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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맹세했는데…그들이 이혼하는 이유 [주역으로 본 세상](1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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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렸다. 사랑했고, 서로를 뜨겁게 안았다. 신나는 연애, 청춘 남녀는 결국 결혼에 골인한다. 그들은 이제 신랑 신부가 되어 주례 앞에 섰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랑하겠습니까?'.

'넵! 그러겠습니다.'

씩씩하게 답한다. '우리 잘살게요~' 영상을 찍어 SNS에 돌리기도 한다. 가족의 시작이다.

결혼식장 바로 옆 법원.

이곳에서도 한 부부가 앞을 응시하고 있다. 그들 앞에 선 사람은 주례가 아닌 판사. 부부는 지금 원고와 피고가 돼 이혼 판결문을 듣고 있다.

'원고와 피고는 이혼한다.'

우리나라는 한 해 약 20만 쌍의 청춘 남녀가 결혼한다. 그런 한편으론 10만 쌍의 부부가 갈라선다. 두 쌍의 신랑·신부가 '파 뿌리'를 맹세하는 바로 그 시간, 어느 법정에서는 한 부부의 이혼을 알리는 판결 소리가 '땅, 땅, 땅' 들린다. 웨딩마치 할 때는 팔짱 끼고 같이 걸어 나왔는데, 법원을 나올 때는 멀찌감치 떨어져 걷는다.

황혼이혼이 특히 많다. 서울시 인구통계를 보면 작년 전체 이혼의 20%가 결혼 후 30년 이상 살다 헤어진 황혼이혼 있다. 처음으로 신혼 이혼(결혼 후 4년 이내 이혼)을 넘어섰단다. '파 뿌리 맹세'는 점점 더 무색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 해 10만 쌍 이상이 이혼한다. '변해야 지속된다'라는 주역의 가르침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바이두

우리나라는 한 해 10만 쌍 이상이 이혼한다. '변해야 지속된다'라는 주역의 가르침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바이두

그들은 왜 가정을 지키지 못했을까. 무슨 문제가 있었기에 30년을 살고도 더는 못 참겠다며 갈라서야 했을까.

지난주 우리는 주역 31번째 '택산함(澤山咸)' 괘를 통해 그 '사랑의 끌림(感)'을 살폈다. 혹 보지 않으신 분들은 [주역으로 본 세상] 16회를 보시라.

오늘은 '끌림'의 다음 단계, '부부의 길(夫婦之道)' 이야기다.

주역 32번째 괘 '뇌풍항(雷風恒)'은 우레를 상징하는 진(震, ☳)이 위에 있고, 바람을 뜻하는 손(巽, ☴)이 아래에 있다. 강(剛)한 우레와 순(順)한 바람이 위아래에서 호응하는 형상이다(䷟).

괘 이름 '항(恒)'은 '중단되지 않고 한결같이 오래간다'라는 뜻이다. '항상(恒常)', '항구(恒久)', '항시(恒時)' 등으로 자주 쓰이는 단어다.

주역은 왜 '恒(항)' 괘를 '감정'을 뜻하는 '咸(함)' 다음에 배치했을까. 괘 배치의 순서를 논한 '서괘전(序卦傳)'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夫婦之道 不可以不久 故受之以恒'

'부부의 길은 오래 지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에 항(恒)으로 받는다.'

사랑의 감정은 매우 빠르다(咸, 速也).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금방 식는다. 반면 부부의 사랑은 지속적이어야 한다(恒, 久也).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변해서는 안 된다. 그게 바로 연애와 결혼의 차이다. 결혼은 지속성을 인정받기 위한 사회 제도이기도 하다.

주역 '뇌풍항' 괘는 '부부의 길'을 주제로 하고 있다. 우레와 바람이 위아래에서 순응하는 형상이다. /바이두

주역 '뇌풍항' 괘는 '부부의 길'을 주제로 하고 있다. 우레와 바람이 위아래에서 순응하는 형상이다. /바이두

근데 이상한 게 하나 있다. '뇌풍항' 괘는 우레(震)와 바람(巽)의 조화다. 둘은 서로 호응하면서 우르르 쾅쾅 대지를 흔든다. 우레와 바람 둘 다 동적(動的)인 존재다. '항(恒)'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격동하는 존재를 위아래 붙여 놓고 '항구적이다'라고 하는 건 역설이다.

'항(恒)'의 로직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역은 '지속한다'라는 걸 이렇게 설명한다.

'天地之道 恒久而不已 終則有始也'

'하늘과 땅의 도리는 한결같아 멈추는 법이 없다.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하나가 시작된다."

한결같아 멈추지 않는다고? 뭔 말인가?

시간은 한결같이 흐른다. 그러나 속으로 들어가 보면 끊이지 않는 변화의 마디가 있다. 해가 가면 달이 뜨고, 낙엽이 지면 눈보라 친다.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하나가 시작된다'라는 건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렇게 하루 24시간, 사계절이 만들어지고, 1년 365일이 완성된다.

끝맺음이 있으면 곧 시작이 있다(終則有始)! 너무도 심오한 말이다. 2021년이 끝나면 곧 2022년이 시작된다. 대학생활을 끝내면 곧 사회생활의 시작이다. 그 매듭 매듭이 연결된 게 바로 '항(恒)'이다.

핵심은 변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뀌어야 1년이라는 시간이 완성된다(四時變化 而能久成). 저 앞산은 작년에도 올해도 저기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 보고 있는 저 산이 어제의 그 산과 같은 건 아니다. 시간의 흐름에 변해왔기에 오늘도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저 시냇물은 한결같이 흐르지만, 지금 흐르는 저 시냇물이 어제 흘렀던 시냇물은 아닌 것과 같다.

변하지 않는다면? 생명력이 없는 것이다. 죽음이다. 고인 물이 썩듯 말이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연애가 끝나면 곧 결혼이 시작된다. 봄과 여름이 이어지면서도 다르듯, 연애와 결혼도 달라야 한다. 연애는 감성(感性)의 속성을 갖고 있고, 결혼은 지속성(持續性)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했는데도 연애할 때처럼 '기분이야~' 라며 명품 백 마구 사준다면, 가정 경제 파산하기에 십상이다. 결혼 후에도 남편이라는 작자가 여전히 다른 여자에게 감정을 흘리고 다닌다면 그 집에 평화가 찾아오겠는가. 초기 이혼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아이가 생기면 남편은 아빠로 변해야 하고, 남편의 지위가 올라가면 아내는 '사모님'의 품격을 갖춰야 한다. 마땅히 변해야 할 때 변해야 한다. 그래야 머리에 '파 뿌리'가 자란다.

"우리 한 서방은 참 한결같아 좋아…."

필자의 장모님이 생전 사위에게 하시던 말씀이다. 지금 생각하면 부단히 변하려고 노력했기에 '한결같다'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느 시간, 어느 상황에서도 사위가 당신 딸과 함께할 것이라는 믿음, 그게 '한결같다'라는 말이었을 게다. 아들 낳았는데도 아이 내팽개치고 밖으로 나돌기나 했다면 장모님께서 '한결같다'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애할 때가 다르고, 신혼 때가 다르고, 아이 낳으면 또 달라야 한다. 그 다름이 한결같음을 만든다. 그게 주역이 말하는 '능히 오래간다(能久)'의 필요조건이다.

변화(變)가 있어야 지속된다. 주역은 '부부도 상대에 맞춰 변화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해로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guoyi360.com

변화(變)가 있어야 지속된다. 주역은 '부부도 상대에 맞춰 변화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해로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guoyi360.com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엮은 논문 '중용(中庸)'에도 '능구(能久)'가 나온다. 주역의 '능구'와 완전 같은 맥락이다.

'子曰: 中庸其至矣乎 民鮮能久矣'

'공자 말하길, 중용이여 참으로 지극하도다. 사람들이 그 지극한 중용의 덕을 지속해서 실천하지 못하는구나!'('중용 인간의 맛', 도올 김용옥, 통나무).

중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시중(時中)'이다.

'君子中庸而時中, 小人反中庸而無忌憚'

'군자는 중용의 도리를 지켜 때와 장소에 맞게 행동한다. 소인은 중용을 몰라 막무가내로 행동한다.'

시간과 장소에 맞춰 행동하라! 그게 바로 중용이요, 그 중용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 '능구(能久)요, 능구해야 비로소 '항(恒)'이 가능한 것이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기까지 부부가 해로하는 비결이다.

어디 결혼 생활뿐이겠는가. 국가도 기업도 마찬가지다. 변해야 지속할 수 있다. 정체가 아닌 성장의 길을 걸어야 하고, 안주가 아닌 혁신을 선택해야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내부적으로 치열하게 변화하고 혁신하는 기업, 국가라야만 내일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변(變)해야 지속(恒)할 수 있다!'

변하지 않는 주역의 로직이다.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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