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부 오영수 “200명 인생 살아봤다, 결론은 하고픈 일 하라”

중앙일보

입력 2021.12.07 00:03

업데이트 2021.12.0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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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깐부’ 오영수(77) 배우가 무대로 돌아온다. 다음 달 7일 서울 대학로 TOM 1관에서 개막하는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프로이트를 연기한다. 2019년 12월 ‘노부인의 방문’ 이후 2년여 만의 연극 출연이다. 1967년 극단 광장에서 배우 생활을 시작한 그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긴 무대 공백. 그사이 촬영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오일남 역으로 그는 이제 글로벌 시청자들에게도 유명한 얼굴이 됐다.

6일 오전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그는 “‘오징어 게임’이 막 부상하면서 나 스스로 자제력이 없어지는 것 같이 느낄 때 ‘라스트 세션’ 제안을 받았다. 다시 연극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오징어 게임’의 들뜬 기분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듯했다. 경기도 성남 집에서 대학로 연습실까지 매일 왕복 3시간을 지하철로 이동하며 대본을 외운다고 했다. “대사량이 엄청나다. 관념적·상징적인 언어가 많아 집중해 암기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전달이 어렵다. 이 나이에 배우로서 심판대에 오르는 거 같다”는 그의 눈빛엔 경력 55년 차 배우의 진지하고 비장한 설렘이 가득했다.

6일 오전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배우 오영수. 지난 10월 ‘오징어 게임’으로 대중적 인기가 급상승했을 때, 그는 연극 무대로 복귀하는 결정을 내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6일 오전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배우 오영수. 지난 10월 ‘오징어 게임’으로 대중적 인기가 급상승했을 때, 그는 연극 무대로 복귀하는 결정을 내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오징어 게임’ 이후 첫 작품인데,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
“새로운 느낌이다. 예전엔 무대에서 좀 꾸미고 뭘 만들어보려고 했었다면, 요즘엔 꾸미는 거 그만하고 내 삶 그대로 해보자, 하고 있다.”

미국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이 쓴 ‘라스트 세션’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C. S. 루이스’가 신과 종교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내용의 2인극. 프로이트 역엔 그와 배우 신구가, 루이스 역에는 이상윤·전박찬이 더블 캐스팅됐다.

그는 ‘라스트 세션’에서도 ‘깐부’ 정신을 짚어냈다. “네것 내것이 없고 승자도 패자도 없는, 모두 하나가 되는 깐부 정신이 양극화·분열의 시대에 꼭 필요한 정신”이라며 “이 연극을 보고 나면 관객들은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결국 하나라는 마음을 안고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TV나 영화 출연이 많지 않았는데.
“단역이라도 생명력이 있는 역할이면 기꺼이 한다. 상업광고도 마음에 차지 않고 와 닿지 않는 광고는 안 한다는 것이다. 50대라면 세상에 나가고 싶고, 나라는 존재를 알리고 싶어 다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쭉 연극을 해온 지향점, 순수성에서 벗어나지 않고 갈 생각이다.”
50여 년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은.
“뛰쳐나가는 것도 정신적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거 아닌가. 떨쳐나가고 싶어도 가진 게 없어 그냥 머무르는 경우도 있다. 내 경우 아무것도 없었던 시간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서 (연기 외길을) 지키는 게 된 거 같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큰 고비로 3년 전 급성폐렴으로 20일간 입원한 시기를 꼽았다. ‘나도 가는구나’라고 생각했을 만큼 위험했다. “아 죽는구나, 하는 순간 돈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 살아나오니까 어떻게 사는 게 가치 있는 삶인가 생각하게 됐다.”

그는 1987년 국립극단에 들어가 전속단원제가 폐지된 2010년까지 간판 배우로 활동했다. 정년 보장에 안주한 일부 단원들의 타성에 젖은 연기 탓에 전속단원제가 폐지된 일을 두고 “더 반대했어야 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배우들이 20년, 30년씩 무대에서 버틸 토대가 사라진 데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모두 영화·TV로 가려고 하니, 이제 연극은 젊은 배우들만 한다. 인생은 빠지고 사건만 있는 연극이 됐다”고 했다.

인생의 멘토 장민호(1924~2012) 선생도 국립극단에서 만났다. “연극은 호흡이다. 어떻게 호흡하느냐에 따라 기력이 나온다. 선생은 그걸 잘하셨다. 그분 밑에서 20년 이상 있었던 게 큰 원동력이 됐다.”

그는 장민호 선생의 마지막 작품 ‘3월의 눈’(2011)의 장오 역을 선생과 번갈아 연기했다. 그때를 어제 일처럼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느 날 선생이 공연에 앞서 그에게 와달라고 했다. 버티기가 힘들다면서 공연을 끝내고 나오는 선생을 안아달라는 것이었다. 지켜보는 내내 걱정했지만 선생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감정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공연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막 뒤로 들어오자마자 그에게 안겨 5분 동안 헉헉거렸다. 그는 “무대에서 ‘기력’으로 승리한 위대한 배우”라며 “나도 장민호 선생 같은 배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도 “무대에 서면 기력이 나온다”고 했다. ‘오징어 게임’ 촬영 때도 그런 기력을 느낀 순간들이 있다. 구슬치기 장면에서 기훈(이정재)에게 “자네가 날 속이고 내 구슬 가져간 건 말이 되고”라고 말하는 장면, 또 죽기 전에 “뭘 하면 좀 재미가 있을까”라고 하는 장면 등이다. 그는 “배우의 그런 기력은 시청자·관객에게도 전해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예전엔 무대에서 평소 말 못하던 것을 쏟아부을 때 전율을 느꼈지만, 이젠 관객들과 ‘이렇게도 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얘기하고 싶은 심정으로 연기한다”고 전했다.

200여 편 넘는 작품에 출연했다. 연기하며 얻은 깨달음이 있나.
“200여 명의 다양한 인생을 살아보고 얻은 결론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그냥 하는 것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감이 제일 앞에 있어야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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