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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아무도 몰라주지만…나는 살아가는 얘기 쓰는 무명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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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212)

1월의 첫 주다. 글쟁이라고 하는 문인들이 신문을 가장 기다리는 달이다. 그들에겐 한해의 결실을 격려하고 매듭지어주는 희망과 기대가 큰 시기다. 1월 3일 자 여러 신문엔 여러 문학 분야의 1등을 차지한 이름이 주르륵 올라왔다.

‘00신문사 등단작가’라는 타이틀. 글 쓰는 사람에겐 로망이며 최고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나도 글쓰기를 참 좋아하지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이라 생각해 본적도, 꿈도 꾸어 본 적 없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1월의 첫 주가 되면 글쟁이라고 하는 문인들이 신문을 기다린다. 그들에겐 한해의 결실을 격려하고 매듭지어주는 희망과 기대가 큰 순간이다. [사진 Pixnio]

1월의 첫 주가 되면 글쟁이라고 하는 문인들이 신문을 기다린다. 그들에겐 한해의 결실을 격려하고 매듭지어주는 희망과 기대가 큰 순간이다. [사진 Pixnio]

작년의 어느 날, 문인 모임 중에 등단작가 한 분이 글 쓰는 사람은 등단해야 진정한 문인이라며 등단을 목표에 두고 글을 쓰라고 하신다. “등단이 돈 주고 살 물건이면 사겠구먼….” 구시렁거리면서도 괜스레 주눅이 들었다. 오만가지 핑계를 대지 않아도 내 글은 그 단어를 논할 수준이 아닌지라 그냥 흘려들었다. 그런데 2년 전 콘텐트 작가 수업의 인연으로 멘토가 되어주는 백승○ 선생님이 안동까지 내려와 미션을 주었다. 그리곤 문장을 첨삭하고 수정해주며 함께 다듬는 작업도 해주셨다.

“부끄럽다니요, 어딘가에 목표를 갖고 쓰다 보면 등단은 못 해도 꾸준한 글쓰기의 경험이 쌓여 내 분야의 진정한 프로가 되는 거지요. 재수, 삼수, 십수생도 있어요.“

그래 참여하는 것이 목표다. 그리하여 12월 초순 신문사 두 곳에 이렇게 저렇게 써놓은 두 개의 작품을 기름치고 주물러 제출했다. 그런데 나의 철딱서니 없는 마음은 어느새 1등을 향해 그림을 그리고 수상 소감, 상금을 써야 할 곳도 이미 다 계획되었다. 우리 클럽의 정식으로 등단한 회원들도 돌려 읽으며 모두 어깨에 뽕을 넣어주니 이거야말로 제사도 지내기 전에 몰래 먹어보는 떡 맛이다. 내가 몰래 다시 읽고 또 읽어도 감동과 재미 그리고 완벽한 글이다. 하하하.

그 어느 때보다 새로운 1월이 왔다. 지루하게 지나간 3일 아침, 터미널 자판기에 꼽힌 신문이란 신문은 다 사 들고 들어왔다. 대문짝만하게 실린 등단 명단엔 눈에 익은 제목과 내 이름 비슷한 글자도 없다. 이젠 차선책이다. 심사평을 기대하는 거다. 심사평에 내 글이 간당간당하게 붙어 심사위원의 마음이 흔들렸다는 말만으로도 대단한 거 아닌가? 꿈에 계시라도 있으려나 기대하고 오래도록 잤지만 어느 날보다 잘 잔 다음 날 당선작과 함께 올라온 작품 심사평에도…. 당근 없다.

200만 원 상금을 받으면 반은 불우이웃돕기로, 그 반의반은 작가모임에 기부하고 나머지는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선생님들께 선물할 물건목록까지 다 뽑아 놨는데 죽 쒔다. 흐흐흐. 그래도 날 받아놓은 여행자의 설레는 마음같이, 새로운 미션으로 연말연시를 맞이했으니 그보다 더 즐겁고 알뜰한 시간이 또 있을까.

올해는 자서전을 써보려고 한다. 우리 나이에 딱 맞는 ‘하루 세 줄만 쓰기’로 시작해보는 거다. [사진 flickr]

올해는 자서전을 써보려고 한다. 우리 나이에 딱 맞는 ‘하루 세 줄만 쓰기’로 시작해보는 거다. [사진 flickr]

다시 시작하는 1월이다. 1월은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기에 너무 좋은 달이다. 무엇을 시작해도 보람차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이 있어 좋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글도 잘 쓰지만 요즘은 활동을 안 하시는 지인이 농담한다.

“내 인생 글로 쓰면 발가락으로 써도 등단했을 것이여. 하하하.” 메타버스를 타든 마을버스를 타든 그 일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길을 나서던가, 손가락이라도 움직여야 시작되는 거다. 새해엔 살아온 인생을 되짚어 보며 나에게 자서전 쓰기 미션을 주자. 우리 나이엔 딱 맞는 ‘하루 세 줄만 쓰기’로 시작해보는 거다.

나는 살아가는 이야기를 쓴다. 등단은커녕 아무도 몰라주지만 그래도 나는 멋진 무명작가라고 나를 격려한다. 나 그리고 이웃의 하찮고 허접한 이야기를 소중하고 즐거운 일상으로 바라보며 글 보따리를 푼다. 최선을 다해 쓰다 보면 서툰 글도 프로가 된다는 진리를 느껴보고 싶다. 신문에 오른 수많은 등단작가에게 부러운 축하를 보낸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동요 곡이 나의 일상 같아 킬킬거리며 따라 불러본다.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밤새도록 하여도 듣는 이 없네. 듣는 사람 없어도 날이 밝도록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개굴개굴 개구리 목청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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