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재택치료 늘텐데…응급환자 늦게 병원행, 3.5배 급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지난 6월 경기도에 사는 투석 환자 40대 여성 A씨가 기침과 호흡곤란 증세로 급히 119에 구조를 요청했다. 9분 만에 구급대원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구급대원이 20곳, 구급상황관리센터가 10곳 병원에 전화를 돌렸지만 이송할 병원이 없었다. 응급실 격리실 부족 등의 이유에서였다. A씨의 증상이 코로나19 증상과 유사해서다. 그렇게 1시간 5분이 흘렀고, A씨 의식이 점차 흐려졌다. 산소 투여로 잘 유지되던 산소 포화도까지 급격히 떨어져 심정지 직전으로 악화했다. A씨는 병원에 가지 못한 채 구급차 내에서 기도 삽관(기구로 막힌 기도를 열어주는 것)을 해야 했다.

A씨 사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응급의료체계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환자가 발열 등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보이면 응급실 음압격리실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과부하로 환자가 제때 이송되지 못하고 병원을 전전하는 일이 흔히 벌어지고 있다. 의료계는 이런 체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위드 코로나로 재택치료 환자가 크게 늘 때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응급실). 뉴스1

서울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응급실). 뉴스1

2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소방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6~2020년) 고열, 호흡곤란, 의식장애 중 하나 이상의 증상을 호소한 환자를 30분 이내 구급 이송한 비율은 2016년 67.6%에서 2020년 41.9%로 감소했다. 반면 60분 이상 지체된 비율은 같은 기간 3.5%에서 12.2%로 3.5배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역별로도 격차가 크다.

60분 이상 소요된 비율은 경북(22.1%)이 가장 높았고 충남(17.9%), 전남(17.6%), 강원(17.3%), 세종(16.3%), 부산(16.0%), 경남(14.8%), 전북(13%), 충북(12.9%), 제주(12.1%), 경기(11.5%), 서울(10.9%) 순이었다. 인천(3.8%), 울산(5.4%), 광주(5.7%), 대구(6.3%), 대전(8.6%) 등은 10% 아래였다. 지난해 환자를 이송하는 데 1시간 이상 걸린 비율이 많이 늘어난 건 코로나 상황과 맞물려 있다. 단순 감기로 열이 나서 응급실을 찾는 환자까지 다 격리실에 수용되다 보니 격리실마다 환자가 넘치고 더 위급한 환자를 수용할 곳이 없는 것이다.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코로나19 이전에만 해도 지역 내 종합병원에서 1차로 조치한 뒤 큰 병원으로 전원 보내는 시스템이 살아있었는데 코로나 이후 셧다운(중단) 됐다”며 “전남 환자가 지역 내에서 치료받지 못해 전북, 충청을 넘어 경기까지 병원을 알아보기도 한다”고 말한다.

고열, 호흡곤란, 의식장애 1개 이상 환자의 구급이송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고열, 호흡곤란, 의식장애 1개 이상 환자의 구급이송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허탁 대한응급학회 이사장(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은 “병원은 많은데 격리실 확보와 PCR(유전자 증폭 검사) 능력에 격차가 있는 게 문제”라며 “큰 병원 적체가 발생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허 이사장은 “현재 발열의 경우 37.4도 이상만 돼도 격리실에 수용해야 하는 등 격리 기준이 엄격한 것도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앞선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코로나 환자는 병원 감염관리실에서 통상 병상을 배정하지만, 심정지 등으로 1분 1초가 급한 환자는 배정 전이라도 일단 응급실에서 처치해야 하는데 격리실이 부족하다 보니 병원마다 여력이 없다”며 “겨울철 폐렴·인플루엔자(독감) 환자까지 늘면 확진자까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코로나 확진자가 크게 늘었을 때 일부 환자는 병상 배정까지 이틀이 걸리기도 했다”며 “이 경우 환자를 일단 응급실 격리실에 수용해야 하는데, 이런 지체를 경험한 병원에서 환자를 더 받기 꺼리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확진자 이송 등을 위한 구급차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뉴시스

확진자 이송 등을 위한 구급차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뉴시스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정부는 코로나 증상이 악화해 전담병원으로 입원하는 것만 생각하는데 당장 입원이 아니어도 재택치료 환자가 칼에 손이 베일 수도 있고 배탈이 날 수도 있고 여러 다양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현재 발열 환자에 백신 부작용자, 자가격리자까지 모두 아프면 응급실로 보내지는데 재택치료자까지 몰리면 감당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재택치료 환자는 시설이 아닌 집에서 2~3차례 비대면으로 모니터링받기 때문에 최근 서대문구에서 심정지가 발생해 사망한 60대 환자처럼 본인이나 의료진이 모르는 사이 급격히 상태가 악화해 위급한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신현영 의원은 “위드코로나 시기에 재택치료에서의 응급 이송은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라며 “구급, 응급이송체계가 제대로 준비되어야만 확진되더라도 경증 환자들이 재택치료를 안심하고 이용하는 환경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환자이든 아니든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지체되지 않아야 위드 코로나가 잘 안착할 것”이라며 “지연된 응급 구급 이송에 대한 확실한 개편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감염병, 비감염병 구분에 따른 의료자원의 효율적 이용이 어려워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