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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폐해뿐인 '정부 혁신', 법까지 만든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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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혁신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혁신 추진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고 한다. 정부 혁신은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 프로젝트다. 이 정부는 혁신이 성공작이라고 자평하지만 인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도 법으로 다음 정권까지 강제하겠다고 하니 이런 월권도 없다.

법안대로라면 정부는 중장기 혁신 목표와 연도별 계획을 세워야 하고 정부혁신추진회의를 만들어야 한다. 혁신 성과를 국회에 보고하고 민간이 참여하는 평가단을 만드는 등 불필요한 조직과 절차를 둬야 한다. 혁신의 본질은 작은 정부로 가는 것인데 이 정부 내내 큰 정부를 만들어 놓고 무슨 혁신을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정부혁신 때문에 공무원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혁신 점수를 따기 위해 관련 서적 독후감을 내거나 학습성과물을 인터넷에 올리고, 불필요한 업무를 버리기 위한 보고서를 내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업무 시간을 뺏기는 게 당연하다.

또 정부청사에 17억원을 들여 정부혁신 홍보관을 짓고, 혁신 공무원을 포상한다고 중앙부처들이 수천만원어치의 '정부혁신 시계'를 구입해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정부 혁신에 800여억원을 들였지만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정부 행정 효율성은 지난해보다 16단계 떨어졌다. 규제는 99년 7124건에서 올해 8053건으로 늘었다. 국민의 65.5%는 혁신에 대해 잘 모르거나 떠오르는 게 없다고 반응한다.

최근 한 시민단체는 "철학과 비전도 없이 불필요한 업무와 회의, 교육만 늘었다"면서 "과거 정권의 정의사회구현, 제2건국 등을 연상케 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엊그제 지역혁신 박람회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고 자화자찬(自畵自讚)했다.

이 정부 들어 공무원 2만6000명, 인건비 5조원이 늘었다. 이웃 일본은 5월 공무원 5% 감축, 정책금융기관 민영화, 공무원 연금개혁을 담은 행정개혁추진법을 통과시켰다.

정부 혁신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법이 없어 못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