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마나한 사과/이재학 정치부 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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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8일 우리나라를 반나절 남짓 다녀간 가네마루(김환) 전 일본 부총리의 북한ㆍ일본 접촉과정에 대한 해명과 사과는 예상했던 수준이었다. 자신의 방북목적은 일ㆍ북한 관계진전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것일 뿐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몇가지 비판과 오해를 빚게된 데 대해 한국정부와 한국국민에게 사과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네마루의 설명을 좀더 구체적으로 옮겨보면 우리로서는 쉽게 간과할 수 없는 간교함이 도처에 숨어 있다.
『수교 전이라고 중간배상이 가능하도록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했지만 배상문제는 자민당이나 내가 아닌 일본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일이다. 그러니 나의 말에 크게 괘념할 필요는 없다.
전후 45년을 배상시기에 포함시킨 것은 이런저런 정치적 이유를 고려한 것이지 꼭 배상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조선」은 북한의 통일전략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장차 한반도의 통일을 상정한 표현일 뿐이다.
한국측에 약속해온대로 충분하고 긴밀한 사전협의를 하지 않은 채 북한의 수교교섭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아시안게임 등으로 통신사정이 나빠 일본 외무성과 연락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북한 방문결과는 일본정부에 책임이 없다.
이같은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김일성은 상당부분 속은 셈이며 기존의 한일 우호관계를 해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는 『한일의 우호관계를 중시하는 내 인품을 믿어달라』는 말까지 덧붙여 노태우 대통령에게 설명했다.
그러나 가네마루의 해명엔 명백한 거짓말과 거짓말일 것으로 심증이 가는 대목이 적지 않다. 일본정부는 수교 전 과거사에 대한 정부차원의 사죄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가이후 자민당 총재의 친서를 통해 「내각총리대신」으로서 사죄했다. 또 가네마루는 북한ㆍ일 수교교섭을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다짐을 밝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국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일본 외무성 당국자에게 『아직도 그런 냉전적 논리에 입각한 돌대가리발상을 계속하느냐』고 호통쳤다고 한다.
결국 가네마루와 일본정부의 태도를 자세히 보노라면 일본은 두개의 한국사이에서 그들의 국익을 위한 교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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