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을 가져라”주문/윤 이병 수기 「나의 서빙고 80일」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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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청소자청 명부 미리챙겨 탈출/한때 수사관동행 운동권「찍어주기」 협조/방산업체 핵심 노조원등 별도 명단 작성
보안사의 민간인사찰을 폭로했던 윤석양이병(24)은 12일 KNCC를 통해 「나의 서빙고 80일」이란 일기형식의 수기를 공개했다.
윤이병은 이글을 통해 자신이 보안사로 가게된 경위부터 조사받을때의 심경변화과정,프락치활동 내용 등에 대해 자세히 적고있다.
다음은 윤이병의 수기를 요약한 것이다.<펀집자주>
◇보안사근무경위=7월3일,소속 군부대에서 소대원과 함께 도로보수작업을 하던 나는 연대인사과장(소령)으로부터 소환을 받았다. 인사과장은 나에게 『고학력이고 글씨도 잘쓰니 본부 행정병으로 전출시켜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를 데려간 곳은 「대공상담소」라는 연대예하 보안부대였다.
그곳에서 보안사 서빙고분실 수사관인 이승섭계장과 김효수반장을 만나 혁노맹조직체계와 핵심간부에 대한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다음날 나는 사복으로 갈아입고 이들과 함께 서빙고분실로 갔다.
여기서 나는 세차례에 걸쳐 『우리와 같이 일해보자. 제대를 시켜주고 6급으로 채용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수사투쟁=「수사투쟁」이란 운동권학생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은어다. 이른바 지하조직이나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수사관에 연행돼 조사를 받게될때 회유 협박 등에 넘어가지 않고 투쟁적으로 버텨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나는 서빙고분실에서 수사투쟁에 져 「가족대우」를 받았다.
『너는 두개의 얼굴을 가져라. 진술조서를 쓸때는 혁명을 했던 당시로 돌아가고,나머지 시간은 수사관이 되어라』는게 나에 대한 그들의 주문이었다. 나는 입대전 내가 활동하던 조직과 접촉하던 사람에 대해 조금씩 입을 열었고 수배중인 친구의 은신처를 알려주기도 했다. 또 직접 수사관과 함께 시내 대학교 근방으로 나가 얼굴이 알려지지않은 운동권 인물을 「찍어주는」역할도 맡았다.
◇보안사생활=근무하면서 내가 직접확인한 「과업무보고서」라는 자료속에는 이번에 폭로한 명단과는 별도로 운동권학생중 군입대 예정자와 현대중공업ㆍ현대정공ㆍ대우조선ㆍ㈜통일 등 방위산업체의 핵심노조원들이 1백명가량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 캐비닛에는 강제 징집된 현역사병에 대한 동향파악 서류철이 들어있었다.
특히 89년4월∼90년7월사이의 「과업무보고서」에는 보안사의 수사방식이 소개돼 있다. 이안에는 망원(정보원)을 이용하는 법과 정보수집을 위한 위장업체설립의 필요성 등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망원은 양심선언의 위험성이 상존하므로 특별한 경우에 제한적으로 활용할 것과 건당 활동비로 10만원을 지급하라고 되어 있다.
위장업체의 경우는 출판사와 복사점을 겸한 서점이어야 하며,잡지발행은 상업적 경영이 아니므로 계간지가 적당하다고 쓰여있었다.
「과업무보고서」에는 또 감응거리가 짧은(15m) 도청기기의 개선,미행을 위한 여수사관 확충 등 건의내용이 담겨있으며 시ㆍ도ㆍ구청과 동사무소 및 통ㆍ반장들이 수사협조에 미온적이라는 불평도 적혀있었다.
◇탈출=9월21일,나는 안으로부터 2중스파이가 아닌가하는 의문을 받게 됐다. 월간지 『말』 10월호에 실린 「보안사의 혁노맹사건 조작진상」이란 기사때문이었다.
기사안에는 나의 진술이 들어있었다.
나는 빨리 탈출하기로 결정했다. 기회를 보던중 마침내 그날이 왔다.
탈출은 9월23일 새벽으로 정했다. 사병들이 추석연휴를 맞아 3박4일씩 특박을 나가면 아무래도 부대경비가 소홀할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나는 전날오후 사무실청소를 한다고 속여 서랍과 캐비닛에 들어있는 문제의 사찰대상자 명부철을 미리 뽑아냈다. 오전2시40분. 위병소 근무자가 다음 근무자를 깨우기위해 내무반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낮근무 교대때에는 후속근무자가 위병소에 와서 교대하지만 자정 이후에는 거꾸로 위병소근무자가 내무반에 와 다음 근로자를 깨우는 틈을 노려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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