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주역으로 본 세상](18) '달콤한 방역'이라야 코로나 이긴다!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차이나랩’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왜 나만 죽으라는 거냐?'

소상공인들은 분노한다. 2년 넘게 지속한 코로나19 거리 두기로 그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몰렸다. 집단행동에 나설 태세다.

그들의 분노,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필자는 출근할 때 양평 용문역에서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청량리까지 간다. 40분 정도 걸린다. 출근길 무궁화호 기차는 언제나 만원이다. 청량리에서 다시 전철을 타고 시청역까지 20분여를 더 간다. 전철은 더 꽉 찬다. 내내 서서 가야 한다. 더러는 전화하는 사람, 대화하는 사람도 있다.

기차, 전철은 마스크만 쓰면 무사통과다. 아무런 제재가 없다. QR코드 검사도, 온도 측정도 안 한다.

용문에 있는 킹마트, 하나로마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스크만 쓰면 그냥 들어갈 수 있다. 서울의 대형 백화점도 그렇다. 그간 간단한 온도 측정만 끝내면 들어갈 수 있었다. 백화점은 고객으로 부쩍 인다.

유독 식당만 엄격하다. 4명 이상은 안되고, 9시 이후에는 아예 문을 닫아야 한다. QR코드, 온도측정 하지 않으면 벌금이다. 손님이 있을 리 없다. 우리 회사 저녁 부 회식은 언제 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러니 소상공인, 자영업자들만 죽어난다. '코로나도 무섭지만 가혹한 방역 정책은 더 무섭다'는 한탄이 쏟아진다. 명동, 홍대 입구, 강남역, 종로…. 번화 상가에는 폐업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주역 '수택절(水澤節)' 괘가 제시하고 있는 '달콤한 절제(甘節)' 키워드는 K-방역에 많은 걸 시사하고 있다. / 바이두

주역 '수택절(水澤節)' 괘가 제시하고 있는 '달콤한 절제(甘節)' 키워드는 K-방역에 많은 걸 시사하고 있다. / 바이두

사상 최고 수출 호조로 대기업은 즐거운 비명이다. 공무원들 급여 통장에는 또박또박 월급 액수가 찍힌다. 인터넷 전자상거래 관련 회사들도 '코로나19 특수'로 비명이다. 그런데 식당, 카페, 노래방 등 요식업 분야 소상공인들 업체만 고통이다.

국가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유로 소상공인들의 희생을 강요한다. 과연 정의로운 것인가? 다른 방법은 없는가? 우리의 K-방역 이대로 좋은가?

오늘 주역에 던지는 질문이다.

주역 60번째 '수택절(水澤節)' 괘를 뽑았다. 물을 상징하는 감(坎, ☵)이 위에, 연못을 뜻하는 태(兌, ☱)가 아래에 놓여있다. 연못에 물이 가득 차 있는 형상이다(䷻). 소양강 댐을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주역 '수택절(水澤節)' 괘는 물을 상징하는 감(坎, ?)이 위에, 연못을 뜻하는 태(兌, ?)가 아래에 놓여있다.

주역 '수택절(水澤節)' 괘는 물을 상징하는 감(坎, ?)이 위에, 연못을 뜻하는 태(兌, ?)가 아래에 놓여있다.

주역에서 물은 만물을 적셔주기도 하지만 흉(凶)한 존재이기도 하다. 강물이 불어 넘치면 큰 재해를 입는다. 물웅덩이(坎)에 빠져 죽을 수도 있다. 그 물을 포근하게 담고 있는 게 바로 연못이다.

모자라서도 안 되고, 넘쳐서도 안 된다. 소양감댐은 갈수기 댐이 마르면 전력 생산에 문제가 생기고, 장마철 홍수로 수문을 열면 서울이 위험하다. 그러기에 연못의 물은 항상 적절한 한계 안으로 가둬야 한다. 모자라지 않게, 넘치지 않게…. 그래서괘 이름이 '절제'라는 뜻을 가진 '節(절)'이다.

'節(절)'은 원래 대나무에서 나온 글자다. 옥편 '설문(說文)'은 '節'을 '대나무의 마디 마디를 잇는 부분'이라고 했다(節, 竹約也). 대나무는 '節(절)'이 있어 마디 길이를 일정 한도 내로 유지한다. 역시 '절제'의 의미가 담겼다.

사람에게도 관절(關節)이 있다. 뼈와 뼈마디를 연결한다. 관절이 있기에 뼈는 적당히 자라고, 유연한 몸을 가질 수 있다. 시간에도 절기(節氣)가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季節)이 있어 천지는 스스로 그러함(自然)을 유지하고 있다.

절(節)하라!

식욕을 조절(調節)하지 못하면 비만이다. 색욕을 절제(節制)하지 못하면 패가망신이다. 기업이 조금 잘 나간다고 절제(節制)를 잃으면 문어발 경영의 폐해가 비롯된다. 절약(節約) 없이 부자 될 수 없다. 군대에 절도(節度)가 없으면 백전백패다. 개인이던, 가정이던, 기업이던, 국가던, 심지어 자연이던 절제를 잃게 되면 모두 망가지게 되어있다.

'수택절' 괘는 효사(爻辭)를 통해 이같이 설명한다.

'不節之嗟 又誰咎也'

'절도를 잃게 되면 슬피 한탄할 일이 생긴다. 누구를 원망하리오.'

'수택절'은 괘사(卦辭) 첫머리에 '억지로 절제를 강요해서는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guoyi360.com

'수택절'은 괘사(卦辭) 첫머리에 '억지로 절제를 강요해서는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guoyi360.com

코로나19도 그래서 시작됐다. 절제를 잃은 인간의 욕망이 지구 온난화를 불렀고, 적도 부근에서 놀던 박쥐가 위로 올라왔다. 그 박쥐 속 바이러스가 숙주 천산갑에 숨어있다가 인간에 옮겨붙으면서 사달이 벌어진 것이다.

달리 방법이 없다. 억지로라도 절제를 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건 역시 국가 권력뿐이다. 정부가 나선다.

'澤上有水節, 君子以制數度'

'연못 위에 물이 있으니 절(節) 괘다. 군자는 숫자와 한도로 규제한다.'

정부는 숫자와 한도(限度)를 내밀며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기 시작한다. 매일 감염자 숫자를 발표하고, 식당에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제한한다. 문 닫는 시간을 밤 9시로 정했다. 숫자는 가장 강력한 통제 수단이다. 힘없고, 세력화되지 않는 소상공인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주역의 반전이 일어난다. '수택절'은 괘사(卦辭) 첫머리에 '억지로 절제를 강요해서는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고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苦節不可貞!'

'지나친 절제로는 바름(貞)을 지킬 수 없다!'

정부가 절제를 강요하는 것은 전염병을 잡기 위해서다.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하자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치면 정상을 회복하기는커녕 일을 더 망칠 수 있다고 주역은 경고하고 있다. '백성들의 재산을 지키고, 백성에 해를 가하지 않는다(不傷財 不害民)'는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소상공인이 직면한 게 바로 '가혹한 절제(苦節)'다. 주역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절제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주역은 '기쁜 마음으로 험지를 걷게 하라(說以行險)'고 했다. 백성들이 기꺼이 방역에 동참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얘기다.

'節(절)'은 원래 대나무에서 나온 글자다. 옥편 '설문(說文)'은 '節'을 '대나무의 마디 마디를 잇는 부분'이라고 했다(節, 竹約也). /바이두

'節(절)'은 원래 대나무에서 나온 글자다. 옥편 '설문(說文)'은 '節'을 '대나무의 마디 마디를 잇는 부분'이라고 했다(節, 竹約也). /바이두

주역이 제시하는 방역의 새로운 접근 방식은 '달콤한 절제(甘節)'다. '수택절' 괘 다섯 번째효사는 이렇게 말한다.

'甘節吉'

'달콤한 절제라야 길하다.'

세상에 달콤한 절제도 있나? 주역이 제시하는 방법은 '중용'이다. '왕은 백성에게 절제를 요구하되 이를 시간과 때에 맞춰 절절히 시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칼럼에서 본 '시중(時中)' 철학 그대로다. 자사(子思)의 논문 '중용(中庸)'은 이를 '중절(中節)'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손해가 뻔한 일에 기꺼이 참여할 소상공인들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 역시 정당하다고는 할 수 없다. 손해 본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영업에 숨통을 틔울 방법을 생각하고, 보다 현실적인 보상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소상공인들도 기꺼이 방역에 동참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감절(甘節)'이 되어야 정부 정책이 통하고, 국민이 화합할 수 있다(政通民和).

방역 피로감은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세계의 자랑이라는 K-방역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방역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달콤한 절제(甘節)!'

'수택절' 괘의 핵심 키워드 하나가 300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지금 우리에게 또 다른 숙제를 던지고 있다.

한우덕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