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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앞서 아내 죽인 그놈..."1m 장검 몇번이나 휘둘렀었다" [이슈추적]

중앙일보

입력

“(남편이) 위치추적 앱을 깔게 하고 녹음기를 거실, 안방, 아이들 방에까지 설치했대요…장검을 몇 번씩 꺼내서 죽인다고 위협했대요.”

이혼 소송 중인 남편이 ‘1m 장검’을 휘둘러 사망한 A씨의 친구라고 주장하는 이가 6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다. A씨는 지난 2일 서울 강서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남편 장모(49·구속)씨의 흉기에 숨졌다.

가정폭력 일러스트. 중앙포토

가정폭력 일러스트. 중앙포토

A씨는 남편에게 살해당하기 전부터 잦은 가정폭력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으나 경찰에는 가정폭력 신고는 접수된 적이 없다고 한다. A씨 친구는 글에서 “그 사람(장씨) 그림자만 봐도 무서워해서 길을 다닐 때도 계속 두리번거리고 누가 따라오는지 잘 봐달라고 했다”고 적었다. A씨는 이혼 소송을 걸었고 지난 5월부터 별거를 시작했다. 법원에 남편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을 신청했지만, 법원의 판단을 앞둔 상황에서 변을 당했다. A씨가 가정폭력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있는 정황도 그가 숨진 이후에서야 경찰에서 퍼즐이 맞춰지고 있다.

[이슈추적]

별거 후에도 찾아온 ‘그놈’, 장인 앞에서 범행

A씨는 이혼을 원치 않았던 남편에게 별거 이후에도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남편 장씨는 지난달 13일 동생 집에 머물고 있던 A씨를 찾아갔으나 A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제지를 받고 돌아갔다.

그러던 장씨가 A씨에게 ‘자녀들 옷을 찾아가라’고 했고 2일 부친과 함께 장씨의 집을 찾은 A씨는 이혼 소송 취소를 두고 장씨와 언쟁을 벌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흥분한 장씨가 장인이 보는 앞에서 장검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현장에서 검거된 장씨는 경찰 조사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한다.

가정폭력 7배로 늘어도 처벌은 솜방망이

경찰. 중앙포토

경찰. 중앙포토

남편에 대한 접근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비관적이다. 가정폭력 사건은 급증했지만, 솜방망이 처벌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가정폭력사건 검거 건수는 5만277건으로 2011년(6848건)보다 7배 이상으로 늘었다.

반면,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이 지난 2019년부터 올 6월까지 수사한 가정폭력사건 11만5642건 중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피의자는 31%(3만6038명) 정도다. 나머지는 불기소나 상담·사회봉사 등 피의자의 전과기록이 남지 않는 보호처분에 그치고 있다. 모든 가정폭력 사건이 처벌돼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건 속에 A씨와 같은 비극이 숨어 있을 수 있다.

구실 못하는 피해자 보호책

지난 7월 제주에서 전 애인의 중학생 아들을 결박해 살해한 혐의를 받는 백광석(48)은 앞서 경찰에게 접근금지 통보를 받은 상태였지만, 피해자의 집 옥상에 침입하는 등 범행 기회를 엿봤다. 경찰은 피해자의 아들이 살해된 이후에야 주거침입 등의 추가범죄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올 1월 시행된 개정 가정폭력처벌법은 접근금지 등 임시조치를 위반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구류에 처하도록 이전(최고 과태료 500만원)보다 강화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 “반의사불벌 조항 없애야” 

가정폭력에 대해 현행법이 ‘반의사불벌’로 규정하고 있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가정폭력의 특성상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려는 취지가 오히려 수사기관과 법원의 엄벌 의지를 꺾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반의사불벌 조항이 있는 이상 경찰은 피해자의 의사가 언제 바뀔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건에 깊게 연루되고 싶어하지 않아 하고, 소극적인 자세로 나서게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피해자의 안전을 우선시하려면 가정폭력처벌법에 있는 반의사불벌 조항을 없애는 걸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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