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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본 세상](16) 청춘이여 신나게 사랑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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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생활 3년째다. 문 열면 산이고, 마당 건너면 밭이다. 가장 즐거운 일은 역시 나무와의 교감이요, 꽃 풀과의 대화다. 그래서 오늘 던지는 질문.

동물과 식물, 누가 더 강할까?

식물은 연약해 보인다. 동물에 밟히고 뜯긴다. 그러나 동물보다 더 강한 존재가 바로 식물이다. 식물이 없으면 동물은 모두 굶어 죽는다.
동물은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지 못한다. 식물을 뜯어 먹거나, 식물을 먹고 자란 동물(초식동물)을 잡아먹는다. 인간도 다르지 않다. 풀을 먹거나, 풀 먹은 동물을 먹는다. 길가 풀 한 포기라도 달리 봐야 할 이유다.

식물은 하늘이 키운다.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식물은 태양 에너지(햇볕)와 공기 속 수소(H), 산소(O), 탄소(C) 등을 받아들여 양분(C6H12O6)을 만든다.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감응(感應)해 만물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하늘의 길(天道)'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 '사람의 길(人道)'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역시 '감응'이 시작이다.

주역 '택산함' 괘는 청춘 남녀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바이두

주역 '택산함' 괘는 청춘 남녀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바이두

청춘 남녀가 서로 끌리는 건 사랑의 감정 때문이다. 연애는 항상 짜릿하고 뜨겁다. 사랑하는 연인은 결혼해 부부로 발전하고, 아이를 낳아 부자 관계가 형성되고, 군신(君臣) 관계도만들어진다. 그래서 위아래가 생기고, 사회의 온갖 관습과 제도가 자리 잡게 된다. 그걸 '예(禮)'라고 했다.

인간 세상의 모든 복잡한 관계는 모두 청춘 남녀의 끌림, 사랑의 감정에서 비롯되는 셈이다. 그들이 신나게 사랑해야 사회가 발전한다는 얘기도 된다.

오늘 뽑은 주역 '택산함(澤山咸)' 괘의 주제가 바로 그 끌림, '느낌(感)'이다.

주역은 '상경(上經, 1~30괘)'과 '하경(下經, 31~64괘)'으로 나뉜다. 상경은 '하늘의 길'을 제시했고, 하경은 '사람의 길'을 밝혀준다고 했다. 주역 31번째 '택산함'은 하경의 시작, 즉 '사람의 길'을 열어가는 괘다. 괘 이름 '咸(함)'은 글자 '感(느낄 감)'과 같다(咸,感也). 흔히 '연애의 괘'로 불린다.

'택산함'은 연못을 상징하는 태(兌, ☱)가 위에, 산을 뜻하는 간(艮, ☶)이 아래에 있다. 산이 연못을 받들고 있는 형상이다(䷞). 백두산 천지처럼 말이다.

주역에서 연못(☱)은 소녀(少女)를, 산(☶)은 소남(少男)을 상징한다. 젊은 남자가 사랑하는 애인을 업고 있는 형상이다. '춘향전' 이 도령이 춘향을 등에 업고 둥실둥실~ 춤추며 사랑가를 뽑아내는 장면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산은 정상에 있는 연못의 물을 위로 받들고, 연못의 물은 아래로 스며들어 산을 촉촉이 적셔준다.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고, 가족이 형성된다.

'택산함'은 주역 31번째 괘로 하경(下經)의 시작이다. 주역은 1~30번째 괘를 보여주는 상경(上經)과 31~64괘를 담은 하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괘 이름 '咸(함)'은 '感(느낄 감)'과 같은 뜻이다. /바이두

'택산함'은 주역 31번째 괘로 하경(下經)의 시작이다. 주역은 1~30번째 괘를 보여주는 상경(上經)과 31~64괘를 담은 하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괘 이름 '咸(함)'은 '感(느낄 감)'과 같은 뜻이다. /바이두

주역은 남녀 사랑의 시작을 이렇게 노래한다.

'止而說 男下女'

길 가던 총각이 마음에 드는 처녀를 보고는 발길을 멈춘다. 가슴이 쿵쾅쿵쾅, 기쁨(說)에 설렌다. 남자는 여자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는다. 남자가 여자를 바라보며 공손하게 말을 건넨다.

'아가씨, 첫눈에 반했습니다. 저의 마음을 받아줄 수 있으실까요?'

고전 애정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주역의 리얼리티는 3000년이 지나도 그대로 살아있다.

'택산함' 효사(爻辭)는 남녀가 만나 마음 설레고, 열정을 불태우고, 식어가는 과정을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나하나 쫓아가 보자.

첫째는 엄지발가락에도 감응하는 단계다(咸其撫).

사랑이 오려면 손끝만 닿아도 찌릿한 법이다. 설렘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 사람이 내 사람인지 아직 알 수 없는 단계다. 임은 멀리 있다.

두 번째는 종아리에 감응한다(咸其腓).

사랑이 가까이 왔다. 온종일 그 사람 생각뿐이다. 그러나 서두르지 마라. 상대방의 반응을 봐가면서 대응해도 늦지 않다.

세 번째 단계는 허벅지에 감응한다(咸其股).

허벅지까지 사랑을 느낄 단계에 왔으니 온몸이 뜨거워진다. 포옹도 하고, 어쩔 줄 몰라 한다. 이럴 때일수록자기중심을 잡아야 한다. 쾌락에 몸을 맡겨서는 안 된다. 진지하게 사귀어야 한다.

주역은 남녀 사랑을 생명의 잉태, '사람의 길(人道)'을 열어가는 시작 단계로 보고 있다./guoyi360.com

주역은 남녀 사랑을 생명의 잉태, '사람의 길(人道)'을 열어가는 시작 단계로 보고 있다./guoyi360.com

네 번째는 마음이 통하는 단계다(朋從爾思).

사랑의 감정은 발가락에 종아리로, 다시 허벅지로 올라온 뒤 이젠 마음마저 와 닿았다. 시도 때도 없이 자주 만나도 허물이 없다. 상대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는 등에 감응하는 단계다(咸其脢).

사랑이 익어 이젠 등을 맞대기만 해도 좋다.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애정 표시를 하지 않아도 서로를 느낄 수 있다. 나이 60을 바라보는 필자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뺨과 혀에 감응하는 단계다(咸輔頰舌).

나이가 들면 입으로 사랑한다고 한다. 몸으로 안 되니 말로써 욕구를 푼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주역 러브 스토리'는 현대 남녀의 애정관과는 거리가 먼 얘기로 들릴 수 있다. '사랑의 유토피아'라는 제목의 애정 드라마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주역이 담고 있는 깊은 뜻이 훼손되는 건 아니다. '택산함' 괘는 청춘 남녀의 사랑을 생명의 잉태로 보고 있다. '사람의 길'을 열어가는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그만큼 진지하고, 소중하게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라는 가르침이다. 상대의 감정에 맞춰 내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아야 진정한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느낌(感)'은 남녀 관계에 그치지 않는다. 정치 지도자가 국민의 삶을 살필 때 필요한 것 역시 느낌이다. 공자(孔子)는 '택산함' 괘를 이렇게 해석한다.

'聖人感人心而天下和平'

'성인이 사람의 마음에 감응하니 천하가 평화로와 진다.'

올바른 정치 지도자라면 백성들의 마음을 읽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편안해진다. 민심을 이반한 정책이 국민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지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국민의 아픔과 고민에 공감할 수 있는 지도자가 참 지도자다. 지금 우리가 뽑고자 하는 대통령 역시 그런 사람 아니던가.

어찌 정치뿐이겠는가.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학생이, 회사에서는 CEO와 직원이, 연극 무대에서는 배우와 관중이 서로 감응해야 한다. 그래야 학습 효율이 향상되고, 회사 실적이 올라가고, 공연의 감동이 커진다.

하늘은 땅과의 감응(感應)으로 만물을 키운다. 사람은 사람과의 공감(共感)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든다. 3000년 전 기록된 '사랑의 유토피아'는 지금도 유효하다.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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