시에 바둑을 유치하려고 애쓴 일이 있다. 프로기사들이 몰려가 현장에서 시장의 브리핑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순조롭던 이 프로젝트는 시장이 바뀌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시들었다.

또 하나 문제가 있다. 지금 한국기원 위치는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성수동 바로 옆이다. 이곳에서 먼 의정부로 떠나는 게 과연 백년대계일까 하는 의문이다. 혹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존재한다. 안 시장은 “전세계 기사들에게 내놓을만한 건축공간이 만들어지는 것. 한국바둑도 더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며 성공을 자신한다.

바둑은 긴 역사, 대국, 전시물 등이 문화적 향기를 품고 있으므로 좋은 건축물이 탄생할 수도 있겠다. 미술관 하나로 쇠락한 공업도시에서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스페인의 빌바오가 떠오른다. 한국기원의 의정부행은 확정됐다고 한다. 지금은 건물 설계 중이라니까 근사한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