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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지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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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연상호 감독의 ‘지옥’에서 지옥에 갈 사람은 허공에 갑자기 등장한 공포스러운 존재의 ‘고지’를 받는다. 짧으면 몇 초, 길면 몇 년 후에 지옥에 갈 거라는 통보다. 지정된 시간이 되면 어디선가 쿵쿵 소리가 나고, 새까만 거구의 저승사자 셋이 등장해 지옥에 갈 사람에게 폭력을 가하고 강렬한 빛을 쏴 검은 골격만 앙상하게 남겨 버리는, 이른바 ‘시연’을 한다. 이 스펙터클한 죽음 의식은 ‘지옥’을 상징하는 광경이며, 우린 그렇게 지옥의 끔찍함을 경험하는 셈이다.

그영화이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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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건 그들이 왜 고지받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옥은 그곳에 갈 만한 죄를 지은 자들이 가는 곳이다. 하지만 우린 드라마 ‘지옥’의 죄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인간은 모두 잘못을 하고 죄를 짓지만, 온몸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형벌을 받을 만큼의 죄에 대해 ‘지옥’은 적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옥’은 신의 정의로운 심판보다 악마의 혼돈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지옥에 갈 만한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 건 아니다. 바로 김창식이다. 살인자인 그는 심신미약을 이유로 10년 형을 받았고 그마저 감형되어 6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여기서 피해자의 유족은 사적 복수를 계획하고, 결국 김창식은 화장로에서 불에 타 죽어간다. ‘지옥’에서 진짜 지옥 같은 대목은 바로 이 장면이다. 죄인은 불구덩이로! 인간에 대한 인간의 심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