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사,사생활도 사찰/윤 이병 폭로 디스켓 내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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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여자ㆍ재산ㆍ안방밀담까지/김영삼대표 합당후도 계속 사찰 드러나/김대중총재 “사상불투명 위험인물”규정/식당경영ㆍ대형아파트 이사간 것도 수록
보안사는 정치인ㆍ종교인ㆍ교수 등 사찰대상 민간인들의 공적인 정치ㆍ사회활동뿐 아니라 교우관계ㆍ여자문제ㆍ재산관리ㆍ친인척의 대공관계 등 사생활까지 계속 체크해 개인별로 기록을 보관해온 것으로 6일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탈영병 윤석양이병이 보안사에서 갖고 나온 플로피디스크(컴퓨터자료입력철)를 분석한 결과 확인됐다.
그동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보관해 오다 이날 언론계에 입수된 이 자료에 따르면 보안사는 사찰대상자의 집회참석ㆍ강연ㆍ기자회견내용은 물론 호텔코피숍ㆍ택시ㆍ안방 안에서의 대화내용까지 추적하고 있어 국방부당국의 『인명록ㆍ신문ㆍ잡지 등 공개출처에서 발췌한 것』이라는 해명과는 거리가 먼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국방부는 보안사의 개인별 기록카드작성 목적이 「전시나 비상시에 대비,적 또는 불순세력으로부터 보호 및 차단하기위한 것」이라고 했으나 개인의 약점이나 비리를 사전에 파악,필요한 경우 이를 빌미로 협박ㆍ회유하는데 쓰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사고 있다.
보안사는 이 자료의 한 항목으로 되어 있는 개인특성란에 주요사찰대상자를 「위험한 인물」 「기회주의자」 「사상불투명」 「좌익성향 포지자」 등으로 규정해 반정부ㆍ반체제 인물일수록 소상하게 계속 추적했음이 드러났다.
윤이병이 빼내온 30장의 디스켓중 각 분야별 주요인사에 대한 사찰입력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계=박영숙 평민당부총재(카드번호 234번)는 「부는 안병무 민중신학자이며 좌골. 김대중의 절대신임 및 당내 평민연의 핵심요원」으로 기재돼있다.
박찬종 민주당부총재(442번)에 대해서는 「정풍운동 주장 공화당제명. 89년 2월18일 기자회견시 민주적 민간정부 수립을 위한 야권 세대교체 선언」 등 활동상황을 명기했으나 개인특성란은 공란으로 돼있다.
김영삼 민자당대표최고위원(221번)은 직업 직위란에 「전 통일민주당총재ㆍ민자당대표위원」이라고 명기한 뒤 개인특성란은 비어있고 주요동향은 지난 4월9일 대표최고위원 취임때까지 입력돼있어 3당합당 후에도 계속 사찰대상이 되고 있음을 입증.
김대중 평민당총재(283번)는 개인특성란에 「사상이 불투명하며 권모술수와 기만으로 정치생활 30년을 일관한 신뢰성이 없는 위험인물」로 규정해 놓았다.
김영삼대표나 김대중총재의 카드는 주로 정치활동 등 공적인 것만 기록돼 있고 여자ㆍ금전ㆍ대인접촉 등 사생활에 관한 부분은 없었다. 다만 김총재의 경우 해방직후 한때 활동했던 대공부문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김총재의 장남 홍일씨의 카드(235번)에는 79년이후 금전거래ㆍ부업경영ㆍ이사ㆍ각계인사 접촉사실 등이 소상히 기록돼있다.
정모 평민의원(280번)은 「88년10월 처와 가정불화로 별거,이름미상의 20대여자와 불륜관계」라고 기록돼 있다.
강모 평민의원(338번)은 「백부 강인섭이 6ㆍ25당시 부락인민위 서기장판정위원으로 부역하다 자수. 7촌 숙 강희영은 6ㆍ25때 괴뢰의용군에 입대 포로로 생포된뒤 거제포로 수용소에서 월북한자」로 명기돼 있고,유모 평민의원(390번)은 「아버지가 공산주의사상 포지자로 6ㆍ25당시 광주인민위원장으로 있다가 형 2명을 대동해 월북 어머니도 여맹위원장을 지냄」으로 수록돼있다.
손모 평민의원(391번)은 「지역감정을 특히 내세우는 인물로 기회주의적이라는 평」으로 김모 평민의원(386번)은 「88년12월 중앙당으로부터 호남출신 건달 2백명을 배정받아 뒷바라지 하고 있으나 이들이 각종 사고ㆍ물의를 야기하고있어 내심 고심중」이라고 적혀 있다.
◇종교계=일반에 잘 알려져있는 인물일수록 활동상황이 상세히 수록되어 있으며 공개된 일상적 일 외에도 사무실이전과 관련해 계약금을 지급했다는 등의 자질구레한 사항도 수록되어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공동의장인 김승훈신부의 경우 「시국비판자로서 근로자층에 영향력이 있으며 재야종교단체의 리더」 「문제종교인으로 순환대상자 B급」으로 성향이 파악되어있으며 「남북한간의 통일론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체제연합이나 연방제나 뭐가 다른가」(『사회와 사상』지 89년11월호) 등의 발언내용이 수록. 「교계 급진세의 대부격 인물」로 규정되어 있는 김관석목사에 대해서는 「88년 9월13일 남북한교회 교류자금 모금,급진통일논의 주변확산획책」 「89년 3월20일 미국ㆍ서독ㆍ캐나다 등에서의 불순 외원금반입 주선 등 급진세 활동자금 조달책 역할담당」 등의 내용이 주요동향 가운데 일부로 파악되어 있다.
◇학계=대부분 대학교수들인 학계인사들의 사찰내용은 이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감안한듯 주로 신문ㆍ잡지의 기고문,대중강연내용과 대정부비판활동 등에 집중돼있으나 일상활동ㆍ개인적인 대화 또는 회식석상의 발언 등도 포함돼있다.
민교협공동의장인 서울대 김진균교수의 경우 개인특성란에 「외곬적 성격」이라고 기재되어 있었으며 주요동향란에는 「자주ㆍ평화ㆍ민족대단결의 원칙이 독점자본의 것만으로 규정될 경우 평화는 민족구성원 전체의 것으로 될수 없다」(『사회와 사상』지 89년8월호)는 등 각종 기고문의 주요내용이 발췌되어 있다.
김찬국 연세대부총장의 경우는 「87년 예비군에 대한 정신훈화 요청을 거절」 「88년11월 동료교수와 대화시 10년동안 학교를 떠나있어 고생이 많았다고 발언」 등의 세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으며 「대정부 언동은 자제하는 편이나 심정적으로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고 평가.
「공사주의사상 포지자」로 규정해놓은 김낙중 전고대교수의 경우 『힘있는 사람은 통일을 원치않고 힘없는 민중만이 통일을 바라고 있는데 우리 민중이 한목소리로 통일투쟁을 전개한다면 반드시 성사될 것』(89년 6월29일 부산민협세미나)이라는 발언을 중요시,기록해놓았다.
◇기타=「반미 소설가」로 분류된 윤정모씨의 경우 『84년 1월1일 택시에 승차하여 운전사와 대화도중 「전대통령이 돈먹고 차를 증차시켜 현대자동차 배불리고 합승행위 못하게해 길이 막힌다」 「남편이 함께 일하지만 살기어렵다」는 등의 언동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민련국제협력국장인 김현장씨에 대해서는 『89년 2월26일 북괴고무찬양 및 좌경의식화 불법집회를 한바 있으며,현재 한겨레신문 원주지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김영애(57년 1월20일 출생)와 조선대 자연대 강당앞 광장에서 「민중결혼식」을 거행』 등의 사생활기록과 함께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과 관련된 검찰 및 안기부의 수사과정,법원의 재판과정 등이 연도ㆍ날짜별로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이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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