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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신속 제정’ 약속에도…반도체특별법 해 넘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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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 5월 삼성전자 평택단지 3라인 건설현장에서 ‘K-반도체 전략’을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지난 5월 삼성전자 평택단지 3라인 건설현장에서 ‘K-반도체 전략’을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반도체특별법 제정이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속 제정’ 약속에도 정부 부처의 ‘반대 논리’와 정치권의 ‘무관심’이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이다.

30일 관련 업계와 국회 등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은 올해 마지막 날(31일) 열리는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이 법안은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 분야에 투자·세제·인프라·인력 등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송영길 민주당 대표,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발의한 법안을 묶은 것이다. 여야 모두 추진하는 법안이라 연내 국회 통과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에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예타 신속처리 의무화’ ‘인프라 시설 의무 지원’ 등에 반대하면서 난항을 겪었다.

지난 8일 상임위 통과 후에도 여야 간, 국회 반도체특위와 기획재정부 간 이견은 여전했다. 첨단산업 특화 단지에 국가가 비용을 지원하는 법 조항(20조)을 놓고 특위는 ‘지원한다’를, 기재부는 ‘지원할 수 있다’를 주장했다.

국회 관계자는 “최근 열린 반도체특위 회의에서 결국 기재부가 양보하면서 ‘지원한다’로 결정이 났다”고 말했다. 특위 위원장인 변재일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조항 등도 기재부가 한발 물러나면서 쟁점은 모두 해소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특별법은 여야 간사 간 합의를 이루지 못해 31일 본회의에 상정조차 못했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 관계자는 “야당(국민의힘)이 아무런 이유 없이 상정을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K-반도체 전략’을 발표하면서 “반도체특별법 제정 논의를 국회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직후 정부와 여당은 특별법안을 8월까지 내놓겠다고 했지만, 부처 간 이견으로 두 달 늦게 발의됐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여당 내에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을 지원하는 것에 불만을 갖는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주요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반도체 자립을 위한 정책과 법안을 내놓고 있다”며 “한국이 반도체 시장을 계속 주도하기 위해선 반도체특별법의 소속한 통과와 세액공제 제도 도입 등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세계는 기술패권을 놓고 헤게모니 전쟁 중이고, 이런 ‘신냉전’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 도전이 될 수 있다”며 “반도체 R&D 인력 확충, 반도체종합연구원 설립 등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사정은 미국도 비슷하다. 지난 6월 초 미국 상원을 통과한 520억 달러(약 61조7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제조 인센티브 법안’은 미 하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관련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일부 민주당 의원은 반도체 지원 법안의 혜택이 대형 반도체·IT 기업에만 집중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또한 미국 기업만 지원할지, 삼성전자 같은 외국 기업에도 혜택을 줄지에 대한 이견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지나 러몬드 미 상무부 장관은 지난달 말 성명을 통해 “중국과 한국, 다른 나라들은 이미 반도체 제조에 아낌없이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미국은 하원에서 반도체 지원법이 통과되지 못하면서 매일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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