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표는 자기 정치 선대위는 자리싸움, 한심한 국민의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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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1일 오후 국회에서 상임선대위원장과 홍보미디어총괄본부장 사퇴를 밝힌 뒤 회견장을 떠나며 승강기를 타고 있다. [뉴스1]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1일 오후 국회에서 상임선대위원장과 홍보미디어총괄본부장 사퇴를 밝힌 뒤 회견장을 떠나며 승강기를 타고 있다. [뉴스1]

이준석, 조수진 탓하며 선대위직 사퇴  

윤석열, 당내 갈등 근본 해결 나서야

불과 18일 전에 분란을 가까스로 봉합했던 국민의힘이 다시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져들었다. 대통령 선거를 70여 일 앞둔 정당이라고 믿기 어려운 해괴한 행태다.

이번에도 갈등에 메가폰을 들이댄 건 이준석 대표다. 그제 비공개 선대위 회의에서 조수진 최고위원 겸 선대위 공보단장이 “후보의 뜻”이라며 윤석열 대선후보 부인 관련 의혹에 대한 당 대응을 지적하자 이 대표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나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나오니 (먼저) 이를 정리하라”고 반박하면서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한다. 조 최고위원이 맞서자 이 대표가 “내가 상임선대위원장인데 누구 말을 듣느냐”고 했고, 조 최고위원이 “나는 후보 말만 듣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후 조 최고위원은 공개 사과하는 듯하더니 몇몇 기자에게 이 대표를 비난하는 링크를 보낸 모양이다. 공보단장이 무슨 ‘완장’이라도 되는 양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조 최고위원은 “단 한 번도 어떤 자리를 요구하거나 자리 욕심을 낸 적이 없다”고 버티다가 어젯밤에야 물러났다.

그렇더라도 이 대표는 대표다운 리더십을 보여야 했다. 이 대표는 어제 오전 6시도 안 돼 페이스북에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를 해놓은 것을 보니 기가 차다”며 “더 크게 문제 삼기 전에 깔끔하게 거취 표명을 하라”는 글을 올린 데 이어 오후 4시엔 선대위직(상임선대위원장, 홍보·미디어총괄본부장)을 사퇴했다. 조 최고위원의 사과도 안 받겠다고 했다. 용렬한 행동이다. 도대체 대표 대접 안 한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게 몇 번째인가. 이견과 갈등을 중재하고 풀어내야 할 대표가 당사자가 돼 싸우는 건 또 뭔가. 그러니 당 안팎에서 “책임감이라곤 하나도 없고 개인 정치에 몰두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 아닌가.

이런 치졸한 싸움을 지켜보는 국민은 국민의힘이 오만하고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한다. 벌써 자리 싸움부터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지경에까지 간 데는 윤 후보의 책임이 작지 않다. 이번 갈등의 구조적 원인이 “항공모함에 비유할 정도로 거대한 선대위”(김종인 위원장)에 있기 때문이다. 몇몇이 “후보의 뜻”을 팔며 효율적 의사결정을 막아온 게 사실이다. 김 위원장이 “후보 일정을 확정하려는데 쓸데없이 다른 데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서 일정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는다”며 “선대위가 이대로는 갈 수 없다”고 토로할 정도다. 가장 기본적인 후보 일정이 이렇다면, 다른 건 물어보나 마나다.

이 대표와 조 최고위원의 충돌에 대해서도 윤 후보는 “그게 바로 민주주의 아니겠나” “우연찮게 벌어진 일이어서 당사자끼리 오해를 풀면 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안이한 인식이다. 윤 후보는 당내 갈등에 대한 근원적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의 인내심도 바닥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