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한국 아이들에게 가정 찾아주는 일은 천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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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인천 고아원을 떠나 미국 양부모님 집에 도착한 때가 바로 제가 태어난 순간이었어요. 입양은 헝클어진 한 아이의 인생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전쟁 당시 고아로 버려졌다가 미국 가정에 입양된 수전 순금 콕스(54.사진) 홀트 국제아동복지회 부회장은 10일 입양이 가져온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영국 군인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4살 때인 1956년 인천의 한 고아원에서 미국 오리건주의 한 가정으로 입양됐다.

그는 자신을 '넘버 167'로 기억한다.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된 통산 167번째 어린이라는 뜻이다. 그는 한국 아기들의 해외 입양이 시작된 그 해에 미국으로 이주한 '입양 1세대'다.

"혼혈 고아였던 내가 가정을 만나면서 비로소 평범한 삶을 살게 됐어요. 가정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것을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그 권리를 갖게 해주자는 게 입양의 취지입니다."

미국인 가정에서 정상적으로 성장한 그는 학업을 마친 뒤 24살이 되던 해부터 홀트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새 가정을 찾아준 입양기관이다.

홀트는 미국인 독지가인 해리와 버사 홀트 부부가 56년 한국에서 전쟁 고아 8명을 한꺼번에 입양하면서 미국 내 해외입양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지금까지 4만여 가정에 어린이 입양을 성사시키면서 미국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

그는 83년부터 홀트의 공공정책 담당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입양에 관한 각종 정책.법률을 입양이 활성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정하는게 주 업무다.

콕스 부회장은 "입양으로 새 삶을 살게 된 내가 예전의 나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해야할 의무라는 생각에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아동을 위한 입양인들'이라는 단체의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 입양인들이 한국에서 버려진 아이들의 미국 입양 활성화를 위해 조직한 단체다. 그는 해외 입양의 필요성과 불가피성, 성공 사례를 한국에 알리기 위해 방한했다.

그는 "아이들은 친부모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우선이며, 그 다음이 국내 입양이다. 세번째인 해외 입양은 아이들이 시설이 아닌 가정에서 자라기 위해 꼭 필요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또 "훌륭한 가정은 후천적으로도 만들어질 수 있다"며 "생김새가 아닌 함께 하는 시간을 공유하는게 가족"이라는 말도 했다.

그는 해외 입양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5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콕스 부회장은 78년 이후 지금까지 30여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92년에는 수소문 끝에 친 가족을 찾기도 했다. 미국인과 결혼해 남매를 두고 있다.

글=박현영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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