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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인종차별 투쟁의 상징…투투 대주교 90세로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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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세인트 조지 대성당에서 열린 인종차별 철폐 20주년 행사에 참석한 데스몬드 투투 명예 대주교. [AFP=연합뉴스]

2014년 4월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세인트 조지 대성당에서 열린 인종차별 철폐 20주년 행사에 참석한 데스몬드 투투 명예 대주교. [AFP=연합뉴스]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 정책) 종식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데스몬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가 별세했다. 90세.

2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투투 대주교의 별세 소식을 알렸다. 사망 원인은 밝히지 않았으나 투투 대주교가 1997년 전립선암 진단을 받고, 최근 몇 년 간 입·퇴원을 반복했다고 WSJ는 전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투투 대주교의 서거는 남아공에 해방을 물려준 세대와의 이별”이라며 “그는 아파르트헤이트의 폐해에 대한 보편적 분노를 분명히 했으며 공동체, 화해, 용서의 의미의 깊이를 몸소 보여주었다”고 밝혔다.

1931년 요하네스버그 빈민가에서 태어난 투투 대주교는 아파르트헤이트 해체 투쟁의 상징적 인물이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가정을 꾸렸던 그는 29살이 되던 1960년 뒤늦게 성공회 사제로 서품을 받고 신학자의 길을 걸었다.

2년 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한 그는 졸업 후 남아프리카 보츠와나, 레소토 등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이후 1975년 요하네스버그 대성당의 주임 사제(dean)를 거쳐 레소토의 주교를 역임했다.

그는 1978년부터 1985년까지 남아프리카 교회 협의회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며 본격적으로 흑인차별 반대 운동에 뛰어들었다. 흑인에 대한 경찰의 잔혹성을 알리고, 평화를 설교하며 남아공의 민주화와 흑인 자유 투쟁을 이끄는 중심축이 됐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8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1986년에는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케이프타운에서 대주교직에 올랐다.

1994년 4월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 정부에도 쓴소리를 마다치 않았다. 만델라 정부 각료들이 받던 거액의 봉급부터 2018년 제이콥 주마 전 대통령 정부의 부패까지 꼬집는 ‘도덕적 양심’으로 자리를 지켰다.

남아공 ‘진실과 화해 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투투 대주교는 “용서 없는 미래는 없다”는 구호를 앞세워 인종 간 화해를 일궜다는 평가도 받았다. 남아공에 다인종·다민족이 공존하는 ‘무지개 국가’라는 별칭을 붙인 사람도 그였다.

그는 1996년 영국 성공회 대주교직에서 은퇴한 뒤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다. 2000년 대주교직에서 물러났지만, 평화재단을 창설해 국내외 현안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2010년 10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공개 활동을 멈추고, 조용히 가족과 여생을 보내왔다. 가장 최근 대중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5월 부인 레아 여사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할 때다. 지난 10월 7일 구순 생일에는 세인트조지스 성당에서 열린 특별 미사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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