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닫을 뻔한 시골 상업고 잘나가는 '애니고' 됐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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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애니메이션고 학생들이 서천군 한산면 한산보건소 담장에 벽화를 그리고 있다. 김성태 프리랜서

6일 오전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 한산보건소 담장. 인근 충남애니메이션고 전교생 197명이 붓과 팔레트를 들고 담장에 그림을 그리느라 분주하다. 선화공주 캐릭터, 마을 전원풍경 등 학생들이 붓을 놀릴 때마다 우중충했던 담장은 산뜻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최근 2개월간 면사무소.보건소 등 주요 건물 3곳의 벽에 그림을 그렸다. 벽화 그리기는 학생들 사업의 일부다. 학교 측은 면사무소로부터 1000만원을 받고 담장에 그림을 그렸다. 학생들은 자치단체나 기업 등과 손잡고 사업을 펼쳐 올해에만 215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서천군을 소개하는 3차원 입체 애니메이션.게임 캐릭터 등 학생들이 해온 사업은 다양하다.

폐교 직전이었던 시골 상업계 고교가 만화와 애니메이션 학교로 변신, 재기에 성공했다. 1971년 설립된 이 학교는 이농 등으로 학생 수가 해마다 줄면서 2002년에는 입학생이 20여 명에 불과해 충남교육청이 폐교를 적극 검토했었다.

그러자 주민들은 "경제기반이 취약한 농촌에 학교마저 사라지면 희망이 없어진다"며 교장실로 찾아가 "폐교만은 막아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임승훈(55) 교장은 "교사들이 전국의 실업계 고교의 교육실태를 파악한 뒤 만화.애니메이션 분야가 유망하다고 판단해 과감히 선택했다"고 말했다.

◆ 실습 위주의 교육=충남애니메이션고는 2003년부터 만화창작과.애니메이션과 등 2개 과를 신설하고 전국 중학교에 홍보 전단을 배포했다. 교사들이 중학교를 찾아가 직접 설명회도 했다.

학과 성격에 맞게 수업내용도 전면 개편했다. 만화.애니메이션 분야 7개 실습실을 만들었다. 3차원 애니메이션 디자인실, 극장용 특수효과 편집실 등 수준급 시설을 갖췄다. 학습은 애니메이션 제작, 만화 창작, 컴퓨터그래픽 등 70% 이상이 실습이다. 특히 전체 수업의 20~30%는 외부 강사에 맡겼다. 대학 교수, 영화감독, 영화 제작사 직원, 개그맨(이원승) 등이 연중 학교를 찾아 지도한다.

지난해에는 재학생 대부분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도 지었다. 그 결과 모집 첫해부터 경남.전남 등 전국에서 지원자가 몰려 최근 3년간 최고 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 사업.진학 실적도 눈부셔=2004년부터 학생들은 'SACHAE(만화동아리)' 'TAF(애니메이션동아리)' 등 기업동아리 11개를 만들었다. 기업동아리 매출실적은 2004년 325만원에서 지난해 577만원, 올해는 2150만원으로 급증했다. 매출액 가운데 50%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배분되고 나머지는 학교 운영 자금 등으로 쓰인다.

졸업생들은 대부분 전공을 살려 진학한다. 내년 2월 졸업예정인 66명 가운데 41명(4년제 31명)은 이미 진학이 확정됐다. 만화로 유명한 상명대를 비롯, 한서대.서울예술전문학교 등이다.

3학년 이슬기(18)양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좋은 시설을 갖춘 학교에서 학비 걱정 없이 배웠다"며 "일본으로 유학 가 더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천=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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