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오래]하루 2000원씩 주식 사모으기…올해 나의 10대 뉴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210) 

90대 어르신이 말했다. “어째 눈을 감았다 뜨니 한해가 다 가부렀네.”

60대 중반이 되는 나도 어찌저찌 살다 보니 한해가 금세 지나갔다. 나라 전체로 코로나에 선거운동에 날마다 어수선한 장날이다. 집안일도 많은데 거름지고 장 따라나서는 꼴 안 되려고 TV를 안 본다.

벌써 12월도 중반이다. 작년 12월에 벽에 붙여놓은 ‘2021년 나의 10대 뉴스’를 본다. 올해도 거의 만점이다. 연속 성장이다. 만점 맞는 비결은 간단하다. 내가 만드는 문제라 쉬운 거만 내면 된다. 나이가 들면 아무리 좋은 목표도 그림의 떡이라 우리 나이엔 누워서 해도 될 것 같은 것을 목표로 잡는 것이다. 올해도 나름은 힘든 고비를 이겨낸 몇 가지를 추려보며 나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다.

누워서 해도 될 것 같은 것을 목표로 잡고, 그것을 차근차근 성공해내면 스스로가 점점 삶의 주인이 된다. [사진 Wikimedia Commons]

누워서 해도 될 것 같은 것을 목표로 잡고, 그것을 차근차근 성공해내면 스스로가 점점 삶의 주인이 된다. [사진 Wikimedia Commons]

10대 뉴스 중 2번째가 ‘방송대 4학년 과락 면하고 졸업하기’였다. 4년 전 이곳에서 ‘58년 개띠 인생샷’이란 제목으로 회갑을 맞은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 공모전이 열렸다. 우물 안 개구리 인생이지만 성공했다며 담담하게 털어놓은 내 글이 뽑혀 덜컥 신문지면에 올랐다. 그렇게 만천하에 공개된 방송대 입학, 시험을 치를 때마다 괜히 나팔을 분 것 같아 후회막급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이루고 싶지만 어지간한 집념이 아니면 이루지 못할 것은 소문내고 미리 자랑하면 된다. 뇌가 스스로 내비게이터가 되어 그길로 안내한다, ‘포기했어요’라고 대답할 때마다 얼마나 쪽팔릴까 생각하니 가슴이 벌렁거렸다. 덕분에 용기와 끈기가 생겼다. 거기에다가 즐거운 노후를 지향하는 좋은 친구들이 생긴 것도 큰 수확이다. 성공도장 꾹.

다섯 번째 목표는 ‘하루에 5분 운동하기’다. 에계계, 겨우 5분? 하겠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5분도 힘들다. 이것도 목표가 낮으니 성공했다. 요즘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10분짜리 ‘원주시 스트레칭 유튜브’를 틀어놓고 몸을 푼다(예쁜 며느리 집이 원주라 며느리 보듯 한다). 착각이겠지만 종일 관절이 기름칠한 듯 잘 움직인다. 거기에 5분도 안 되는 ‘국민체조’가 2등으로 밀려나 함께한다. 하루 운동 끝이다. 내 몸에 주는 아침밥으로 딱 15분이다. 하다 보면 더하고 싶어져 걷기도 한다. 그것은 보너스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꼭 권하는 운동이다. 이것만 해도 운동했다고 큰소리칠 수 있다. 진짜 쉽지만 어렵다. 여행지에서도 눈만 뜨면 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다. 감기도 코로나도 이겨내고 거짓말 같지만, 몸무게도 줄어든다. 5㎏ 감량, 성공도장 꾹.

10번째 항목엔 ‘2년 후 40일 산티아고 여행- 목돈 만들기’도 있다. 벌써 성공이다. 내 월급과 국민연금을 합쳐 한 달 수입이 백만 원이 조금 넘는데 자동차를 굴리면 한 달 생활비로 빠듯한 금액이다. 여기에 꼼수를 쓰기로 했다. 즐겨 먹는 짬뽕 외식과 매일 폼 잡는 커피를 아끼기로 한 것. 먹는 걸 참으면 스트레스라 산티아고 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거기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사진도 올려놓았다. 그리고 날마다 2000원, 가끔 8000원으로 내가 좋아하는 주식을 사기로 했다. 매월 10만원 적금 넣기는 힘들어도 하루 2000원, 한주 8000원은 부담이 없다. 소꿉놀이 수준이다.  한 가지 종목을 정해 가격에 흔들리지 않고 모닝커피로 하루 딱 한 장씩 샀다. 1년간 열심히 사 모으기만 했는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그것이 더 열심히 앞장서서 달려주고 있다. 지쳐서 쉰다 해도 목표에 도달할 일 년은 더 밀어줄 것이다. 이것도 참 잘했어요. 도장 꾹이다.

‘아버지 저는 아직 아무것도 되지 못했어요. 저는 이제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어느 드라마에 나오는 청년의 독백인데 오래 여운이 남는 대사다. 세상에 태어나 무엇이 되는 것보다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나이 드니 알겠다. 올해는 풀릴 줄 알았던 바이러스 뉴스는 내내 세상을 장악하고, 버티며 사는 우리를 힘들게 한다. 누군가가 그랬다. 길 가다가 ‘금이빨 삽니다’란 글이 눈에 안 들어오면 아직 살 만한 거라고. 힘내라고.

2022년, 어지러운 세상에서도 나를 성장시킬 10대 뉴스가 다시 모여 회의를 시작한다. 아무것도 되진 못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내가 주인이 되어 마음이 하는 말을 경청한다. 그래, 한 발짝 한 발짝 흔들거리며 또 가보는 거다. 설렁설렁, 때론 포복 자세로라도, 게임을 하듯이 즐겁게 살아보는 거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