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메신저" 11년째|남 서울우체국 집배원 이영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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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민속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친지들에게 정이 담긴 선물이나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들이 진땀을 흘리고 있다.
경력 11년째의 여성집배원 이영희씨(40)는 요즘 행낭소포가 평소보다 무려 4∼6배 더 늘어나는 바람에 매일 발걸음을 재촉하며 일에 묻혀 지낸다.
체신부의 기능직 9급 공무원으로 남 서울우체국(국장 이영우)소속인 이씨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신발이 닳도록 돌아다니며 우편물을 배달해야 하는 담당구역은 봉천1동의 약 4천 가구.
『명절 때나 연말에 우편으로 보내는 선물을 전달하다 보면 세태의 변화를 나름대로 느끼게 되지요.』
10년 이상을「소식을 물어다 주는 전달자」의 역할에 묵묵히 충실해 온 이씨는『백화점등 기업홍보 물이 대형 우편물로 변하는데 반해 선물의 크기가 예전보다 줄어들고 호화판선물도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그 동안의 추세를 설명했다. 그는『특히 수해를 심하게 겪은 때문인지 올해엔 비교적 값싼 백화점물건이나 체신부·농협에서 판매하는 특산물 등 이 많은 편인 것 같다』고 했다.
가을이 결실의 계절인 만큼 밤·대추·고추가 선물되는 경우도 많고 이밖에 멸치·오징어 등이 산지에서 직접 올라오는 등 아직까지 정을 듬뿍 담은 선물이 적지 않다는 것.
이씨의 일은 일반공무원의 경우보다 2시간이나 더 이른 오전 7시쯤부터 매일 시작된다.
우체국에 가면 밤새 도착돼 수북히 쌓인 우편물을 동료들과 함께 코스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약3시간에 걸쳐 마친 뒤에야 비로소 소포·편지 등을 챙겨 문을 나선다. 이때부터 이씨가 오후 8시30분쯤까지 우편물을 짊어진 채 배달하면서 걷는 거리는 줄잡아 24km이상에 달한다.
보통 도시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목표로 삼지만 달성하기 쉽지 않은「1만 보 걷기 운동」의 경우 기껏해야 약 7.6km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대장정」에 견줄 만큼 먼 거리다. 이 때문에 집배원업무(하루 1인당 배달중량 약 1백㎏)는 남자들에게도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다.
이와 같이 힘든 일을 별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는 것은 이씨가 천부적으로 튼튼한 다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난 86년 각 부처대항 마라톤대회에 체신부대표로 참가, 국방부대표로 나온 젊은 여군에 뒤지긴 했지만 2위로 입상, 체신부에 영광을 안겨 주었으며 국민학교 때는 전국체전 1백m 종목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바도 있다.
이처럼「건각」을 자랑하는 이씨지만『날로 늘어나는 우편물과 이에 따른 근무조건의 악화로 예전보다 훨씬 힘들다』며 집배원들의 고충을 털어 놨다.
4년 반의 임시직을 거쳐 지난 83년 8월 정식직원이 된 이씨는『근무초창기보다 배달물량과 무게가 2∼5배 정도씩 늘어난 것 같으나 인원보충은 별로 많지 않은 편』이라며 『정부가 보다 더 관심을 쏟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겨울엔 눈길에 미끄러지기 일쑤고 개에 두 차례 물려 고생하는가 하면 사람들이 자주 이사가고/찾기 힘든 산동네를 헤매는 등 고충도 많았다』고 회상한 이씨는『그러나 합격통지, 외국 나간 남편의 편지 등 좋은 소식을 전할 때나 사망통지 등 나쁜 소식을 전할 때마다 주민들과 기쁨·슬픔을 함께 나누며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주민들 중 가정주부들과의 이 같은 친화력덕분에「체신보험」의 모집에 뛰어난 실력을 발휘, 「보험 왕」으로 4년간 뽑히기도 했다.
이씨는『요즘엔 고3딸의 입시준비관계로 밤12시 이전에는 자지 못한다』고 밝히고『건강하기만 하면 58세 정년까지 계속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군 이상윤씨(45·회사원)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두었고, 그림 그리기가 특기이자 취미.

<김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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