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냉전 반세기」 끝낸 외교 결실/「한소 수교」 의의와 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달말 서울서 경협 실무접촉/북한의 미ㆍ일 접근 등 대비 필요
1990년 9월30일은 한국 외교사에 큰 획을 긋는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
해방 이후 한반도를 분단과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운명짓게 만들었던 장본인중의 하나이자 북한의 최대 후원세력이었던 소련과 국교를 맺은 것 자체가 바로 역사적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은 분단과 이데올로기 때문에 세계 속에서 온전한 한 나라로 대접받지 못하는 반쪽 외교를 해왔다.
우리를 그토록 압박했던 이데올로기의 반대쪽 종주국 소련과 수교한 이상 한국은 이제 탈 이데올로기의 새로운 외교 지평을 연 것이다. 근 반세기만의 외교적 숙제가 해답을 얻은 셈이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북방외교가 마무리단계에 들어 섰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동구의 여러나라와는 이미 국교정상화를 했고 소련과 수교함으로써 마지막 남은 관문인 중국과의 수교도 한층 전망이 밝아졌다.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소 정상이 국교수립원칙에 합의했지만 수교시기가 이토록 빨리 올줄은 몰랐다.
우리측이 잘해야 내년초쯤으로 기대했던 수교가 예상보다 앞당겨진 것은 동북아에 새로운 역할을 확대해야겠다는 소련의 외교목표와 우리의 적극성이 부합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국교정상화 교섭을 하면서 소련이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은 북한의 입장이었다.
소련은 한국과의 수교가 기존 북한과의 관계를 해치지 않는 범위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했고,셰바르드나제 장관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오랜세월 동맹관계를 유지해 왔고 이러한 선린ㆍ동맹관계에는 계속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공동코뮤니케에서도 『이번 조치로 각자의 제3국과의 관계에 결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임을 짚고 넘어간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이런 점은 통일문제나 유엔 가입문제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셰바르드나제 장관은 통일문제에 대해 『고상한 논리적 귀결이 올 것』이라고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유엔 가입문제만 하더라도 우리는 『보편성의 원칙에 의해 한국이 마땅히 가입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으나 소련은 『남북한이 원만히 합의를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어느쪽의 편을 들기를 거부해 외견상 한소 수교가 북한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려 노력했다.
이번 회담에서는 또 양국 정상간의 교환방문 원칙을 확인하고 그 전단계로 양국 외무장관이 상호 방문키로 결정했는 데 이는 겉으로의 표현은 어떻든 양국이 이미 제어하기 힘든 속도로 접근해 가고 있음을 실증하는 것이다.
관심이 되고 있는 한소간의 경협문제는 원칙적인 차원에서 거론만 하고 넘어갔다. 양측은 10월중 서울에서 열릴 제2차 한소 정부교섭단의 접촉에 희망을 표시하고 경협을 위한 각종 협정체결 등 제도적 장치마련을 서두르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 회담이 우리에게 외교적으로 큰 성과이기는 하나 국내적으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몇가지 사안이 있다.
우선 한소의 수교를 기화로 미일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할 경우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일본의 경우 한소의 수교를 일ㆍ북한 관계개선의 청신호로 받아들이고 이를 추진하고 있는 데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아직 확실한 기준이나 절차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북한의 우방인 소련과 수교를 하면서 우리의 우방이 북한과 수교하는 것을 무조건 막을 수 없고 소련과 수교한 마당에 그동안 이데올로기를 근간으로 작성되었던 외교시책은 당연히 전면적인 재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한소 수교가 결코 장미빛 미래를 약속하지 않으며 잘못하면 한반도문제가 더욱더 주변 4강의 영향하에 놓일 수도 있다는 점을 정부와 국민이 냉정히 바라보는 지혜가 더욱 절실해지는 시점이다.<뉴욕=문창극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