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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에 밀려 구멍뚫린 수방/전문가가 진단해본「9월수재」(경제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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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수리모형실험 예측 빗나가/배수효과 고려않고 수몰선 책정/배수펌프장 집중제어장치 전무
1개월전 서울ㆍ중부지방에서 발생한 엄청난 수해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치수대책은 오랜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해가 생길때마다 정책 관계자들은 떠들썩하게 수재민지원책을 논의하는 것으로 그쳤다. 공개적인 원인분석도 진행되지 않았다.
수방 관계자들과의 집중 인터뷰를 통해 더이상 덮어져서는 안될 문제들을 제기하고자 한다. 모두 현직에 있는 관계자들의 요청에 따라 그들의 이야기를 익명으로 게재한다.<편집자주>
『한강을 다스리는 치수기본계획이 71년에 만들어진 이후 20년이나 되도록 전반적인 검토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건설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수해를 계기로 비로소 한강수계에 대한 치수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말한다. 내년부터 남ㆍ북한강본류와 지천을 흐르는 물의 양과 강우량,강바닥 준설상태,제방의 축조 및 관리실태,도시지역의 내수피해 등을 정밀조사해 기본계획을 뜯어고친다는 것이다.
『일산 둑이 터지고 한강변 고수부지에 22만9천입방m의 뻘흙이 쌓인 것은 수리모형실험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입증했습니다.』
서울시는 한강종합개발사업을 벌이면서 85년 강의 구조를 축소해 만든 모형에 물을 흘려보내 실제상황을 예측하는 실험에서 「합격판정」을 내렸었다.
한강에 대한 치수기본계획은 71년에 수립됐다.
그런데 그 이후 우선 전체 저수용량이 29억t,27.5억t이나 되는 소양강ㆍ충주 다목적댐이 건설됐다.
한강의 물 흐름을 인위적으로 더욱 곧바르게 하고 고수부지 등의 개발로 아무래도 강물이 흐르는 폭을 좁게한 서울지역의 한강종합개발사업이 이뤄졌다. 이때 특히 잠실대교밑과 행주대교하류쪽에는 물을 가두는 수중보가 설치됐다.
경기도도 서울에 이어 한강개발계획을 수립,미사리쪽 상류지역부터 공사중이다
지대가 낮은 논ㆍ밭이 많아 큰비가 내릴 경우 상당량의 물을 잠시 가둘 수 있었던 팔당∼서울사이의 한강유역은 자꾸만 위성도시로 탈바꿈했다. 서울상류쪽의 하남ㆍ미금ㆍ구리와 하류쪽의 광명 등이 그 곳으로 이젠 저수하기보다는 많은 물을 한강으로 쏟아내기에 바쁘다.
『한강의 본류와 주변상황은 계속 바뀌는데 한강홍수통제소에서는 옛날의 모형을 갖고 실험한뒤 홍수예보를 냈으니 정확성이 떨어질 수 밖에요』라고 관계자는 밝혔다.
건설부는 한강의 치수기본계획을 고쳐야 한다는 것은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그 정밀조사와 계획 수정에는 오랜시간과 많은 인력ㆍ예산이 들기 때문에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서울쪽도 뚝섬제방과 반포천둑에서 물이 샜는데 즉각 인력과 장비가 동원돼 막았습니다. 일산둑도 터지기 전날 낮부터 조짐이 보였다는데 아무래도 대응책이 충분치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댐상류 넓은 지역의 물에 잠기는 선(수몰선)을 일률적으로 댐의 계획홍수위로 잡는 것은 무리입니다.
몇 ㎞나 떨어진 상류의 경우 지역여건에 따라 아무래도 댐의 계획홍수위보다 낮은 높이에서 물에 잠기게 됩니다.』
건설부관계자는 상류지역에서 밀려오던 물이 괸 물과 부닥치는 힘으로 댐부근의 하류가 상류보다 수위가 높아져 다시 상류로 역류하는 「배수효과」가 고려되지 않은채 일률적으로 댐의 계획홍수위로 수몰선을 정했음을 솔직히 시인했다.
『사실 배수효과를 고려하면 댐상류의 수몰지역이 훨씬 넓어져 보상비가 많이 들어가게 됩니다. 불합리한 점을 알면서도 보상비를 줄이기 위해 그렇게 해온 것입니다.』
건설부 중앙재해대책본부와 서울시재해대책본부 관계자들은 추석연휴에도 계속 근무했다. 이번 수해에 대한 종합보고서를 내고 피해복구대책과 앞으로의 수방대책을 마련하느라고 바삐 뛰고 있다.
건설부는 8일 확정한 향후 수방대책에서야 비로소 앞으로는 배수효과를 고려해 수몰선을 정하고 댐설계때 계획홍수량의 크기도 늘려잡기로 했다.
『특히 이번에 터진 일산둑은 하천법상 한강과 같은 직할하천의 경우 둑높이가 계획홍수위보다 2m높아야(여유고) 하는데도 고작 72㎝에 불과했습니다.』
복구공사에 참여했던 민ㆍ군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일산제방의 허술함을 지적한다. 제방흙이 힘이 약한 모래흙(사질토)인데다 몸체 또한 허약해 거대한 물살을 견뎌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산둑은 원래 1932년께 일제가 동척소유였던 이 일대 농장의 침수를 막기위해 주변 하류지역의 사질토로 쌓은 허술한 것이었다.
『제방은 막대한 경비가 들기 때문에 부근의 흙이 모래 흙과 같이 나쁘다고해서 다른 곳의 흙을 날라다 쌓을 수도 없지요.』
건설부관계자들은 일산둑이 서울ㆍ경기접경지역으로 그나마 부족한 치수예산집행에서도 우선 순위가 밀리는 사각지대였다고 솔직히 시인한다.
다급해진 건설부는 부랴부랴 일산둑을 통일동산으로 연결되는 자유로를 건설하면서 보강키로 했다. 강건너 김포둑도 이달말부터 1백83억원을 투입해 튼튼하게 만든다.
둑이 터지기 전에는 왜 못했을까.
『이른바 상습피해 침수지역 주민들은 거의 매해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한강수위의 변동에 따라 예상되는 침수구역에 대한 표시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한 건설부관계자는 서울시에 좀더 세심한 수방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이같이 충고한다.
『늘어나는 서울 및 수도권인구를 수용하느라고 마구 개발만 했지 적절한 도시방재 대책을 세우지 못했지요.』
서울은 기본적으로 수방등 도시방재기능을 사전에 세우지 못한 채 자연적으로 형성된 도시다.
그런데다 서울로 인구가 몰리자 저지대에까지 마구 집들이 들어섰다. 60년대초까지만 해도 한강이 범람할 경우 잠기게 되는 여유분(범람원)은 대부분 개발돼 거대한 아파트단지로 변했다. 동부이촌동ㆍ반포ㆍ압구정ㆍ잠실ㆍ여의도 등이 그곳이다.
『한강은 60년대후반이후 서울쪽의 강유역을 개발하는데만 치중한 나머지 강물의 기본특성인 구불구불 흐르는 것(사행)이 일부 무시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서울시는 저지대로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던 망원동ㆍ구로일대등에 대한 규제를 79년께부터 모두 풀어버렸다. 지난 5월부터 심각한 주택난을 던다는 이유로 그동안 규제해 오던 지하층의 주거용도를 공식인정하고 나섰다.
『상습침수지역의 경우 1층도 물에 잠기기 일쑤인데 지하층은 오죽하겠어요.』
서울시 수방관계자의 이야기다.
올해도 피해가 컸던 서울 성내ㆍ풍납동지역은 단독주택 밀집지역으로 지붕높이가 한강둑과 비슷할 정도인데 그냥 집을 짓게 했다.
대책없는 급격한 도시화는 경기도지역에서 더욱 심각하다. 하남ㆍ광명ㆍ군포ㆍ의왕시 등에서는 대부분 충분한 복토와 하수도시설을 갖추지 않은 채 집을 지어 비슷한 고민에 빠져있다.
『신도시도 마찬가지예요. 일산은 평균 5m이상,평촌도 2∼3m정도는 돋워야 합니다.』
한강수위보다 낮은 건립후보지인 논을 돋우려면 수백만입방m의 흙이 필요한데,그것도 주변에 충분한 흙이 없어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당장 주택공급확대도 필요하겠지만 물에 잠기는 집을 원하는 사람은 없지요. 특히 신도시의 경우 전화국ㆍ전기공급시설 등 도시 중추기능이 침수되면 죽음의 도시로 변하고 만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상습침수지역은 재개발을 할 때 1층은 주거용대신 주차장등으로 쓰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침수위치표시를 하고 하수 및 배수시설을 늘려야 한다.
서울시의 다른 관계자는 『서울의 유수지에선 작년까지만 해도 관리인이 나무자 눈금을 보고 수위를 측정할 정도로 장비가 허술했습니다. 올해에 수위자동계측기를 설치했는데,그나마 이번에 수해가 컸던 성내ㆍ풍납동주변 성내 제1유수지에선 작동이 안됐답니다.』
『댐상류지역에 내리는 강우량을 측정하는 우량계가 3백평방㎞마다 겨우 하나씩 있을 정도니 정확한 강우측정이 어렵지요.』
수위를 관로별로 자동체크,수문도 무인 자동운전한다는 일본과는 그 설비가 비교도 안된다.
『서울에 배수펌프장이 58곳이나 있으면 뭘합니까. 어디서 언제 펌프장을 가동했는지 현지보고가 없으면 서울시 재해대책본부에선 제대로 체크를 못합니다.』
따라서 서울전역을 조망하며 각 배수펌프장의 작동을 집중제어할 수 있는 장비가 빨리 설치돼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첨단장비와 시설도 늘어났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집안살림도 훨씬 많아졌다. 따라서 한번 물에 잠겼다하면 그 피해는 엄청나다.
수해는 70년대 평균 1천71억원대에서 80년대는 2천6백63억원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연간 치수예산은 그 4분의1 수준인 6백억원대 정도다.
이는 국민총생산(GNP)의 0.08%로 일본(0.17%)의 절반수준이다. 물론 절대투자액으로 보면 더욱 적다.
『당장 눈에 띄지 않는 사업이라서 국가의 주요 기본시설이면서도 자꾸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지요.』
수방전문가들은 더 늦기전에 치수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 투자한만큼 거둬들인다는 원칙이 철저하게 적용되는 게 바로 수방이라고 강조한다. 87년 대홍수이후 서울시가 신경을 써 투자해 대책을 세운 면목ㆍ중화ㆍ반포ㆍ망원ㆍ목동일대는 이번에 피해가 없었다는 것.
『우리는 재해통계 하나에서 부터 정직한 것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니 각 재해의 특성을 이해해 교훈으로 삼는다는 홍수재해의 역사성은 헛구호에 그치고 있습니다.』
하천은 살아 움직이는 대표적인 자연공물이다. 끊임없이 침식ㆍ운반ㆍ퇴적작용을 하며 살아있다. 섣불리 대응했다가 엄청난 재앙을 가져오는 것이다.
따라서 또다시 예전처럼 국민적 망각속에 빠지지 말고 이번 수해를 교훈삼아 치수의 기본부터 차근차근 따지며 고쳐나가야 하겠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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