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서 판문점까지… 이찬삼특파원 한달취재기(다시 가본 북한:1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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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주부들 소망은 한결같이 “가족건강”/가사ㆍ직장일로 새벽 5시에 기상/5개월 출산휴가 두달 쉬곤 반납/처녀들은 평양총각에 시집가는 게 소원
평양에서는 아침 7시와 정오에 각각 사이렌이 울린다.
「고동」이라 불리는 7시 사이렌은 하루 일과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고 정오 「고동」은 점심시간의 신호다.
북한 주부들은 남성들보다 훨씬 더 일을 많이 하고 또 그만큼 부지런해야 한다.
주부들은 대개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하고 도시락을 싼 후 거리에 나와 도로청소를 한다.
아침 사이렌이 울리면 남편이 집을 나서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먼저 나와 탁아소를 거쳐 직장으로 향한다.
평양 수예연구소에서 만난 주부수예공 홍혜숙(32)ㆍ신경란(41)ㆍ김영희(41)ㆍ최정옥(32)ㆍ김향선(25)ㆍ장미선(36)씨 등으로부터 북한주부의 24시를 들어보았다.
○흡연율 거의 백%
이들의 가장 큰 소망은 한결같이 남편과 아이들의 건강이었으며 특히 남편들이 담배를 좀 적게 피웠으면 하고 바랐다.
이들의 말대로 북한남성들의 흡연율은 거의 1백%.
한달동안 북한에서 만난 북한남성들중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지휘자 김일진씨(34)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정모 참사관(52) 등 단 2명뿐이었다.
공원이나 길가 어디서든 담배를 물고 있지 않는 남성이 없을 정도였다.
남성들이 이처럼 니코틴에 찌드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는 북한주부들은 시장에서 담배사는 것을 제일 싫어해 한달치 담배를 구입할 때마다 수량문제로 남편과 티격태격 입씨름한다는 것.
북한주부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족들의 일용품을 매달 한꺼번에 구입한다. 백화점이나 주택가 「상점」에는 남성들보다 여성들의 출입이 한결 많은 편이며 식료품 상점의 경우 거의 1백%가 여성이다.
양곡배급(쌀과 잡곡비율이 70대30)을 월2회 받으면서도 북한의 엥겔지수는 매우 높아 식비가 전체 생활비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북한주부들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직장에서 일을 하고 금요일 하루는 가족들과 함께 공사장에 나가 힘든 「금요노동」을 해야 한다.
○식비가 40% 차지
이날은 2천만 북한주민 전원이 도로공사나 아파트 건설장,또는 침수지역에서 복구작업 등을 한다.
토요일은 「토요학습일」로 주체사상 등을 공부하고 또 암기분을 받아 외기도 한다. 일요일에는 밀린 빨래를 하거나 가족들의 옷가지를 손수 만들기도 하며 때로는 대동강이나 보통강반(강변)으로 가족나들이를 한다.
『이때 가장 큰 걱정은 밥곽(도시락) 준비입니다』라고 북한주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알루미늄 도시락에 깻잎조림 등의 반찬을 마련한다는 주부들은 이날만은 이밥(쌀밥)을 차리며 휘발유통 모양의 플래스틱 물통에 숭늉이나 맥주를 부어 음료를 마련한다.
계절에 따라 사과 등 과일과 아이들을 위한 사탕도 준비한다.
우리나라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 학업에 많은 신경을 쓰는 북한주부들은 『1년에 한번있는 학부모 모임에 나가 교원으로부터 아이들 칭찬듣는 것이 제일 큰 낙』이라고 말할 만큼 자녀교육에 대한 기대가 크다.
북한에서는 공부만 잘하면 월반도 시키며 각 시ㆍ군별 명문교라 할 수 있는 제1고등 중학교가 있고 이곳에서도 우수한 학생은 평양 제1고등 중학교로 전학할 수 있다. 이 경우 전가족이 「평양입성」의 특혜도 받는다.
북한 미혼여성들의 소망이 「평양 총각」과 결혼해서 평양에 주거지를 마련하는 것이고 보면 자식 잘둬 이뤄진 평양이주는 더할나위 없는 기쁨에 속한다.
북한여성들의 출산휴가에 대한 자랑 또한 11년제 무료교육제도 만틈 대단하다.
출산전 77일과 출산후 73일 등 1백50일(5개월)로 책정된 북한의 임산부에 대한 휴가제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자랑. 그러나 이런 제도의 부작용도 적지 않은 것 같았다.
평안남도 상원군에 세워진 상원시멘트공장 사적 지도원 태우철씨(49)는 『임산부들은 조국에 전혀 이익을 못줄 뿐 아니라 오히려 해를 끼친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라며 『1년중 5개월을 쉬고도 아이 젖준다고 들락날락하지요. 전투(일)는 언제하갔습니까』라고 여성 일꾼들의 출산에 따른 비효율성을 퉁명스럽게 지적했다.
최근에 들어서는 임산부들도 2개월 정도만 쉴 뿐 거의 대부분이 나머지 휴가를 반납하고 일을 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고 했다.
북한여성들은 대가족제도를 아직도 좋아하는 편으로 대개가 시부모를 모시며 이 경우 『약간 불편한 점도 있지만 아이들을 탁아소에 맡기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저녁식사 준비를 시어머니께서 대신 맡아주시기 때문에 오히려 동료들의 부러움을 삽니다』고 평양수예연구소 주부수예공들은 말했다.
○대가족제도 선호
직계 가족이 없는 노인들은 양로원 시설이 아직 없어 양부모 결연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여성들은 『남편들이 가사를 전혀 도와주지 않고 집안에서 빈둥빈둥 떼레비만 보고 놀기만해 속상한 경우도 있단 말입니다』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북한주부들은 「남편」이란 말 대신 「우리집 가장」이라는 표현을 흔히 썼으며 어린 자녀들을 부를 때도 사내아이는 「총각」,여자아이는 「처녀」라고 했다.
주부수예공들의 남편직업은 신문사 기자를 비롯,김책 공업대학 학생,방송기자,은행경제사(행원),사범대학 준박사교원(석사 교수),용성 베어링공장기사 등 다양했으나 6명의 주부 모두가 공교롭게도 남편과는 두살 차이에 자녀들도 각각 2명씩이었다.
북한에서는 한가정 두자녀 갖기가 보편화돼 있으나 딸만 있을 경우에는 세번째 임신을 시도,아들선호 현상이 뚜렸했다.
○“색TV 갖고 싶어”
『가장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예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배려속에 부족함이 없이 잘 삽니다』라고 저마다 노래하듯 했으나 한참을 달랜 결과 『색 떼레비(컬러TV)­.』 『재봉틀­.』 『세칸 살림집­.』 등의 단어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이들의 한달 생활비는 『6인가족을 기준으로 총 노임(생활비)을 4백원으로 잡을 때 부식비가 1백50원,신발ㆍ옷감 등 생필품 1백50원,잡비 1백원으로 저축하기가 참 힘이 듭니다』고 했다.
양곡 배급비로 5원정도,아파트 관리비 7원,간장 1ℓ에 4원정도로 정부배급 물자는 믿기지 않을 만큼 쌌으나,재건복 타입의 작업복 한벌에 1백20원,우산 24원,가죽혁대 14원,가죽구두 32원 등 주민들이 직접 사 써야하는 용품들은 소득에 비해 매우 비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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