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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정치위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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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소련은 지금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위기에 처해 있다. 일부 학자들은「소련제국」의 붕괴가 이미 시작됐다고 단언한다.
소련의 위기란 바로 고르바초프 대통령 개인의 위기이기도 하다. 85년 3월 집권 후 소련사회주의의 부흥을 목표로 페레스트로이카를 내세웠으나 5년이 지난 지금 그 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평가받고 있다.
서방측 소련문제 전문가들은 소련이 이처럼 최악의 상황에 처한 이유를『구질서는 붕괴됐으나 신질서는 아직 미 정착,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현재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위기를 불러오고 있는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무엇보다 국내경제의 파탄상태, 그리고 각 공화국의 주권·독립선언으로 인한 연방해체위기와 민족간 대립이 그것이다.
소련경제를 이끌어 온 명령식 통제경제시스템이 사실상 붕괴한 상태며 새로운 경제체제인 시장경제시스템은 아직 시작도 못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서민들은 극도의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어 폭발직전의 상태에 있다. 지난8월 담배공급부족을 항의하는 폭동에 이어 최근엔 빵 공급이 부족, 시민들의 항의가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소련경제위기는 사실상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위기에 가장 주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달 말 소련최고회의에서 한 의원은『이같은 상태가 계속되면 2년 내에 내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방구성공화국의 주권·독립선언 문제는 연방정부의 사실상 기능정지상태에서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번지고 있다.
현재 소련 15개 구성공화국 중 12개 구성공화국이 독립 또는 주권선언을 한 상태며, 나머지 3개 구성공화국도 금년 말까지 독립·주권선언을 할 것으로 예정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8개 자치공화국, 2개 자치관 구도 구성공화국과 별도로 독립·주권을 선언하고 나섰다.
고르바초프는 새로운 연방제도의 필요성을 인정, 최고회의 내 민족정책-민족관계위원회에서 신 연방조약을 연말까지 준비중이나 구성멤버들이 주로 보수파며, 중앙집권적 연방유지 쪽이 우세하므로 각 구성공화국들을 만족시킬 만한 안이 만들어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그루지야·몰다비아 등 남부 카프카스 지방의 민족분규 또한 매우 심각하다.
고르바초프는 지난8일 민족분규가 계속될 경우「소련의 레바논 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 각 민족들의 자제를 요구했으나 분규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언제 타오를지 모르는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이같은 발등의 불에 대해 최고권력자인 고르바초프는 이렇다 할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보수·개혁 양파로부터 모두 공격받고 있다.
특히 개혁파 리더인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으로부터의 도전은 최근 들어 더욱 거세 지고 있다.
5백일 경제개혁실시를 놓고 옐친은 연방정부의 승인 없이 러시아공화국 독자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는 등으로 고르바초프를 난처한 입장으로 몰아 넣고 있다.
보수파로부터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이중에서도 최근 들어 두드러지는 것은 군부의 움직임이다.
현재 소련에선 야조프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의 공식부인에도 불구, 쿠데타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련군부는 개혁정책의 가장 큰 피해를 본 집단으로 그동안 불만을 품어 왔다. 특히 군병력 감축과 동유럽철수로 인해 군 장교들의 실업불안·주택문제 등에 대한 불만은 심각한 상태다.
지난달 말 최고회의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경제개혁을 위한 비상대권을 부여하도록 의결, 고르바초프는 스탈린 이후 최대의 권력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개혁파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슈퍼차르」의 출현이라고 비난하고 있으나 개혁·보수 양진영 모두가 아직도 고르바초프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나타낸 한 예다.
최근 소련 일부에선 현재와 같은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강력한 권력자의 이른바「개발독재」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어 고르바초프의 입장을 크게 강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비록 개인적 정치위기를 벗어난다 해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전망이 거의 없어 고르바초프는 공공연한「11월 위기」라는 쿠데타 등 정치적 위기 속에 여전히 둘러싸여 있다.
해도 없이 험난한 항해에 나선 고르바초프라는 배가 계속 뜨게 되느냐, 아니면 침몰하느냐를 결정할 것은 각 공화국과 경제난에 허덕이는 소련인민, 그리고 보수파의 반발 등 험한 파고다. <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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