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법정 최고금리 인하, 왜 이렇게 서두르나

중앙선데이

입력 2022.01.01 00:26

지면보기

769호 31면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뭐가 그리 급할까. 집권여당이 또 법정 최고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서민의 이자 부담을 완화하고, 약탈적 대출의 피해를 막겠다는 취지다. 같은 이유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7월 법정 최고금리를 연 24%에서 20%로 낮춘 바 있다. 불과 반년 만에 다시 최고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민병덕·이수진 의원 등은 최근 최고금리를 13~15% 정도로 낮추는 이자제한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냈다. 개정안마다 최고금리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취지나 논리는 같다. 미국 뉴욕·텍사스주의 평균 상한이율이 15.4%, 독일의 최고금리가 4.17%~8.17%인 점 등을 내세운다. 혁신을 통해 업무·조달원가 등을 낮추면 최고금리를 11.3~15%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는 경기연구원 연구 결과도 근거 중 하나다.

대선 앞두고 또 최고금리 인하 추진
인하한 지 6개월,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최고금리 인하가 시장에 늘 긍정적 효과만 주는 것은 아니다. 최고금리가 내려가면, 우선 대부업체는 받을 수 있는 이자가 줄기 때문에 부실을 줄이기 위해 대출 심사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신용도가 낮은 취약 계층은 대출 자체가 막히거나 제한돼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대부업체의 신규 대출도 줄어들 수밖에 없고, 문을 닫는 업체가 늘어나 업권이 쪼그라들 수도 있다. 이는 다시 중·저신용자가 대출을 받기 어려운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앞서 일본이 2010년 6월 최고금리를 29.2%에서 20%로 내리면서 겪었던 일이기도 하다. 여신금융연구소에 따르면 2019년 3월 일본의 등록 대부업체는 1647곳으로 10년 전보다 73.3% 급감했다. 대부업 이용자 중 원하는 금액을 대출받지 못한 비율은 2010년 30.3%에서 2019년 43.2%로 늘었다. 같은 기간 불법 대부업 이용 경험자는 1.2%에서 8.8%로 7배 이상 뛰었다.

이런 부작용은 이미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0년 말 대부업 대출 잔액은 14조5000억원으로 전년보다 약 8.8%(1조4000억원) 감소했다. 대부업 이용자 수는 138만9000명으로 같은 기간 21.8%인 39만명이 줄었다. 이는 결국 중·저신용자들이 제때 원하는 만큼 대출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2014년 34.9%였던 최고금리를 2016년 27.9%, 2018년 24%로 내린 영향이다. 산와머니와 조이크레디트대부 등 일본계 대형 대부업체는 지난해 아예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

최고금리 인하는 이처럼 누군가에는 갚아야 할 이자를 줄여줄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는 대출을 막아버리는 ‘양날의 검’이다. 올해에는 정부의 대출 총량 규제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 등으로 중·저신용자가 대출을 받기 더 어려운 상황이다. 결코 서두를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24%에서 20%로 내린 지 이제 6개월가량 지났다. 더 지켜보고 추진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최고금리 인하에 따른 실태조사 등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도 없다. 금융권에서는 적어도 올해 상반기는 돼야 금리 인하에 대한 여파를 알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더구나 우수 대부업체의 은행권 자금조달 허용 등 최고금리 인하에 따른 보완대책이 이제 막 시행에 들어간 상황이다. 여기서 다시 최고금리를 내리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 대선후보의 금융정책에 발맞추고 싶은 의원들의 심정도 이해는 된다. 경기연구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싱크탱크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고, 이 후보도 지난해 여름 자신의 SNS에 “최고금리는 11.3~15%가 적당하다”고 적기도 했다. 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 뒤로 줄을 서는 건 좋은데, 그 수단이 서민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여서는 곤란하다. 더구나 더불어민주당은 자칭 서민을 위한 정당이 아닌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