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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춧가루’ 물에 적셔 다진양념 위장…저관세 노린 10년간 수법

중앙일보

입력

A씨 일당은 중국산 고춧가루를 물에 적신 뒤 다진 양념으로 위장해 국내에 반입했다. 사진 해양경찰청

A씨 일당은 중국산 고춧가루를 물에 적신 뒤 다진 양념으로 위장해 국내에 반입했다. 사진 해양경찰청

2010년쯤 중국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던 한국계 중국인 A씨(당시 44세·여)는 큰돈을 벌기 위해 색다른 방법을 고안했다. 그가 선택한 수법은 ‘위장술’. 고춧가루에 물을 섞어 다진 양념으로 위장한 뒤 국내로 들여오는 방법이었다. 고춧가루는 수입할 때 물품 원가의 270%에 해당하는 관세가 붙지만, 다진양념은 물품 원가의 45%에 해당하는 관세가 매겨진다. 고춧가루를 상대적으로 저 관세인 다진양념으로 위장해 들여오고 물을 증발시킨 뒤 고춧가루로 만들어 판매·유통해 차익을 얻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노하우’가 쌓일수록 수법은 치밀해졌다. A씨는 물건을 반입할 때 컨테이너 바깥쪽에 다진 양념을, 안쪽에는 물에 적신 고춧가루를 실어 숨기는 일명 ‘커튼 치기’ 방식을 사용했다. 고춧가루 윗부분에 위장용 다진 양념을 올려 세관의 눈을 속였다. 범행 규모도 점점 키웠다. 고춧가루를 대량으로 들어오기 위해 2014년쯤 중국에 아들 명의로 농산물 제조공장을 차렸다.

A씨의 행각을 수상히 여긴 수사기관이 두어번 그를 조사했지만, 매번 수사망을 벗어났다. “나는 일반 사무업무만 했다. 수입이 아니라 수출만 담당했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현행법이 수입 화주만을 처벌하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그는 수사기관의 포위망이 좁혀올 때마다 판매업체를 변경하면서 범행을 이어갔다.

A씨 일당은 물에 적신 고춧가루를 국내에 들여온 뒤 경기도 포천의 공장에서 물을 증발시켰고 그 고춧가루를 국내에 유통, 판매했다. 사진 해양경찰청

A씨 일당은 물에 적신 고춧가루를 국내에 들여온 뒤 경기도 포천의 공장에서 물을 증발시켰고 그 고춧가루를 국내에 유통, 판매했다. 사진 해양경찰청

A씨의 위장술은 해양경찰이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나서면서 10년 만에 덜미를 잡혔다. 해경은 수차례에 걸친 잠복 미행 등을 거쳐 A씨의 신원을 특정했다. 이어 지난 5월 인천항에서 경기도 포천 공장으로 이어지는 A씨 일당의 범행 장면을 포착했다. 조사 결과 A씨는 지난해 초부터 지난 7월까지 고춧가루 약 28만t(7억 5000만 원 상당)을 다진양념으로 위장해 들여온 것으로 파악됐다. 해경은 A씨가 10년에 걸쳐 들여온 고춧가루가 총 약 300만t 정도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해양경찰청은 A씨 등 5명을 수입 식품 안전관리 특별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14일 밝혔다. A씨가 세관 등 관계 기관 검사에 적발되지 않도록 4차례 도운 보세사 B씨(56)는 배임수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해경은 A씨 일당과 같이 국제취항 선박을 밀수에 이용하는 이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단속을 이어갈 방침이다. 해경 관계자는 “A씨 등은 중국에서 제조한 수입식품을 허위로 신고했다”며 “정상적인 경로로 수입이 이뤄지고 국민 먹거리 안전이 지켜질 수 있도록 앞으로도 강력하게 단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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