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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주의 아트&디자인

우리는 아직 권진규를 모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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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은주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12월, 요즘같이 쌀쌀한 날씨에 이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은 옷깃을 여미고 또 여미게 됩니다.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권진규·목정욱의 ‘불멸의 초상: 권진규x목정욱’ 전시(28일까지) 얘기입니다. 우리나라 근대 조각의 선구자 고(故) 권진규(1922~1973)의 작품들이 뿜어내는 기운에 몸서리를 치게 되고, 또 그 권진규의 세계를 카메라 렌즈로 포착한 포토그래퍼 목정욱(41)의 사진에 다시 한번 전율하게 됩니다.

권진규의 자소상(自塑像) 6점과 불상과 예수상 등 조각 8점, 권진규의 작품을 모델 삼아 목정욱 작가가 촬영한 사진 30여 점이 함께 선보이는 전시입니다.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기획전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에 전시됐던 권진규의 예수상(‘십자가의 예수’)를 보셨는지요. 심하게 낡은 누더기의 질감으로 표현된 이 예수상은 전시장에 특유의 위태로운 자세로 걸려 있는데요, 생전의 작가는 한 교회에서 의뢰를 받고 이 작품을 제작했지만 “초라하다”는 이유로 납품을 거절당했습니다. 목심(木心)으로 뼈대를 만들고 옻나무즙(건칠·乾漆)을 바른 천을 둘둘 감싸 만든 예수상은 몹시도 처절한 모습 그 자체로 작품을 통해 대상의 존재, 그 정신성을 보여주고자 했던 작가의 집요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작가가 완숙기에 완성했다는 자소상 6점도 남다릅니다. 작품 수는 적지만 인간 존재의 본질을 성찰하고자 했던 작가를 보여주기엔 부족해 보이지 않습니다. 건조하고 무표정해 보이는 얼굴에 두려움과 슬픔, 안타까움 등의 감정이 특유의 질감과 명암으로 표현돼 있습니다.

목정욱의 사진 ‘자소상 연구 no. 131’(47.1x33.6㎝). 권진규의 자소상을 담았다. [사진 PKM갤러리]

목정욱의 사진 ‘자소상 연구 no. 131’(47.1x33.6㎝). 권진규의 자소상을 담았다. [사진 PKM갤러리]

여기에 목정욱의 사진은 권진규의 작품 세계를 담당한 울림으로 증폭시킵니다. 테라코타라는 재료에 녹아든 권진규의 언어와 빛을 재료로 하는 찰나의 예술 사진과의 만남이 불러일으킨 흥미로운 파장입니다. 청년 시절 일본에서 유학하며 서구의 최신 조소 기법을 배웠으나 동서양 미학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던 권진규의 예술적 지향점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가장 수수하고 꾸밈없는 소박한 형상에 숭고한 아름다움을 담고자 했던 작가 권진규가 그곳에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뜻밖의 걸작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권진규가 나무로 깎은 불상 조각과 이를 촬영한 사진 작품입니다. 극히 당당하고 평온한 모습의 이 불상은 자소상이나 예수상과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권진규 미학의 정수를 전합니다.

권진규는 1973년 52세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권진규를 잘 모릅니다. 두고두고 새롭게 발견돼야 할 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유족들은 권진규의 작품 141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고, 서울시립미술관은 내년에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엽니다. 권진규를 다시 만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