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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불러온 랜선 차례·배달 상차림…명절 풍경 확 달라졌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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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호 08면

[SPECIAL REPORT]
코로나가 바꾼 추석

비대면 명절

인천가족공원 직원들이 시연하는 온라인 차례 모습. [뉴스1]

인천가족공원 직원들이 시연하는 온라인 차례 모습. [뉴스1]

달라진 방역수칙에 따라 올 추석에는 연휴를 포함한 일주일(9월 17~23일) 동안 가정 내 가족 모임 인원 수가 제한된다. 접종 완료자 포함 최대 8명까지, 미접종자와 1차 접종자의 경우엔 최대 4명까지만 허용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로 가정 내 모이는 인원에 대한 제한이 없던 지난 추석과 달라진 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1년 넘게 지속하는 가운데 사람들의 명절을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가족과는 ‘거리’를 두고, 명절 인사는 ‘비대면’을 원칙으로, 상차림은 ‘간소화’된 모습이다.

본가가 경남 김해인 직장인 명준환(37)씨는 지난 설에 이어 추석에도 서울에서 홀로 보낼 생각이다. 얼마 전 1차 백신 접종을 완료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 고향에 가기엔 부담스러워서다. 명씨는 “장손이라 친인척들이 모이면 제 안부를 묻겠지만, 부모님도 이 시국에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올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셨다”며 “그래도 서운해할 부모님을 뵈러 2차 접종까지 마치면 따로 휴가를 내고 고향에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매년 어머니를 도와 20가지가 넘는 명절 음식을 준비하던 강진아(가명·33)씨는 온오프라인 병행 차례상을 제안했다. 지난 설,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는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의 온라인 추모·성묘 서비스를 접한 게 계기가 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때 이 서비스를 이용한 인원은 23만552명, 올 설에는 1만 여 명 더 늘어난 24만8732명에 달했다. 강씨는 “어머니와 단둘이 차례 음식을 준비하는 게 힘들어 아버지에게 음식 가짓수를 줄이거나 남자들도 함께 장만하자고 몇 년간 말했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며 “지난 명절 때 코로나19로 친척들이 오지 않아 차리는 음식의 양을 줄였지만 이마저도 과하다고 생각해 차후엔 온라인 차례상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부모님과 의논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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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 같은 움직임은 코로나19 확산 전부터 시작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간소하게 차례를 지내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 2018년부터 ‘간소화된 차례상’ 차림 비용을 별도로 발표하고 있다. 전통 차례상은 28개 품목에 드는 비용을 기준으로 한 반면 간소화된 차례상에는 18개 품목만 반영한다. 지난해 추석 차례상 차림 비용은 전통시장 평균 24만4000원, 대형유통업체 평균 34만2000원이었다. 반면 간소화된 차례상을 차리는 데는 전통시장과 대형유통업체 기준 각각 10만원, 13만6000원이 들었다. 전통 차례상 비용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셈이다.

지자체는 온라인 서비스 확충에 발 벗고 나섰다. 전남 완도군은 지난 설, 고향을 방문하지 못하는 자녀를 대신해 읍면장이 선물을 전달하고, 영상통화를 지원하는 서비스로 인기를 끌었다. 완도군 관계자는 “이를 통해 481명의 향우들이 영상통화로 부모에게 안부를 전했다”며 “반응이 좋아 오는 추석에도 벌초 대행, 온라인 성묘 등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용돈도 온라인 봉투로 전달하는 분위기다. 카카오페이는 연휴를 앞두고 ‘행복한가위’와 ‘한가위용돈’ 송금봉투 2종을 추가했다고 6일 밝혔다. 수신자가 봉투를 열면 송편과 감이 쏟아지는 효과가 나타나는 ‘추석 맞춤형’ 봉투다. 카카오페이는 “지난 설 연휴 카카오페이 송금 봉투 사용률은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설 연휴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며 “코로나19 이후 비대면으로 용돈과 안부를 전하는 방식이 새로운 명절 문화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차례상 배달

내맘다믄의 제사 음식 패키지. [사진 내맘다믄]

내맘다믄의 제사 음식 패키지. [사진 내맘다믄]

지난 1월, 결혼 후 처음으로 시가 제사에 참여하게 된 김민정(가명·36)씨는 남편과 상의해 한 제사상 배달업체를 이용했다. 제사 당일, 조리와 배송 과정을 실시간 문자로 전달 받은데 이어 늦은 오후 집 앞으로 큰 아이스박스를 배송받았다. 상자 내부엔 제사에 올릴 음식과 제수를 비롯해 상차림 법, 음식 보관법 등이 적힌 안내문이 들어 있었다.

지난 5일 충남 당진시 거리에 고향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충남 당진시 거리에 고향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친인척과는 영상통화로 제사 과정을 공유한 김씨는 식구들에게 상차림에 대해 칭찬을 들었다. 김씨는 “어르신들은 제사상을 손수 차려야 정성이 들어간 거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막상 배달 음식을 드셔보고선 정갈하고 맛있게 차려졌다고 좋아하셨다”며 “직접 장을 봐서 준비하면 요리하는 수고로움은 물론이고, 음식을 과하게 하거나 식재료 낭비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배달이 여러가지로 합리적이라 생각해 앞으로도 꾸준히 이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사상도 배달시대다.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제사음식 전문 조리업체만 전국 100여 곳에 달한다. 기제사·차례 등 용도별로 구분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일부 업체는 경상도·전라도·제주도 등 각 지역에 맞는 제사상 상품을 내세우기도 한다. 음식 가짓수와 양에 따라 가격대는 천차만별이지만 20만~30만원대가 주를 이룬다. 20년 넘게 제사상·고사상 등 전통상 차림을 조리·배달하는 ‘다례원’ 관계자는 “사업 초기에는 주로 고사상 등 큰 행사 수요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2~3인분 기준의 제사상과 차례상 주문이 대부분”이라며 “외식이나 배달음식이 일상화됐듯 제사 음식을 전문업체에 맡기는 데 대한 부담감도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제사·차례상차림 전문 조리업체인 ‘내맘다믄’은 추석 연휴를 한 달여 앞둔 지난달 21일부터 차례상 주문을 받았다. 25만9000원 패키지에는 탕국과 송편, 소고기산적을 비롯해 각종 전과 나물, 과일 등이 들었다. 술과 양초, 향과 같은 물품 등도 모두 포함돼 고객이 따로 준비할 것이 없다는 게 업체 측의 설명이다. 차례상 예약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모두 마감됐다. 지난 설 차례상도 1차 주문이 단 3분 만에 매진될 정도로 인기였다. 제사상의 경우 음식량과 가짓수에 따라 8만9000원부터 49만9000원까지 가격대가 다양한데 4~5인 가족이 넉넉히 먹을 수 있는 21만9000원 상품의 인기가 높다. 주문 고객의 연령대와 성별도 다양하다. 젊은 층에 비해 50대 이상 남자 고객의 주문율이 높은 편이다.

김영롱(44) 내맘다믄 대표는 “대개 음식에 서툰 젊은 며느리들이 주문할 거라 여기는데 오히려 제주(제사를 주관하는 사람)가 가정의 평화를 위해 주문하거나 배우자를 일찍 여의고 손수 상 차리기가 어려운 어르신의 주문이 주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9년 창업 당시 제사 지내는 집이 줄어드는데 사업성이 있겠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제사가 줄어도 배달 음식을 이용하는 고객이 그만큼 늘어난데다 재주문율도 높아 1년 내내 쉴 틈이 없다”고 덧붙였다.

업계 명암

지난해 추석 석담 이윤우 선생의 16대 종손 이병구씨가 작은 딸 가족과 영상 통화를 하고 있다. [사진 ·칠곡군]

지난해 추석 석담 이윤우 선생의 16대 종손 이병구씨가 작은 딸 가족과 영상 통화를 하고 있다. [사진 ·칠곡군]

정부가 11조원 규모의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재난지원금)’을 재래시장에서 사용하도록 독려하고 있지만 그 효과에 대해선 시장 상인들조차 고개를 젓는다.

지난 8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청과물 코너에서 만난 한 상인은 “요즘 식구가 모이기 힘들고, 과일값도 많이 오르다보니 제사용으로 사더라도 박스 구매를 부담스러워하는 손님이 대부분”이라며 “추석을 앞두고 재난지원금이 나온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나 예년과 달리 시장에 명절 특수가 사라진 지 오래라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난지원금 이용이 제한된 대형마트도 분위기가 다르지 않다. 최근 명절 연휴 기간 매출이 다소 상승하긴 했지만 그 증가폭이 과거와는 차이가 난다는 입장이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연휴 직전 2주간 매출은 전년 대비 46.8% 증가했다. 지난 설 연휴 직전엔 추석보다 소폭 늘어난 55.5% 증가세를 보였다. 육가공식품·과일·생활용품으로 구성한 선물세트 판매가 늘어 전체 매출이 늘긴 했지만 명절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마트를 찾는 발길은 오히려 줄었다고 분석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과거엔 명절 2~3일 전 장을 보는 고객이 많아 이때 매출이 평소 2배 이상 증가하는 게 예사였지만 요즘엔 선물세트 사전 예약 행사가 명절 매출의 척도가 됐다”며 “그간 명절 음식에 밀려 외면받던 밀키트나 간편식 등의 판매량이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호텔업계는 명절을 앞두고 ‘추(秋)캉스족’ 모시기에 한창이다.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는 호텔에서 영화를 보고, CGV의 팝콘과 수제 맥주를 즐길 수 있는 상품을 선보였다. 객실 스마트TV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즐길 수 있게 했다.

코리아나호텔은 추석 연휴 고향을 방문하지 못한 가족 단위 고객을 위해 호텔 내부 연회장에 차례상을 차려준다. 호텔 관계자는 “명절에 호텔에 머물면서 간소하게 차례를 지내고 싶은 고객을 위한 상품”이라며 “문의 전화가 하루에 수십여 건에 이를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고 말했다.

주방장이 만든 명절 차례상을 테이크아웃 형태로 판매·배달하는 호텔도 많다.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은 지난해 추석에 이어 올해도 명절 음식 테이크아웃 서비스를 출시했다. 전화나 인터넷으로 예약하면 직접 방문하거나 퀵서비스 등을 통해 수령할 수 있게 했다. 부산롯데호텔은 특급호텔 최초로 추석 차례상 음식 세트를 선보였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과거 추석 패키지는 주로 30~40대 미혼 여성을 대상으로 했지만 코로나19 이후 해외여행이 어려워지면서 어린 자녀를 둔 가족이나 노부부 등 이용층이 다양해졌다”며 “호캉스족의 새로운 수요를 잡기 위한 업계의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추석 연휴 국립묘지 11곳 참배 금지, 온라인 추모·성묘 서비스

국립묘지 의전단이 고인에게 헌화 및 참배하는 모습을 찍어 전송하는 국가보훈처의 ‘헌화·참배 사진 전송 서비스’. [사진 국가보훈처]

국립묘지 의전단이 고인에게 헌화 및 참배하는 모습을 찍어 전송하는 국가보훈처의 ‘헌화·참배 사진 전송 서비스’. [사진 국가보훈처]

오는 추석 연휴(18일부터 22일)동안 현충원·호국원 등 전국 11개 국립묘지는 온라인 참배로 대체 운영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위험을 막기 위한 이번 조치는 국립묘지의 야외 묘역과 봉안당, 위패봉안소의 출입을 통제하고, 국립묘지로의 이장도 중단한다. 안장되신 분의 기일 등 불가피한 경우에만 사전예약을 통해 제한적으로 야외묘역을 이용할 수 있다.

국가보훈처는 연휴 기간 현장 참배가 어려운 유족들을 위해 오는 14일부터 ‘온라인 참배 서비스’를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 15일부터는 가상으로 상을 차릴 수 있는 온라인 차례상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오는 17일까지 국립묘지에 전화로 신청(국립서울현충원은 카카오톡으로 신청)하면 국립묘지 의전단이 고인에게 헌화·참배하는 사진을 찍어 전송해주는 ‘헌화·참배 전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각 국립묘지 사이트의 ‘사이버 추모관’에서는 사이버 참배, 추모의 글쓰기가 가능하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국립묘지 외 일반 봉안시설·추모공원 성묘객은 보건복지부가 실시하는 온라인 추모·성묘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지난해 추석부터 운영된 이 서비스는 지금까지 47만명이 넘는 성묘객을 기록했다. 복지부가 운영하는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에 접속하면 안치 시설 이용 여부와 관계없이 온라인 추모관을 개설해 고인을 추모할 수 있다. 추모관에서는 차례상 꾸미기, 헌화·분향하기, 지방 쓰기 등 기본 성묘절차 이용과 추모 글, 음성 메시지 녹음 등을 등록해 가족, 친지 간 공유가 가능하다. 장사시설을 이용하는 경우 이달 말(30일)까지 안치 사진을 신청하면 고인의 실제 안치 모습을 받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 온라인 추모·성묘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sky.15774129.go.kr)’에 접속해 추모관을 개설해야 한다. 영정사진 등록, 차례상 꾸미기, 지방 쓰기, 추모 메시지 작성하기 등을 마친 뒤 소셜미디어(SNS)로 가족 간 공유도 가능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코로나19 감염·확산방지를 위하여 ‘온라인 추모·성묘서비스’ 이용을 통해 행복하고 안전한 추석 명절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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