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골프 룰은 책 아닌 마음 속에 있다…‘내로남불’ 이제 그만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774호 25면

강찬욱의 진심골프 

골프 룰은 278년에 걸쳐 시대에 맞게 변해왔다. 그러나 이보다 더 많은 룰이 있다. 내 마음 속의 룰을 지키다 보면 골프를 대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질 것이다. [사진 게티이미지]

골프 룰은 278년에 걸쳐 시대에 맞게 변해왔다. 그러나 이보다 더 많은 룰이 있다. 내 마음 속의 룰을 지키다 보면 골프를 대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질 것이다. [사진 게티이미지]

골퍼들이 늘어났다. 사람만 늘어난 게 아니다. 그 사람들의 진심도 늘어났다. 그 진심이 왜곡되지 않기를, 변심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야기하고 싶다. 어떤 게 진짜 골프인가. 어떤 사람이 진짜 골퍼인가. 골프에 진심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지금이야말로 룰, 매너, 골프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돌아봐야 할 때다.

골프 룰은 복잡하다. 복잡한 만큼 방대하다. 프로 선수들의 경기에서는 그렇다. 룰은 제대로 알고 지키려고 작정하면 더 그렇다. 9개의 섹션에 24개조나 된다. 24개조의 밑에는 99항 191호가 있다. 룰의 뒤쪽에 붙어 있는 ‘용어 정의(definition)’만도 73개다.

최초의 골프 룰은 1744년에 시작됐다. 영국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리스 지역의 골프 모임인 ‘젠틀맨 골퍼스 오브 리스(Gentlemen golfers of Leith)’에서 오픈 대회가 열렸을 때다. 당시 각 지역마다 다른 골프 룰이 문제가 됐다. 간단히 보이는 고스톱 게임도 동네마다 룰이 다르지 않은가. 그래서 클럽은 다른 클럽의 리더들과 협의를 통해 13개의 골프 룰을 만들어냈다. 티잉 구역과 퍼팅그린을 구분하지 않았던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한 클럽 이내에서 티샷하라’는 룰이 생겼다. ‘그린에서는 거리가 먼 플레이어부터 퍼팅하라’는 룰은 개정 전까지 오랫동안 이어졌다. ‘티샷한 볼은 바꿀 수 없다’는 규칙은 278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벌타 받을 때 제대로 알게 되는 골프 룰

골프 룰은 시대에 맞게 변해왔다. ‘골프장에 개를 데리고 오면 5실링의 벌금을 낸다’는 조항이 있던 적이 있다. 45개의 조항까지 늘어났다가 34개조, 다시 24개조로 정리됐다. 골프 룰을 관장하는 영국 R&A와 미국골프협회(USGA)는 4년에 한 번씩,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개정된 골프 규칙을 발표한다.

영국 R&A와 미국골프협회가 만든 골프 룰 책자의 한글판. [사진 대한골프협회]

영국 R&A와 미국골프협회가 만든 골프 룰 책자의 한글판. [사진 대한골프협회]

룰의 최근 개정 추세는 이렇다. 어떻게 하면 플레이의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가? 이는 다분히 미디어의 중계를 의식한 것이다. 시청자들은 1부, 2부로 나뉜 7, 8시간의 중계를 채널을 고정해가며 시청하기 어렵다. 설령 마스터스일지라도 그렇다. 샷의 순서에 대해 완화한 룰도 그렇고, 샷을 권고하는 40초의 룰도 마찬가지다. 볼을 찾는 시간인 3분 역시 결국은 플레이 시간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개정된 룰은 골퍼들에게 환영을 받을 때도 있지만 비난을 받기도 한다. 골퍼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깃대를 뽑고 퍼팅을 했다. 하지만 최근엔 깃대 좀 뽑아달라는 말이, 안 해도 되는 일을 만드는 것으로 느껴져 미안함을 갖게 된다는 골퍼가 생겼다. “준비된 분 먼저 하시죠”라는 캐디의 말에 압박감을 느낀다는 골퍼도 있다. 물론 의견은 사람마다 다르다. ‘투터치’를 일삼던 어느 골퍼는 ‘투터치 벌타 룰’이 없어진 후 공포에서 벗어나 어프로치 샷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골프 룰은 골퍼를 도와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골프 룰 실행의 끝은 ‘벌타’, 즉 ‘페널티’다. 우리는 룰을 지킬 때엔 제대로 적용되는지 잘 못 느낀다. 하지만 룰을 위반할 때 그 존재를 알게 된다. 법과는 조금 다르다.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은 상식과 이치에 맞는 삶에 해당되지만, 골프 룰은 상식만으로 판단하기엔 모호한 상황이 너무 많다. 수십 년 동안 골프 룰을 지키며 경쟁했던 선수들이 플레이 도중 왜 경기위원을 부르겠는가. 그들 역시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벌타 역시 1벌타인지 2벌타인지에 따라 골퍼들의 희비가 걸려 있다. 그러다 보니 골퍼들은 늘 룰에 의해 벌을 받는 느낌이다. 2벌타라는 무거운 벌과 1벌타라는 가벼운 벌. 특히 주말골퍼들은 더 그렇다. 주말골퍼들이 자주 하는 질문 중에 “저기 OB(아웃오브바운스)예요? 해저드(페널티 구역)예요?”가 있지 않은가. 말뚝의 색깔에 따라 1타라도 감형 받으려는 애절한 물음이다.

골프 룰은 R&A와 USGA에서 관장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보다 더 많은 룰이 있다. 일단 로컬 룰이 있다. 골프장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그 골프장의 로컬 룰을 볼 수 있다. 주말골퍼들의 룰은 다분히 이 로컬 룰과 닿아있다. 생각보다 관대한 룰도 보인다. 카트길 위의 볼을 페어웨이 쪽으로 드롭하는 것이라든지, 어느 골프장의 로컬 룰엔 아예 디보트 자국에 들어간 볼은 옮겨 놓고 치라는 룰도 있다. 주말골퍼들이 일반적인 라운드에서 많이 적용하는 룰이다. OB나 페널티 구역의 특설 티 역시 로컬 룰이라고 할 수 있다.

로컬 룰보다 더 실효성이 큰 것이 팀 룰이다. 오늘 동반하는 골퍼들끼리 정하는 룰이다. 물론 동반자들끼리의 의견이 충돌하기도 한다. 엄격하고 원칙적으로 치려고 하는 골퍼와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생각하는 골퍼는 룰 적용에서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그냥 해저드 처리하자’ ‘좋은 데 옮겨놓고 치자’ ‘벙커 발자국은 빼놓고 치자’ 같은 것이 그렇다. 관대하다 못해 웬만하면 다 용서되는 팀은 아예 룰이 없이 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 ‘이건 아니지 않나’라고 하면, ‘뭐 그렇게 빡빡하게 굴 거 없잖아…’ 라는 표정과 말을 보내기도 한다. 물론 이런 팀일수록 스코어는 좋다.

‘마음 속 스코어’ 정직하게  

골프

골프

또 하나의 룰이 있다. ‘내 마음 속의 룰’이다. 스코어도 그렇지 않은가. 스코어카드의 스코어가 있고 ‘마음 속의 스코어’가 있다. 첫 홀 올파를 빼고, 멀리건을 빼고, 캐디의 아량으로 줄여준 스코어를 빼고 동반자의 넓은 마음으로 양산된 컨시드를 제외하면 내 마음 속엔 정직한 스코어가 남는다. 가끔 본인에게만 지나치게 관대한 골퍼가 있다. 타인의 룰 위반은 눈뜨고 못 보지만 스스로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골프에도 ‘내로남불’이 있다. ‘동반자가 안 볼 거 같으니까’,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신경 안 쓸 거니까’ 등이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니까’라는 이유가 크다. 그들은 볼을 좋은 라이에 옮긴다. 벙커 안에서 은근슬쩍 볼을 뒤쪽으로 이동시킨다. 그린에서 마크를 볼보다 앞쪽에 한다. 더 심한 경우도 있다. 주변에 알까기가 의심되는 골퍼는 없는가.

룰은 책에 있지 않다. 내 마음 속에 있다. 이를 지키려는,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냥 편하게 치지, 이런 거까지 지켜야 돼’라고 말하는 골퍼에게 룰은 그저 글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200페이지에 가까운 룰 규정집 중에 꼭 기억했으면 하는 룰이 있다. 일단 골프클럽의 갯수다. 14개를 넘기지 말자. 룰이란 모든 골퍼들이 평등한 조건에서 플레이하고 경쟁할 수 있는 것이 기본이다. 드라이버를 하나 더, 웨지를 하나 더, 남보다 더 많은 클럽을 갖는 건 남보다 무기 하나를 더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티잉 구역을 잘 지켜라’다. 생각보다 배꼽이 나온 골퍼가 많고, 이야기를 해도 안 고쳐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룰에서는 이 경우 2벌타를 엄격히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세 번째는 ‘헛스윙은 고백하라’다. 스스로는 안다. 빈스윙인지 헛스윙인지. 내가 안다는 것은 동반자도 안다는 의미다. 네 번째는 ‘남의 볼을 건드리지 말자’다. 볼에 왜 숫자가 있고 볼에 나만의 마크를 왜 할까. 다섯 번째는 ‘마크는 볼 뒤에 하라’다. 그린에서 본인의 볼에 마크를 할 때 마치 마술처럼 앞쪽에 하는 골퍼가 있다. 옆에서 발각되면 많이 없어 보인다. 여섯 번째는 ‘스코어는 스코어대로 적어라’다.  스코어는 샷 메이킹의 결과다. 1,2타 줄여 적는 스코어 메이킹은 하지 말자. 일곱 번째는 골프의 변하지 않는 룰이다. ‘Play the ball as it lies(있는 상태 그대로 쳐라)’ 이는 골프의 원칙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룰은 마음 속에 있다. 그것은 ‘나는, 나니까, 나부터 지켜야지’다. 룰을 무시하는 사람이 골프를 존중할 수 있는가.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는가. 멋진 골퍼가 되는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타인에게 관대하게.’

골퍼가 기억해야할 룰

●골프클럽은 14개를 넘기지 말자
●티잉 구역을 잘 지켜라
●헛스윙은 고백하라
●남의 볼을 건드리지 말자
●마크는 볼 뒤에 하라
●스코어는 스코어대로 적어라
●있는 상태 그대로 쳐라

강찬욱 시대의 시선 대표.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했고, 현재는 CF 프로덕션 ‘시대의 시선’ 대표로 일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골프의 기쁨』 저자, 최근 『나쁜 골프』라는 신간을 펴냈다. 유튜브 채널 ‘나쁜 골프’를 운영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