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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참관 없이 휴대폰 포렌식, 다른 범죄 증거로 못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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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수사기관이 임의로 제출받은 피의자의 휴대전화에서 별건 범죄 혐의가 추가 발견됐어도 피의자 참관 없이 디지털 증거 조사가 진행됐다면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18일 준강제추행과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의 상고심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충북 청주 소재 한 대학의 교수인 A씨는 2014년 12월 자신의 집에서 동성 제자 B씨와 함께 술을 마신 뒤, B씨가 취하자 그의 신체 특정 부위를 자신의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혐의를 받았다. B씨는 현장에서 A씨의 휴대전화 2대를 확보해 경찰에 증거물로 임의제출했다. 그런데 경찰이 이 휴대전화를 디지털 증거 분석하는 과정에서 A씨가 2013년 12월에도 별도 유사 범행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발견됐다. 1심은 A씨의 2013년과 2014년 범죄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그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B씨가 피해자였던 2014년 사건의 범죄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형량을 벌금 300만원으로 낮췄다. 디지털 증거 조사 과정이 적법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2013년 범죄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2심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2014년 범행)혐의 사실 관련 증거 확보를 위한 탐색 과정에서 그와 무관한 증거를 발견한 경우에는 즉시 탐색 절차를 중단한 후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야 하고 피의자에게도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이를 이행하지 않고 사후에 영장을 발부받았다 하더라도 절차적 하자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해당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던 2013년 영상물은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2심 재판부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피해자 등 제삼자가 피의자의 정보저장 매체를 임의제출한 경우에도 전자정보의 범죄혐의 사실과 구체적 연관 관계가 있는 전자정보에 한해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수사기관은 피의자에게 참여권 보장과 압수한 전자정보 목록의 교부 등 피의자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례가 대검찰청 감찰부(부장 한동수)의 대변인 공용 휴대전화 조사 사안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는 의견이 나온다. 대검 감찰부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관련된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및 장모 문건 등의 진상조사를 이유로 권순정 전 대변인(현 부산지검 서부지청장)이 사용했던 대변인 공용 휴대전화를 영장 없이 임의제출받았다. 이어 권 전 대변인 등의 참관 없이 이를 디지털 포렌식한 뒤 그 결과를 지난 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압수수색 형태로 넘겼다.

권 전 대변인은 당시 대검 감찰부의 정식 감찰 대상이 아니었지만, 공수처엔 고발 사주 의혹 사건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여서 ‘하청 감찰’ 의혹을 낳았다.

이와 관련해 권 전 대변인은 지난 7일 입장문을 내고 “업무용 휴대폰을 영장 없이 압수하고, 몰래 포렌식한 감찰부의 조치는 헌법상 영장주의 원칙과 절차적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은 물론이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엄중한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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