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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도윤희 "나는 아름다움을 찾아 항상 길을 떠난다"

중앙일보

입력

도윤희, 무제 , 2018-2021, 캔버스에 유채, 162 x 130.5 cm. [사진 갤러리현대]

도윤희, 무제 , 2018-2021, 캔버스에 유채, 162 x 130.5 cm. [사진 갤러리현대]

도윤희 개인전 '베를린' 전시 전경. [사진 갤러리현대]

도윤희 개인전 '베를린' 전시 전경. [사진 갤러리현대]

도윤희 개인전 '베를린' 전시 전경. [사진 갤러리현대]

도윤희 개인전 '베를린' 전시 전경. [사진 갤러리현대]

이것은 풍경이다. 흐드러지게 핀 형형색색의 꽃들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일렁이는 풍경. 전시장의 캔버스는 비밀의 숲으로 통하는 입구가 되고, 또 푸른 호숫가로 이어지는 길이 된다. 화가 도윤희(61)는 이렇게 네모 화폭 안에 색(色)의 풍경을 펼쳐놓았다.

갤러리현대, 개인전 '베를린' #빛 발하는 색채 추상 40여점

물감과 붓으로 시(詩)를 쓰듯이 작업해온 도윤희(61) 작가가 서울 삼청동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 '베를린(BERLIN)'을 열고 있다. 7년 만에 여는 이번 개인전에 작가는 베를린과 서울에서 완성한 신작 40여 점을 풀어놓았다. 캔버스에서 폭죽 터지듯이 눈부신 색과 빛의 향연이 눈에 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개막 직전까지 내 그림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정도였다"며 "그림 하나하나엔 어휘를 쓰지 않았을 뿐, 그 어떤 말이나 글보다 훨씬 적나라하고 내밀한 감정이 담겼다"고 말했다.

도윤희는 1세대 서양화가이자 정물화 대가인 도상봉(1902~1977)의 손녀로, 미술계는 그의 여정을 눈여겨봐 왔다. 성신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85년 첫 개인전을 연 이래 꾸준히 작업해왔다. 20세기 최고 화상이자 아트바젤 설립자인 에른스트 바이엘러가 설립한 갤러리인 스위스 갤러리바이엘러에서 2007년 아시아 작가로 최초로 개인전을 열어 주목받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지난 10여년간 그가 보여온 변화다. 2011년 전시에서 작가는 세포나 화석의 단면, 나무뿌리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연필로 작업한 작품을 선보였다. 아스라한 고대의 시간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였다. 그리고 그는 이듬해인 2012년 베를린 동쪽에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한국을 떠났다. 이어 2015년 '나이트 블로썸'(Night Blossom) 전시에선 연필을 버리고 다시 색으로 돌아간 작품을 선보였다. 연필이나 붓 대신 손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이번엔 한걸음 더 나아갔다. 색은 더욱 과감해졌고, 물감이 흐르고, 뭉치고, 뭉개지는 등 캔버스 표면의 질감이 더욱 도드라졌다. 물감을 켜켜이 쌓기도 하고, 아예 캔버스에 구멍을 뚫기도 했다. 그에게 이런 작업은 무엇을 의미할까. 전시장에서 그를 만났다.

도윤희, Untitled 무제, 2019-2021, 캔버스에 유채, 220 x 170 cm.[사진 갤러리현대]

도윤희, Untitled 무제, 2019-2021, 캔버스에 유채, 220 x 170 cm.[사진 갤러리현대]

도윤희, Untitled 무제, 2019-2021,캔버스에 유채, 200 x 159.5 cm.[사진 갤러리현대]

도윤희, Untitled 무제, 2019-2021,캔버스에 유채, 200 x 159.5 cm.[사진 갤러리현대]

작품이 또 크게 바뀌었다.
"새로움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늘 기존의 것을 깨고 새로운 길을 가려고 한다. 작가는 '더 좋은 작업을 하고 싶다'는 욕망의 기둥에 묶여 천형을 받는 존재와 같다. 더 좋은 작업을 위해선 계속 변화하며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 작가가 좋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욕망을 외면하고 지리멸렬한 작업을 반복하는 것은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그런 작업은 진부한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해악이 된다." 
추상화인데 풍경이 느껴진다. 
"무엇이 보이는가는 보는 사람의 몫이다. 나는 그리는 순간 휘몰아치는 감정을 색으로, 물질감으로 형상화했다. 물감의 색, 물감 덩어리에서 오는 탄력과 질감, 리듬으로 표현한 것이다."
누군가는 '각 캔버스가 다른 세계로 통하는 입구처럼 보인다'고 하더라.  
"그렇게 보인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관람객이 마음껏 상상하며 보았으면 한다. 그림은 우리를 어딘가로 보내주고,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새로운 세상을 열어 우리의 정신세계를 확장해 주는 것, 그게 회화의 역할 아니겠나. "
빛을 발하는 듯한 색채다.   
"내게 색은 ‘감정’이다. 음악은 음표와 음표 사이에서 소리가 나오듯, 나는 색과 색의 충돌로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과정에 손도 쓰고, 부러진 붓의 모서리, 유리병, 망치 등을 다 이용했다. 시시때때로 눈앞에 소용돌이치는 빛과 색, 형태를 붙잡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작업을 "현상의 배후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추상은 환상이 아니다. 실체를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며 "추상은 그것을 나의 언어로 은유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상봉 작가의 손녀'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니는데. 
"그건 축복이자 무거운 부담이다. 고교 1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한집에 살았고, 내 정신세계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에 의해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영향을 받았다. 지금도 할아버지 책상과 도자기, 할머니의 옷 등 많은 것이 내 생활 속에 있다. 거부할 수 없는 나의 일부다." 
중견작가의 시선으로 본 도상봉 작품은. 
"남다른 감성과 격을 갖추고 있다. 디테일에 대한 섬세한 시선이 보이고, 표현에 철저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다. 통틀어서 '아름답다'는 느낌이다."
갤러리현대 전시장에서 자신의 작품 앞에 선 도윤희 작가. [사진 갤러리현대]

갤러리현대 전시장에서 자신의 작품 앞에 선 도윤희 작가. [사진 갤러리현대]

팬데믹 이후 서울에서 지내고 있다는 도 작가는 "다시 돌아와 보니 서울 봄이 새삼 좋았다"며 "올해 베를린으로 돌아가기 전에 이 봄을 만끽하고 싶다"고 했다. 전시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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