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간소화” vs MZ세대 “없애자”…공감대 먼저

중앙선데이

입력 2021.09.11 00:20

업데이트 2021.09.11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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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호 11면

[SPECIAL REPORT]
코로나가 바꾼 추석

그동안 제사와 명절 차례는 계륵이었다. 제대로 격식을 갖추자니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고, 외면하자니 마음에 걸리는 행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제사의 시간, 장소, 방식을 편리하게 바꾸거나 감당할 만한 수준으로 간소화하는 다양한 변화가 점차 확산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제사나 차례를 편리하고 간소하게 치르는 양상이 대세가 되면서 이른바 ‘명절증후군’의 스트레스도 완화되고 있다. 최근 3040세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명절증후군을 겪지 않는다고 대답한 사람이 56.2%였으며, 여성들도 44.8%에 달했다. 힘든 노동의 시간이었던 제사나 명절이 즐거운 만남의 장으로 전환되는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다.

“부부가 각자 가족과” MZ세대 50% 동의

사실 이러한 변화는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100년 이상 진행된 사회의 근대화와 의례문화의 세속화의 결실이다. 국가 신도(神道)를 앞세운 일제는 조선의 제사를 타율적으로 세속화됐다. 1934년 조선총독부는 ‘전통적인 가례(家禮)의 수행이 무리한 대출로 인해 경제적 파산을 감수할 만큼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명분으로 전통적인 관혼상제를 대폭 축소하고 간소화하는 ‘의례준칙’을 반포했다. 신주를 지방이나 영정사진으로 대체하고 기제사의 범위를 4대에서 2대 봉사로 한정했으며, 1년에 수십번에 이르는 제사를 설날과 추석의 명절 제사와 기제사로 축소했다. 이런 경향은 해방 후에도 지속했다. 특히 ‘허례허식 타파’라는 명분 아래 ‘국민표준의례’, ‘가정의례준칙’, ‘건전가정의례준칙’ 을 거치면서 제사의 의미에 대한 성찰보다는 경제적 효율성과 편리성 추구가 가속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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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20세기 한국사회에서 근대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대가족제도와 유교 문화적 전통이 강했던 세대는 조상공경과 가족 유대의 정신을 담은 제사의 형식과 실천을 강조했다.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핵가족 중심으로 가족의 구성이 바뀌는 가운데 성장한 베이비붐세대에 이르러 의례문화의 근대적 합리화는 조상공경의 정신과 분리하여 의례적 형식을 간소화하는 양상이 심화했다. 21세기를 주도할 MZ세대에서는 이미 유명무실해져 버린 제사를 폐지하자는 방향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최근의 제사 인식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제사 폐지에 대한 의견이 과반에 가깝다. ‘제사가 필요 없다’는 의견은 2000년 9월 보건사회연구원의 ‘제례와 성묘의 실태 및 의식조사’에서는 7.3%에 불과했으나 2021년 5월에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제4차 가족실태 조사통계 조사’ 에서는 45.6%에 이르렀다. 제사를 지속해야 한다는 의견일 경우에도 제사나 차례를 간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대세를 이룬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제사 존속 여부를 두고 세대 간 차이도 뚜렷하다. 50대 이상의 베이비붐 세대에서는 전체의 3분의1 정도가 제사 폐지에 동의하는 반면, X세대가 주축을 이루는 40대는 전체의 2분의1 정도가 동의했으며, 아직 40대에 진입하기 이전의 MZ세대는 반수 이상 3분의2에 근접한 정도로 동의했다. 심지어 부부가 각자의 가족과 명절을 보내는 문제에 대해서도 베이비붐 세대까지 13%에서 23% 정도지만, MZ세대는 50%에 가까운 동의를 나타냈다.

이러한 양상은 안정적인 핵가족 중심이었던 베이비붐세대와 달리 1인 가구가 늘어가는 추세로 인해 가족의 형태가 변화하는 양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개성적 취향을 중시하고 워라밸을 추구하는 MZ세대지만 현실적으로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3포세대’를 넘어서서 주택과 경력, 개인적 희망·취미와 인간관계, 건강과 외모까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면서 더는 제사와 차례의 기반이 되는 안정적인 가족을 형성하고 유지할 여력을 갖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제사나 차례의 폐지가 현실화되기 쉬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베이비붐 세대가 ‘제사를 지속하되 어떻게 간소화할 것인가’ 하는 방식을 고민했던 것과는 달리, MZ세대는 ‘제사가 꼭 필요한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그 결과 신세대가 아예 제사를 폐기하거나 가족모임을 비롯한 다른 형식으로 대체하는 양상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상호소통·분담으로 가족 갈등 넘어서야

따라서 가족 사이에서도 다양한 방식의 의례가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세대간 접근자세와 형식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명절에 양가(兩家)에 모두 갈 수 없는 부부의 경우 남편 쪽 한번, 부인 쪽 한번 번갈아 방문하고 전화로 안부를 묻는 방식 등을 함께 상의하는 과정을 통해 육체적 고단함과 심리적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세대간 인식 차이를 극복하고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제사나 차례에 참여하도록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제사나 차례는 그리운 가족을 함께 만나서 서로 진솔한 대화를 통해 의미를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제사와 차례의 방식은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원활한 대화와 공감적 소통의 산물일 때라야, 제사와 차례는 가족의 끈끈한 정을 확인하고 사회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치유하고 정서적 회복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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