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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솔한 흔적 담은 초상화···우리가 가꿔야할 유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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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작가가 그린 김창열 화백 91x116cm, Oil on canvas, 2021[사진 가나부산]

이원희 작가가 그린 김창열 화백 91x116cm, Oil on canvas, 2021[사진 가나부산]

이원희 작가가 그린 고 김창열 선생의 초상. 91x91cm, Oil on canvas, 2021 [사진 가나부산]

이원희 작가가 그린 고 김창열 선생의 초상. 91x91cm, Oil on canvas, 2021 [사진 가나부산]

맨발 차림에 오른손에 큰 붓을 쥐고 캔버스를 내려다보는 화가의 모습이 자못 진지함을 너머 엄숙하다. 지난해 1월 작고한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창열 화백이다. 생전 화가의 모습이 후배 화가인 이원희(65)의 붓질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이 초상화는 곧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에 걸릴 예정이다.

부산가나 이원희 개인전 #김창열 화백 초상화 등 35점

국내 대표적인 초상화가 이원희(65) 화백의 개인전 '더 포트레이트(THE PORTRAIT)-이원희가 그린 초상'이 갤러리 가나부산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엔 올해 완성한 김창열 화백 초상화 두 점을 비롯해 을 비롯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고두심, 승효상 등 예술가, 정치인 등의 인물의 35점을 소개하는 자리다.

이원희 작가가 그린 배우 고두심 초상화(2004). [사진 가나부산]

이원희 작가가 그린 배우 고두심 초상화(2004). [사진 가나부산]

이원희 작가가 그린 건축가 승효상, 50x65.1cm, Oil on canvas, 2014[ 사진 가나부산]

이원희 작가가 그린 건축가 승효상, 50x65.1cm, Oil on canvas, 2014[ 사진 가나부산]

이 화백은 대학원 시절 국립중앙박물관의 ‘서직수 초상’을 보고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얼굴 부분은 이명기가 그리고, 몸 부분은 김홍도가 그린 그림이다. "이 탁월한 유산이 왜 계속 이어지지 못했을까" 의문을 품었단다. 그러다 1989년 구본무 전 LG회장(당시 부회장)의 의뢰를 받은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초상화를 그려왔다. 이후 김영삼·박근혜 대통령과 윤관·이용훈 전 대법원장,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 김재순·이만섭·김수한·박관용·임채정 전 국회의장 등을 그렸다. 미국 뉴욕 유엔본부 1층 로비에 걸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초상화도 그의 작품이다.

그의 초상화는 대상 인물을 사질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작가 특유의 유려한 붓터치로 인물의 개성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화백은 "사람이야말로 모든 예술의 가장 중요하고 영원한 주제"라며 "초상화는 그림을 통해 그 대상의 성격, 태도 등 캐릭터를 드러내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력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또 "초상화야말로 인물, 기업, 그리고 기관의 역사를 품위 있고 가치 있게 기록하는 또 하나의 수단"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슬기, 53x35cm, Oil on canvas, 1990. 작가가 큰딸 슬기의 모습을 그린 것읻자. [사진 가나부산]

슬기, 53x35cm, Oil on canvas, 1990. 작가가 큰딸 슬기의 모습을 그린 것읻자. [사진 가나부산]

이번 전시작엔 그가 가까이서 관찰하며 포착한 지인과 가족의 초상도 포함돼 있다. 눈길을 끄는 작품 중 하나가 '슬기'다. 그림 속 주인공은 30여 년 전 마당에 서 있던 큰딸 슬기의 어린 모습이다. 꾸밈없고 소박한 붓질이 돋보이는 화면에 어린 딸을 바라보는 화가의 정감 어린 시선이 그대로 전해진다.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초상화 제작 기법을 학교에서 따로 배운 적은 없었다"는 그는 "의뢰를 받아 작품을 시작하며 틈만 나면 유럽 미술관을 찾아다니며 본격적으로 공부했다"고 말했다. 1996년 모교인 계명대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이후로 10년간 여름방학마다 학생들과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 레핀스쿨에서 실기연수를 했다.

그러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내 미술계에서 초상화는 비인기 장르다. 그는 "국내에 역량이 뛰어난 젊은 작가들도 많고, 잠재 수요도 적지 않다"면서 "초상화는 그 사람의 역사와 흔적의 기록인데, 그 의미와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문화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반기문 사무총장, 135x100cm, Oil on canvas, 2016. [사진 가나부산]

반기문 사무총장, 135x100cm, Oil on canvas, 2016. [사진 가나부산]

이 화백은 "영국 런던에 초상화 전문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가 있고, 여기엔 셰익스피어 초상화부터 요즘 스타 뮤지션 에드 쉬런 초상화까지 전시되고 있다"면서 "해마다 전 세계 작가들을 대상으로 여는 'BP 포트레이트 어워드(BP Portrait Award)' 공모전도 유명하다"고 전했다. 미국에도 스미스소니언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가 있다. "국내에서도 초상화 전통을 현대적으로 이어가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간절한 그의 바람이다.

창작을 위해 퇴직을 앞당겨 2017년 강단을 떠난 그는 매일 작업실로 출근하며 초상화와 더불어 풍경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그림이 팔리는 일보다 화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잃지 않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퇴직은 내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일찌감치 내 놀이터(작업실)를 마련하고, 그림에 몰두할 수 있는 요즘 하루하루가 감사하다"고 말했다. 전시 내년 1월 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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