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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차라며 ‘승합차는 LPG’ 강제, 막상 충전소 적어 불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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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대구의 한 염색공장에 하청으로 염료를 공급하는 A사의 이모씨는 올여름 화학물질 통계조사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화학물질 통계조사는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에 따라 정부가 화학물질의 취급 현황과 취급시설 등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2년마다 실시한다. 기존에는 사업장에서 연간 취급하는 양이 1t 이하일 경우에 제외 대상이었다.

이행 부담이 큰 환경 규제는.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행 부담이 큰 환경 규제는.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런데 2년 전인 2019년부터 모든 화학물질이 통계조사 대상이 되면서 취급량이 적은 중소기업까지 통계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이씨는 “염료라는 것이 그때마다 납품하는 종류가 다른데 어디서 만들어졌고, 얼마나 사용했는지 지난 1년간 수치를 적어 내야 한다”며 “직원 한 명이 한 달 넘게 해당 업무에만 매달려야 하고 행정사 등 용역 대행 비용도 별도로 지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형평성에 대한 불만도 털어놨다. 2년 전 환경에 더 악영향을 미치는 도료를 쓰는 자동차 정비업은 조사 대상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반대로 친환경 염료를 공급하는 A사는 제조업으로 분류돼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한다.

산업 현장을 고려하지 않는 환경 규제는 21대 국회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본지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과 규제정보포털을 분석한 결과, 21대 국회 들어 환경 분야에서는 20개 법안이 제·개정되거나 계류 중이다. 20개 법안의 환경 관련 규제 조항은 총 53개로 기업의 부담이 느는 규제 신설·강화가 34개, 처벌 신설·강화가 3개였다. 반면에 지원 조항은 16개로, 규제·처벌 조항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지원 조항의 2.3배 수준이다.

제21대 국회 계류법안 조항 분석.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제21대 국회 계류법안 조항 분석.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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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환경 규제를 갈수록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기준이 모호하다는 게 문제다. 대표적인 것이 ‘친환경차’라며 액화석유가스(LPG) 승합차의 구매를 사실상 강제한 법안이다. 바로 ‘대기관리권역의 대기환경개선에 관한 특별법’ 제28조이다.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통학용 승합차는 사실상 무조건 LPG 차량으로 사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엔 13세 미만이 탑승하는 통학 차량만 LPG차 사용이 의무였지만, 앞으로는 모든 연령대가 타는 승합차를 LPG차로 운영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낮에는 유치원생을 통학시키고 새벽과 저녁에는 학원에 다니는 중·고생을 실어나르는 조모씨는 “할 수 없이 LPG 차량을 구매하긴 했는데 충전 인프라가 이렇게 부족한 줄 몰랐다. LPG충전소가 집 근처에 없어 먼 거리까지 충전하러 가야 돼 불편하다. 충전하러 갈 때마다 이게 뭔 고생인가 싶다”고 한탄했다.

LPG차가 친환경차인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조차 LPG차는 ‘친환경’이 아닌 ‘저공해 차량’으로 분류하고 친환경 세제 혜택은 주지 않는다. 해당 개정안을 발의한 임종성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는 LPG 인프라를 확충 중이고, 국회도 관련 예산을 늘리고 있어 개정안을 낸 것”이라고 답했다.

환경규제가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환경규제가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산업계는 환경 규제 바람이 앞으로 더 거세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지난 8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제정하고, 지난달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40% 이상 감축할 것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에너지 전문가 대상 조사에서는 70%가 2030 NDC가 과도하게 설정됐다고 응답했다.

전문가 70%, 2030 NDC 과도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전문가 70%, 2030 NDC 과도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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